한국에 사는 언니에게서 카톡 Video Call로 전화가 왔다.
친정 식구니까 받았지, 다른 데서 온 거면 몰골이 사나워서 절대 안 받았을 거다. 음! 화면을 꽉 채운 언니 모습도 만만치 않았다. 자매 아니랄까 봐 화장기 없는 얼굴, 대충 틀어 올린 머리에 꽂은 비녀(나는 교정용 펜, 언니는 붓), 미장원에 못가서 희끗희끗하게 깔린 새치, 코끝에 걸친 안경 위로 전화기 화면을 올려다보는 모습까지 비슷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분명히 웃었는데 이내 콧날이 시큰해졌다. 우린 똑같이 안경을 빼고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아마도 늙어 가는 중이거나 추석 지나면서 앓던 향수병이 피붙이를 보는 순간 도졌을 것이다. 웃다가 우는 것까지 닮았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흉이 안되는 가족이 있다는 게 고맙고 감사했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언니는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이 옷 어떠냐고 묻는데 뒤쪽에 창이 있어 실루엣만 보였다. 방향을 바꾸어 보니 고두심에게 어울릴 듯한 정장 한 벌과 상의였다.
“담 달부터 강의한다며, 티 쪼가리 입지 말고 이거에다 블라우스 받쳐입고 해. 사러 다닐 시간은 없고 홈쇼핑에서 주문했어. 예쁘지? 바꿀 시간 없으니까 무조건 입어.”
괜찮냐고 묻더니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홈쇼핑 쇼 호스트처럼 제 말만 줄줄 쏟아내곤 끊었다. 전 같으면 내 취향 아니니 언니나 입으라고 했을 텐데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니 못했다. 바빠서 화장실도 제때 못 가는 사람이 동생이 맘에 걸려 샀다는데 취향은 뭔 놈의 취향인가. 일하다 옷에 물감을 잔뜩 묻혔다 해도 입어줄 생각이다.
김준철 회장 페이스북에 ‘KCLS(Korean Creating Literature School)’ 포스터가 소개 글과 함께 올라왔다. 그가 설립한 ‘나무달’ 사업 중 하나가 ‘Zoom Academy’인데 거기서 강의하게 될 강사 사진과 강의 내용이 들어있는 포스터였다. 내로라할만한 강사들 틈에 내 얼굴도 있었다. 교정하면서 여러 번 봤는데도 쑥스러웠다. 여전히 내가 끼어도 되는 자리인가 하는 생각이 남았던 모양이다.
‘나무달’은 그의 외조부인 박목월 시인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木은 나무이니 Tree, 月은 달이니 Moon 그래서 Tree and Moon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문화예술재단의 명칭이 탄생했다. 그는 오랜 세월 문화예술사업을 구상해왔다. 추계예술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등단하여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미국에 와서도 시를 놓지 않았다. 미주에서 가장 큰 문학 단체인 미주한국문인협회에서 오랜 세월 활동하며 봉사하다가 작년에 회장이 되었다. 젊은 피가 다르다는 평을 받으며 활발하게 협회를 이끌고 있다. 이민 사회에서 시인으로 살며 문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는 누구보다 절실하게 해외에서 한국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안다. 아마도 그런 필요가 문화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김 회장과 나는 망년우다. 나이와 연차를 떠나서 문학판에서 친구라는 뜻이다. 문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글을 나누고 글쓰기를 독려하고 삶을 나누는 문우로 지내다 보니 친구 따라 강남까지 가게 되었다. 미주문협 부회장으로, 나무달 창립 이사로, 줌 아카데미 강사로 함께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시가 밥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뼛속까지 시인인 친구를 두는 바람에 건강치 못한 나는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고나니 머리로만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고, 간절히 바랐던 일들이 결과물을 낳기 시작했다.
머잖아 해외문인의 지면이 되어 줄 한영문학지가 출간될 것이고, 크고 작은 행사가 기획될 것이며, KCLS에서는 수준 높은 강사를 통해 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 전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것이다. 특히 해외에 거주하며 작가가 되려는 분들에게 배울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려 애쓰는 중이다. 어렵사리 시작했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나는 달라스 중앙일보 문화센터에서 오랜 세월 문학교실 강사로 글쓰기를 가르쳤다. 수많은 사람이 그곳을 다녀갔다. 그분들 중 6분은 수필가가 되었고 한 분은 시인이 되었다. 그곳에서 강의 부탁을 받았을 때 단 한 명이라도 한국 문학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르쳐 주겠노라고 약속했었다. 한국 문학을 하겠다는 마음이 너무나 귀해서 그런 분들을 도와 드리고 싶었다. 먼저 시작한 문인으로, 문화센터가 문을 닫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약속을 지켰다.
줌 아카데미에서 수필 강의를 부탁받고 수락한 이유도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건강때문에 고민이 많았고 다른 강사들이 명성 있는 분들이어서 누가 되는 건 아닐까 주춤하긴 했지만, 해 보기로 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하는 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여 시작도 하지 않는 우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무슨 뜻이 있어 나를 그곳까지 인도하셨는지 알 수 없으나 인도하신 분이 감당할 힘도 능력도 주시리라 믿는다. 아울러 이 큰일을 시작해 놓고 맨발로 뛰며 감당해야 하는 내 글벗에게도 감당할 힘을 주시길 기도한다. 개인사업일 수도 있겠으나 넓게는 문화예술로 세상을 밝히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KCLS의 출발이 한류 시대에 K 문학의 도래라는 믿음이 있다. 그 물살이 셀지 아니면 잔잔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에 기대어 조심스레 첫발을 내딛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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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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