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말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또, 예전엔 시집가는 딸에게 시집살이를 두고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이라 했다. 한국인들은 그냥 어린 시절 습관이 평생 간다는 말 대신 콕 찍어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렀다. 근데 왜 3년일까? 언젠가 읽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한국 속담을 두고 왜 하필 세 살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한 적이 있다. 논어에 공자의 제자가 부모님의 삼년상이 너무 길다고 하자 공자는 “어린애가 세상에 태어나 삼 년이 지나야 겨우 부모의 품속에서 벗어나듯, 누구나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 년 동안 그 곁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적으로 아이가 독립체로서의 자아 인식이 형성되는 시기가 세 살이라 하니,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공자의 지혜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삼 년 동안 지속한다는 것은 어떤 관문을 통과하는 큰일이라 하겠다. 2022년 7월로 내가 텃밭을 일구기 시작한 지 삼 년 차에 들었다. 2020년 봄 코비드로 집에서만 생활하며 동네 산책을 시작했고 그해 7월 초에 우연히 길가에 싹을 틔운 호박잎을 보게 되었다. 날마다 쑥쑥 크는 호박잎이 뜨거운 콘크리트 바닥으로 뻗어 나오는 게 안쓰러워 호박잎의 뿌리를 파내 내 집 뒷마당에 심게 된 것이 내 텃밭의 시작이라 하겠다. 호박의 꽃이 암수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몰라 농장을 하는 한 시인 댁에 가서 농사짓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내 부모님 같은 친절한 오요한 시인님 내외는 2에이커 (약 2,500평)의 뒷마당 농장에서 키우는 작물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시고 참외, 수박, 호박, 가지 등 열매를 따서 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첫해는 너무 늦게 심은 탓인지 제대로 심지 못해서인지 끝내 호박 열매를 보지 못했다. 작년에는 호박과 오이, 토마토를 3’x8’ (24 sqft, 0.67평)에 일군 텃밭에 심었더니 오이와 토마토가 먼저 자라 밑에서 뻗어나가지 못한 호박은 또 열매를 맺지 못했다. 또 반대편 텃밭엔 오 시인님 댁에서 받아온 참외와 수박의 씨를 말려놓았던 것을 심었는데 참외가 먼저 뻗어나가면서 수박은 열매를 맺지 못했었다.
올봄, 3’x8’ 직사각형의 텃밭을 여러 개 줄지어 만들었다. 수박, 토마토, 오이, 가지 등을 각각의 텃밭에 심고, 또 다른 한 곳엔 미 원주민들이 전통적으로 해온 ‘세 자매 방식’을 따라 옥수수와 호박, 콩을 함께 심었다. 올여름 들어, 호박은 벌써 여러 번 따서 먹고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기도 하고 오늘 아침엔 동그스레하니 내 손바닥만큼 큰 보랏빛 가지도 따 왔다. 수박도 다섯 개가 동글동글 자라고 토마토도 가지마다 달려있다. 모든 과일이 둥그스레 자라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뉴스에 나왔던 네모난 수박 생각이 났다. 일본에서 수박이 동그래서 운반도 힘들고 자르기도 힘들다고 네모난 수박을 출시했던 것이다.
네모난 수박은 미국 NASA에서 우주 항공사들이 우주에서 쓸 수 있는 볼펜을 만들기 위해 수백만 불을 들였는데 구소련에서는 우주항공사들에게 연필을 나눠줬다고 한 얘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운반을 위해서라면 네모난 박스에 담아 옮기고 자를 땐 한 번에 잘라 용기에 담아두면 될 것을 왜 쓸데없이 돈을 들여 그런 걸 만들어 발명이라고 하나 생각했었다. 내 수박이 동그랗게 풍선처럼 커지는 것을 보며, 왜 과일은 둥글까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최소의 표면적으로 최대의 부피를 담을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형태가 둥근 모형이라는 것이다. 자연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식물의 새로운 씨앗은 나선형 패턴으로 성장하는데 이러한 자연의 곡선은 틈 없이 새로운 성장을 돕는 가장 효과적인 디자인이라 한다. 잎과 가지, 꽃잎도 나선형으로 자라는데, 이는 새잎이 오래된 잎의 햇빛을 차단하지 않도록 하고 뿌리는 최대량의 비나 이슬을 받게 하는, 생명을 위한 신의 설계를 반영한다.
네모난 수박은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단맛이 자연적인 둥근 수박에 미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한다. 수박은 동그랄수록 햇빛을 골고루 받아 더 잘 익어 달다 한다. 자연엔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신의 섭리가 있다. 도시 텃밭농사 삼 년 차에 들어 나도 농부로서의 자아 인식이 세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싹을 틔운 듯하다. 아침저녁으로 텃밭에 나가 물을 준다. 커져가는 동그란 수박이 나를 보며 함박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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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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