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사가 공개한 ‘코카콜라 제로 마시멜로’. [코카콜라사 제공]
새로운 코카콜라가 편의점 냉장고에 등장했다. 흰 포장에 검은색 코카콜라 로고가 유난히 돋보이는 신제품은‘코카콜라 제로 마시멜로’다. 마시멜로(Marshmello·본명 크리스토퍼 콤스톡)는‘사일런스’,‘해피어’ 같은 초대형 히트곡을 발표한 미국의 전자음악 프로듀서이자 디제이다. 예명처럼 늘 마시멜로(녹인 설탕에 공기를 불어넣고 젤라틴으로 굳힌 사탕) 모양, 즉 원통형의 헬멧을 쓰고 무대에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제로 마시멜로’ 캔의 흰색과 검정색 역시 그의 헬멧에서 따온 색깔이다. 최근 막 시중에 풀린‘제로 마시멜로’는 콜라 특유의 맛은 약한 대신 입에 넣자마자 치고 나오며 엎치락뒤치락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수박과 딸기의 맛이 인상적이다. 원래 미국에서는 일반 콜라와 제로, 즉 무가당 콜라 두 버전이 출시되었으나 국내에는 후자만 선보였다.
‘제로 마시멜로’는 코카콜라가 올해에만 벌써 두 번째 선보이는 한정판 제품이다. 이미 지난 2월 25일 ‘코카콜라 제로 스타더스트(Stardust)’가 출시된 바 있다.
미국에서 ‘코카콜라 스타라이트(Starlight)’가 선보인 지 나흘 만의 일이었다. 그렇다, 원래 ‘스타라이트’라는 제품명으로 출시되어야 하는데 국내에는 상표 등록이 이미 되어 있어서 ‘스타더스트’로 바뀌었다. 마시멜로, 혹은 보통 콜라와 달리 빨간색을 띈 스타더스트는 색깔과 흡사하게 라즈베리가 맛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
왜 굳이 라즈베리일까? 100여 년 전, 천문학자들이 지구에서 25640광년 떨어진 궁수자리(Sagittarius) B2 지역의 시그널을 조사한 결과 포름산에틸이라는 화학물질을 찾아냈다. 포름산에틸은 라즈베리 특유의 맛을 내는 성분으로 밝혀졌으니, 이를 코카콜라에서 ‘우주의 맛’이라 설정했다고 볼 수 있다. 코카콜라 측은 “136년간 지구에서 일상 속의 짜릿함을 전해 온 코카콜라가 우주 어딘가에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우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포장이 인상적인 스타더스트 역시 제로 버전으로만 국내 출시되었다. 마시멜로와 스타더스트 모두 특유의 맛은 흥미롭지만 계속 곁에 둘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무엇보다 단맛이 많이 두드러져 일반 제로콜라에 비해 균형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정판 음료를 그것도 일 년에 두 차례나 국내에 출시한다니 코카콜라의 행보가 흥미롭다. 청량음료의 고향인 미국에서야 한정판 출시는 흔한 일이다. 올해만 하더라도 코카콜라는 굵직한 신제품을 몇 가지 냈다. 대표적인 게 버번 위스키 잭 대니얼스와 합작한 주류 ‘잭 앤 코크’이다.
같은 이름의 고전 칵테일을 그대로 캔 버전으로 만든 것이다. 한편 직접 마셔보기 전까지는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컴퓨터 그래픽의 최소 단위인 픽셀(pixel)맛 제로 콜라도 4월 등장했다. 비단 코카콜라가 아니더라도 미국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냉장고는 온갖 한정판 청량음료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 한정판은커녕, 몇몇 인지도가 높은 청량음료를 빼놓고는 제로 혹은 다이어트 버전도 아직 출시가 되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 코카콜라만 놓고 보더라도 정규 제품군의 하나로서 입지가 견고한 체리맛도 국내에서는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왜 그보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 어려울 것 같은 한정판을 선보였을까?
이들 제품군이 ‘코카콜라 크리에디션(Creadition)’의 결과물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조(Creation)와 전통(Tradition)의 조어인 크리에디션은 코카콜라의 글로벌 혁신 플랫폼의 명칭이다.
