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정치활동을 통해 노인들이 자신의 연설능력, 판단력, 솔직함, 지혜 등의 재능으로 공공에 득이 되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도시(국가)는 우리의 손, 발, 체력을 요구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의 영혼 그리고 공명정대, 자제심, 실용적 지혜 같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질들은 늦게 그리고 서서히 발달된다. 그런데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이들 자질을 우리의 집이나 밭 그리고 다른 재산상의 이득을 보는 데만 쓰고, 나라와 시민들을 위한 봉사에 쓰면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고령은 봉사능력을 앗아가지 않는 한편 정치를 하고 지도하는 능력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노인이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 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에세이를 쓴 사람은 2000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역사가, 정치가였던 플루타르코스(AD 46~119)이다. 평생 지방정치에 참여했던 그는 나이가 70쯤 되자 정치에서 물러나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했다. 장고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나이와 무관하게 정치참여는 계속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나이에 따라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앞에서 일하게 하고 노인들은 경험으로 다져진 침착함과 지혜로 젊은 정치인들을 가르치고 균형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고대 로마공화국의 원로원(Senatus)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연방상원의원(민, 캘리포이아)이 22일 생일을 맞아 89세가 되었다. 여성후보들이 대거 연방의회에 입성, ‘여성의 해’로 기록된 1992년 처음 당선된 후 근 30년 그는 5선 의원으로서 낙태권리, 민권, 총기규제 등 진보적 가치를 위해 헌신해왔다. 지적이며 예리한 판단력, 초당적 타협을 끌어내는 추진력 등으로 미국정계의 대표적 여걸로 꼽혔던 그의 89세 생일은 그런데 좀 씁쓸했다. 상원의 최고령자인 그의 건재를 축하하는 분위기는 없고 늙음만이 조명을 받았다. 그가 단기 기억력에 문제가 있고 현실 인지능력이 떨어져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지적이 나온 지는 몇 년 되었다.
그의 고령이 다시 부각된 것은 뉴욕 매거진 특집기사를 위해 최근 한 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였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지난달 26일. 텍사스 유발디 초등학교 총기난사사건 이틀 후였다. 어린아이 20명과 교사 2명이 떼죽음을 당해 온 나라가 초상집이던 당시 파인스타인은 미국의 미래에 대해 장밋빛 낙관론을 펼쳤다. 총기폭력은 극에 달하고, 여성의 낙태권은 뒤집힐 위기인데, 미국의 앞날이 더 이상 밝을 수 없다니… 기자는 파인스타인이 미국의 긴박한 현실로부터 멀리 단절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상원의원이 너무 늙어서 업무수행이 어려울 정도라는 지적을 받은 것은 파인스타인이 처음은 아니다. 상원(senate)의 어원은 senatus(원로원)고 이는 라틴어로 노인을 의미하는 senex에서 왔다. 지금 연방상원은 말 그대로 노인들의 위원회이다. 평균연령 64세로 사상 최고령이다. 1974년 포드 대통령 때(패트릭 레이히, 82), 1980년 카터 대통령 때(척 그래슬리, 89) 입성한 의원들이 여전히 현직에 있다. 오는 9월 89세가 되는 그래슬리는 현재 8선에 도전 중이다. 상원 역사상 최고령이었던 스트롬 서몬드는 100세까지 의원직을 고수했다. 2003년 은퇴 직후 사망한 그는 생애 말년 자신이 말을 타고 있는지 걷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상원의 고령화는 상원 시스템과 상관이 있다. 선임자일수록 특권을 누리는 구도에서 의원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 각 주에서 단 두 명, 전국에서 단 100명이 누리는 영예로운 권좌를 선뜻 내놓기가 쉽지는 않다. 게다가 주정부 역시 오랜 경력의 상원의원을 고수하고 싶어 하니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선임일수록 막강한 권한으로 주정부에 기금을 끌어오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고령화는 상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부의 수장 조 바이든은 79세로 미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고, 입법부의 수장 낸시 펠로시 연방하원의장은 82세이다. ‘할아버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취임 당시 70살이 채 못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그가 1984년 재선 도전 당시 73세라는 ‘고령’이 문제가 되었다. 월터 몬데일 민주당 후보는 56세. 레이건은 “나는 나이를 이슈화하지 않겠다. 상대의 젊음과 무경험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말로 폭소를 끌어내면서 나이 이슈를 넘어섰다. 그렇게 재기 넘치던 그가 불과 몇 년 후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다.
수명은 날로 길어지고, 65세 이상 노년층의 투표율이 젊은 층에 비해 월등하게 높으며, 유권자들은 비슷한 연배의 정치인을 선호한다는 사실 등으로 볼 때 정치인들의 고령화는 점점 심각해질 전망이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70대 이후 인지능력이 급속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려스러운 일이다. 아울러 정치가 노인들의 독점 무대가 되어서는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 인구구성에 비례해 성별, 나이, 인종을 대변할 대표들이 골고루 참여해야 사회의 필요가 제대로 전달 개선될 수 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떠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근 2000년 전 플루타르코스가 했던 고민을 각계의 원로들도 자주 해보기 바란다. 그래야 열심히 살아온 삶의 끝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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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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