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고야 말았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이 계절을 올해는 또 어떻게 날까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지만 드물게 긍정적인 구석도 있다. 바로 칵테일이 더 맛있어지는 계절이라는 점이다. 위스키나 진, 럼 등 기주, 즉 바탕술에 다른 술이나 과일즙을 섞어 만드는 칵테일은 아이리시 커피처럼 따뜻한 종류도 있지만 대부분이 시원하거나 차갑다. 그래서 대표적인 칵테일의 소사를 정리해보았다. 워낙 종류가 다양하므로 안 마셔 보았다면 처음에는 막막할 수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텐더에게 좋아하는 술이나 음료, 과일 등을 이야기해 주면 추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대부분이 열대의 맛과 향을 품는 트로피컬(tropical) 계열이니 이 글에서 소개하는 칵테일을 주문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마르가리타 (Margarita)
칵테일 역사학자 데이비드 원드리치에 의하면, 19세기 말에 유행했던 브랜디 데이지(Brandy Daisy)에서 기주인 브랜디를 테킬라로 대체한 것이 마르가리타라고 한다.
한편 테킬라 생산 업체인 호세 쿠에르보에 의하면 1938년, 멕시코의 뮤지컬 배우 리타 드 라 로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표준 재료 및 비율은 테킬라, 트리플 섹(오렌지 리큐어), 생라임즙을 각각 10:4:3으로 더한다. 어떤 잔에 담아 내더라도 테두리에 라임즙을 바르고 소금을 묻혀 내는 게 특색이다.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비교적 현대적인 칵테일이지만 그래도 역사가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레몬향 보드카를 바탕으로 쿠앵트로(오렌지 리큐어), 생라임즙, 크랜베리 주스를 각각 8:3:3:6의 비율로 더한다.
셰이커에 얼음과 한데 더해 잘 섞은 뒤 술만 걸러 칵테일 잔에 담아낸다.
■모히토 (Mojito)
‘헤밍웨이의 칵테일’로도 유명한 모히토의 고향은 쿠바이다. 남미 원주민이 쿠바에서 찾아온 열대 풍토병의 치료제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19세기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착취당했던 아프리카 노예들이 만들었다는 기원설도 있다.
재료는 화이트 럼 45ml, 라임즙 20ml, 민트 6줄기, 백설탕 2작은술, 탄산수이다. 높고 긴 잔에 민트와 설탕, 라임즙을 담고 숟가락 등으로 짓이겨 민트의 향을 끌어낸다. 탄산수와 얼음으로 잔을 거의 채운 뒤 럼을 더하고 잘 섞어 마무리한다.
■허리케인 (Hurricane)
1939년 미국 뉴욕주 퀸스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의 허리케인 바에서 낸 칵테일이 시초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지만 레시피가 정확하게 남겨진 것은 아니었다. 이후 뉴올리언스의 태번(술집) 주인 팻 오브라이언이 악성 재고로 남은 럼을 소모하기 위해 만든 칵테일에 같은 이름을 붙여 내기 시작했는데, 가운데가 잘록한 허리케인 등잔과 비슷한 유리잔에 담아내 허리케인이란 이름이 붙었다.
다크 럼과 화이트 럼, 고도수 럼(75%) 2:2:1의 비율에 패션프루트 시럽과 오렌지 주스를 더해 셰이커에 담고 얼음과 함께 흔들어 만든다.
■싱가폴 슬링 (Singapore Sling)
1915년 싱가포르 래플스 호텔 롱 바의 바텐더 응이암통분이 최초로 만들었다고 한다.
진(30ml)을 바탕으로 마라스치노(체리 리큐어, 15ml), 쿠앵트로(7.5ml), 베네딕틴(허브 리큐어, 7.5ml), 그레나딘(석류 시럽, 10ml), 파인애플 주스(120ml), 라임즙(15ml), 앙고스트라 비터(쓴맛의 첨가제)를 셰이커에 얼음과 함께 더해 흔들어 섞은 뒤 긴 허리케인 유리잔에 담고 파인애플과 칵테일 체리를 얹어 낸다.
■테킬라 선라이즈 (Tequila Sunrise)
1930~40년대에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빌트모어 호텔에서 처음 만들어진 테킬라 선라이즈는 1970년대 캘리포니아주 소살리토의 바 트라이던트에서 바비 로조프와 빌리 라이스가 내면서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록 밴드 이글스가 1973년 동명의 곡을 발표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미셸 파이퍼와 멜 깁슨, 커트 러셀이 출연한 흥행작 영화도 있다. 테킬라와 오렌지주스, 그레나딘을 3:6:1로 잔에 따라 만든다.
■마이타이 (Mai Tai)
1944년 빅터 J. 버저론의 레스토랑 트레이더 빅스(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타히티어로 ‘훌륭하다’는 뜻의 마이타이(maita’i)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약 30년 동안 비밀로 지켜왔다는 레시피는 이렇다. 짙은색의 자메이카 럼, 마티니크 당밀 럼, 큐라소(오렌지 리큐어), 오르쟈(아몬드 시럽), 라임즙, 설탕 시럽의 비율은 4:4:2:2:4:1이다. 모든 재료를 셰이커에 얼음과 함께 담아 흔들어 잔에 담아낸다.