신조어까지 동원돼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간단한 이야기이다. 코카콜라를 포함한 청량음료 시장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음료라는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으며, 설탕이 더 싸고 독한 단맛의, 옥수수에서 추출한 고과당 콘시럽으로 대체된 뒤 한층 더 사정이 나빠졌다. 그런 가운데 1886년 처음 등장해 130년이 넘는 코카콜라의 역사도 이제는 사실 부담스럽다. 한편으로는 고전 반열에 올랐지만, 또 한편으로는 낡고 지루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크리에디션’은 이런 이미지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이다. 전통과 창조의 조어라는 점에서 파악할 수 있듯 전통을 고수하는 사이사이로 연속성을 잃지 않은 혁신을 보여 주겠다는 의도이다.
코카콜라의 이런 시도는 과연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확실하게 기록된 코카콜라이지만 사실 역사는 그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13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기업과 브랜드의 명운을 걸고 대혁신을 한 차례 시도했으나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바로 오늘 소개할 ‘뉴 코크(New Coke)’의 일화이다.
1985년, 미국은 안팎으로 전쟁을 겪었다. 바깥으로는 소련과 냉전을 치르는 가운데 안에서는 콜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인류에게는 물론 핵무기와 절멸의 위기가 딸린 소련과의 냉전이 더 시급했지만 코카콜라에게는 내부의 전쟁 또한 만만치 않았다. 내부의 전쟁이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안팎으로 갈려 다른 적을 상대해야만 했다. 일단 밖으로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영원한 라이벌인 펩시콜라가, 그리고 안으로는 바로 자신들이 개발한 ‘뉴 코크’가 상대였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60퍼센트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꼬박꼬박 유지했던 코카콜라였지만 펩시에게 야금야금 잠식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승세의 큰 원동력은 바로 ‘펩시 챌린지’였다. 국내에서도 1980년대에 벌어졌던 펩시 챌린지는 바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었다. 아무런 표식도 해 놓지 않아 브랜드를 짐작할 수 없는 콜라 두 종류를 마시고 더 나은 것을 고르는 판촉 행사였다. 트레일러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보기 행사를 벌이고는 펩시콜라 캔처럼 생긴 저금통이나 알록달록한 연필 같은 판촉물을 나눠줘 특히 어린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아무런 선입견이 없는 가운데 맛만으로 펩시를 선택한다는 점을 강조한 이 캠페인은 파란을 일으키며 1983년, 코카콜라의 점유율을 24퍼센트까지 떨어뜨렸다. 자동판매기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여전히 코카콜라가 우위를 점했지만 슈퍼마켓에서는 펩시가 더 잘 팔리는 상황이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고, 펩시에게 밀린 주도권을 되찾고자 코카콜라는 회심의 카드를 꺼낸다. 바로 신제품인 ‘뉴 코크’였다. ‘프로젝트 캔자스’라는 이름으로 개발된 뉴 코크의 핵심은 좀 더 강한 단맛이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개발 중인 단맛 강한 신제품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모두를 압도했다. 그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코카콜라의 고향인 미국 남부에서도 뉴 코크가 더 나은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고무적이었던 반응은 1985년 4월 23일 실제로 제품을 출시하자 완전히 역전되었다. 반응이 그냥 나쁜 정도가 아니라 대재앙에 가까웠다. 시장조사에서 분명히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뉴 코크였건만, 막상 캔을 따 보니 상황이 굉장히 나빴다.
결국 출시 79일 만에 코카콜라는 백기를 들고 소비자에게 투항했다. 기존의 코크를 단종시키지 않고 ‘클래식’이라 이름 붙여 뉴 코크(‘코크’로 개명)와 병행 판매하겠노라고 발표한 것이다. 덕분에 오늘날 코카콜라의 세계는 평화롭지만 밑으로는 여전히 묘하게 양분되어 있다. 뉴 코크는 코크II로 개명되어 1992년까지 팔렸다가 끝내 단종됐고 2019년에 잠시 복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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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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