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70주년 기념 ‘플래티넘 주빌리’ 나흘간 성대하게 치러
▶ 거동 불편한 96세 여왕 첫날·마지막날 발코니 행사만 참석
버킹엄궁 발코니 인사하는 영국 여왕 [로이터=사진제공]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가 5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가운데 여왕은 앞으로 임무를 계속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여왕은 초록색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차림에 지팡이를 짚고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타나 손을 흔들며 나흘간 성대히 치러진 '플래티넘 주빌리'의 마지막을 지켰다.
버킹엄궁 앞 도로를 가득 채운 관중들은 여왕이 나타나자 환호하고 영국 국가 '하느님, 여왕을 지켜 주소서'(God Save the Queen)를 불렀다.
96세 고령의 여왕은 첫날 군기분열식 때 발코니에 나와서 두 차례 인사하고 저녁에 윈저성에서 불 켜는 행사에 참석한 뒤엔 일정을 모두 취소해서 건강에 관한 우려를 키웠다.
여왕은 행사 후 성명에서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축하해준 데 겸허한 마음이 들고 깊이 감동받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여왕은 "모든 행사에 직접 참석하진 못했지만 마음은 여러분과 함께 있었다"며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 최선을 다해 여러분을 계속 섬기겠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유대감이 여러 해 동안 계속 느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는 여왕 즉위 후 70년간 영국 현대사를 보여주는 참가자 1만명, 3㎞ 길이의 화려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퍼레이드는 여왕의 대관식 행진 코스였던 버킹엄궁과 웨스트민스터 애비 주변 도로를 따라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여왕이 대관식 때 탔던 번쩍이는 황금 마차(Gold State Coach)가 20년 만에 도로에 등장해서 눈길을 끌었다.
길이 7.3m, 무게 4t에 260년 된 이 마차에는 마치 여왕이 타고 있는 듯 대관식 때 여왕의 젊은 모습 홀로그램이 비쳤다.
웅장한 근위대 행진에 이어서 여왕이 즉위한 195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각 시대를 보여주는 공연이 뒤를 따랐다.
미니와 랜드로버 디펜더 등 영국 옛 자동차들과 제임스 본드 영화에 등장한 차들이 등장해서 자동차 산업 중심지였던 영국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빈티지 재규어가 망가져서 뒤에서 미는 모습은 현재 상황을 시사하는 듯했다.
시대별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음악, 춤, 패션, 드라마 등은 흥을 돋우는 동시에 과거 영국 대중문화 힘을 뽐내는 효과를 냈다.
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노래를 부르고 한때 유명인사들이 흰 머리를 휘날리며 신나게 손을 흔들자 도로 양옆을 가득 채운 영국인들이 환호하는 모습에선 잘나가던 시절을 그리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어 현재에선 젊은 예술인들이 등장하고 힙합 공연을 했으며 피날레는 영국 팝 가수 에드 시런이 찍었다.
인도 결혼식을 재현한 코너는 다문화사회로서 영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영연방의 영향력이 건재함을 강조하는 듯했다.
퍼레이드에 앞서는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이 모여 함께 어울리고 식사를 하는 '빅 주빌리 런치' 행사가 개최됐다.
찰스 왕세자는 주빌리로 모두 하나가 됐으니 다시 언쟁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플래티넘 주빌리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와 코로나19 등으로 갈라지고 상처 입은 영국인들을 여왕을 중심으로 한 데 묶는 계기였다.
영국의 소프트문화를 세계에 내세우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날 퍼레이드에 든 비용 1천500만파운드(235억원)는 영국과 해외의 대기업들이 댔다.
플래티넘 주빌리 전체를 위해서는 영국 재무부가 지난해 2천800만파운드(438억원) 예산을 할당했고 교육부가 1천200만파운드(188억원)를 들여 초등학생들에게 여왕에 관한 책을 나눠줬다.
경찰 경비 비용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2011년 윌리엄 왕자 결혼식 때는 700만파운드가 들었다. 복권기금에서도 2천200만파운드(344억원)를 지원했다.
이번 행사에선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이 있는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왕실을 떠난 해리 왕자 부부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왔지만 감사예배에서만 대중의 눈앞에 나타나는 등 좋지 않은 여론을 감안해서인지 비교적 조용히 활동했다.
진보 성향인 가디언지는 플래티넘 주빌리 이후에 관한 분석 기사에서 여왕이 임무를 많이 나눠주겠지만 왕위 승계는 여왕 사후에나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킹스칼리지런던의 버넌 보그대너 교수는 "찰스 왕세자는 태어났을 때부터 진로가 정해져서 준비가 잘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가디언지는 전했다.
그러나 영국과 영연방의 앞날에는 불확실성이 크다. 영국 내 젊은 층 사이에선 군주제 지지가 낮아지고 있고 여왕이 군주로 있는 영연방 국가들 사이에 공화국 전환 바람이 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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