■블랙·화이트 러시안
(Black·White Russian)
블랙 러시안은 1949년, 벨기에 브뤼셀 소재 메트로폴 호텔의 바텐더 구스타브 톱스가 당시 룩셈부르크의 미국 대사였던 펄 메스타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보드카와 커피 리큐어를 2.5:1의 비율로 온더록스 잔에 담아 만든다. 여기에 크림을 더하면 화이트 러시안이 되는데 비율은 보드카와 커피 리큐어, 크림이 각각 5:2:3이다.
■모스코 뮬 (Moscow Mule)
모스코 뮬의 기원설은 크게 두 갈래이다. 하나는 1941년 뉴욕의 채텀 바에서 모스코 뮬의 주재료인 보드카와 진저 비어의 생산자들이 만나 술을 마시며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이다.
각자 생산하는 술을 좀 더 잘 팔아보고자 이것저것 더하고 빼가며 만든 칵테일에 모스코 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 역시 맥락은 비슷하다. 같은 주재료의 악성 재료를 처분하기 위해 바텐더인 웨스 프라이스가 고안해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모스코 뮬은 시원함을 유지하도록 구리 머그잔에 담겨 나온다. 보드카와 라임즙, 진저비어를 9:1:24의 비율로 더해 잔에 담고 부순 얼음을 잔뜩 채운 뒤 썬 라임을 올려 낸다.
■다크 앤 스토미 (Dark ’N Stormy)
다크 럼(“다크”)와 진저 비어(“스토미”)를 3:5의 비율로 더해 만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버뮤다의 럼 제조업체 고슬링 브라더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고안해냈으며 상표 등록까지 해 놓았다.
■그래스호퍼 (Grasshopper)
1918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유명 바 투자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져 1950~60년대에 미국 남부에서 인기를 끌었다. 크림 드 민트(박하 크림 리큐어)를 써 녹색을 띠기 때문에 ‘메뚜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크림 드 민트와 크림 드 카카오, 크림을 동량 더해 셰이커에 담고 얼음과 함께 흔들고 걸러 잔에 담는다. 크림을 보드카로 대체하면 날으는 메뚜기(Flying Grasshopper)가 된다.
■민트 줄렙 (Mint Julep)
박하잎을 뭉개서 기초를 잡는다는 점에서 모히토와 흡사하다. 다만 버번을 쓰는 데서 알 수 있듯 미국 남부의 위스키 산지, 특히 켄터키주에서 많이 마신다.
역사가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1938년부터 미국 최대 경마대회 켄터키 더비의 공식 음료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켄터키 더비에서만 12만 잔이 소비되었다고 한다. 박하잎 네 장을 잔에 담고 가루 설탕 1작은술, 물 2작은술을 잔에 담아 짓이긴 뒤 으깬 얼음과 버번 위스키 60ml를 더해 잘 젓는다.
■피냐 콜라다(Pia colada)
스페인어로 피냐는 파인애플, 콜라다는 ‘체로 거르다’는 뜻이다. 19세기 푸에르토리코의 해적 로베르토 코프레시가 선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코코넛과 파인애플, 화이트 럼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다만 1825년 그의 죽음과 더불어 레시피도 사라져 진위를 증명할 길이 없다. 한편 푸에르토리코 산후앙 소재 카리브 힐튼 호텔의 바텐더 라몬 마레로가 1954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래저래 1978년부터 푸에르토리코의 국가 공식 음료로 지정됐다. 화이트럼과 코코넛크림, 파인애플주스를 5:3:5로 얼음과 함께 블렌더에 갈아 만든다.
■카이피리냐 (Caipirinha)
브라질의 공식 칵테일이다. 일설에 의하면 1918년 포르투갈의 알렌테주 지역에서 민간 치료제로 만들어졌다고 하고 요즘도 같은 용도로 쓰인다. 원래 레몬과 마늘, 꿀을 썼지만 이후 레몬이 라임으로 바뀌고 신맛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설탕을 더하면서 오늘날의 형식이 갖추어졌다. 잔에 라임 1쪽과 설탕 4큰술을 더해 짓이긴 뒤 부순 얼음과 브라질의 전통 사탕수수 리큐어 카샤사를 60ml 담아 잘 젓는다.
■블러디 메리 (Bloody Mary)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던 파리 소재 뉴욕 바의 바텐더 페르낭 프티오가 1921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당시의 이름은 피 한 양동이(Bucket of Blood)이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지금의 이름은 가톨릭을 국교로 정하고 성공회와 청교도를 탄압했다는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로부터 따온 것이다. 보드카와 토마토주스, 레몬즙 3:6:1의 비율에 우스터소스 두세 방울, 타바스코 핫소스, 셀러리소금, 후추를 더해 저어 만든다. 감칠맛과 매운맛이 두드러져 미국에서는 대표적인 해장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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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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