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백종원의 수제자 부부가 제주도에 돈가스 ‘골목식당’을 개업하자 첫날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아예 식당 앞에 텐트를 치고 밤샘한 극성파도 있었다. 소위 ‘수제 돈가스’라는 걸 맛보려고 엄동설한에 몇 시간씩 줄을 섰다가 허탕치고 돌아간 고객이 태반이었다. 맛이 있어봤자 돈가스일 터인 데 골목식당치고는 대단한 맛집인 것 같았다.
최근 미국의 대표적 골목식당인 맥도널드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850여 러시아 매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하자 모스크바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 인파가 500미터나 구불구불 줄을 지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코카콜라가 든 ‘빅맥 밸류 팩’이 최고 5만루블(약 43달러)에 암거래됐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맥도널드가 그런 맛집인 줄 미처 몰랐다.
맥도널드 형제가 1940년 LA 동쪽 샌버나디노에 첫 매장을 연 뒤 1953년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전환한 맥도널드는 현재 전세계 100여개 국의 3만7,900여 매장에서 하루 6,900여만 명의 고객을 맞는다. 브랜드 가치 9위의 글로벌 기업이며 고용원만 170여만 명에 달한다. 작년엔 방탄소년단을 내세운 ‘BTS 밀’(맥너깃+감자튀김+코카콜라+한국식 소스)로 히트를 날렸다.
빵과 패티(쇠고기)가 다섯 켜를 이룬 두툼한 ‘빅맥’은 미국연수 자취생 시절 내 주식이나 다름없었다. 그걸로 점심·저녁을 때운 날도 허다했다. 재미동포가 된 후 가족과 자동차여행을 할 때도 점심은 으레 무소부재 맥도널드의 빅맥이었다. 인이 박힌 탓인지 88 서울올림픽 때 본사에 잠시 귀환 근무했을 때도 빅맥을 자주 먹었다. 맥도널드는 그해 한국에 입성했다. 요즘 한국 내 맥도널드에선 빅맥 외에 ‘불고기 버거,’ ‘새우 버거,’ ‘김치 버거’ 등 독특한 메뉴를 판매한다고 들었다. 그 맛이 어떤지 모르지만 맥도널드 햄버거의 간판격인 빅맥 맛은 본거지인 미국 것과 다를 수가 없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다. 패티, 빵, 치즈, 상추, 양파, 피클, 토마토 등 레서피가 규격화돼있고 조리방법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빅맥 지수(Big Mac Index)’이다. 1986년 월간 이코노미스트지가 창안한 BMI는 각국의 빅맥 햄버거 가격을 기준으로 그 나라 화폐의 구매력을 미국 달러와 직접 비교해 평가한다. 세금, 임금, 건물 임대료, 유통비용 등 빅맥 값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복잡한 경제요인들을 생략하고 완제품 빅맥 한 개를 살 수 있는 각국 화폐의 금액만 따진다.
러시아의 빅맥이 1.74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쌌다(올 1월 기준). BMI는 23.24%였다. 달러 대 루블 환율이 1 대 7.42이지만 미국의 빅맥 값 5.81달러와 비교하면 루블 가치가 약 70% 저평가됐다는 계산이다. 반대로 빅맥이 가장 비싼 곳은 스위스로 6.98달러(BMI 1.12%)였다. 달러와 스위스 프랑의 환율은 1 대 0.93이다.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20.16% 고평가 받는 셈이다.
한국의 빅맥은 3.82달러였다(BMI 791.74%). 원화가치가 달러 대비 34.32% 저평가됐다고 했다. 원화의 구매력이 달러보다 그만큼 높다는 얘긴데 서울의 살인적 고물가, 특히 억대 아파트 가격을 감안하면 BMI가 맞는 지 아리송하다. 이웃 일본(3.38달러)과 중국(3.83달러)도 빅맥 값은 한국과 비슷했지만 BMI는 각각 67.13%와 4.20%로 한국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엊그제 친구가 ‘웃픈’ 얘기를 들려줬다. 걸인이 스타벅스 앞에서 한 손에 커피, 다른 손에 “배고파요”라는 피켓을 들고 서있었단다. 한 행인이 1달러를 건네고 지나가자 걸인은 같잖다는 듯 돈을 쳐들며 “정부가 왜 버크(1달러짜리)를 찍어내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더란다. 친구는 그날 지갑에 버크가 달랑 한 장뿐이었는데 적선했더라면 망신당할 뻔했다며 웃었다.
연수시절 1달러는 빅맥을 사 끼니를 때울 만큼 가치가 있었다. 40여년 후 지금은 그 돈으로 커피 한잔도 못 산다. 본거지 미국 빅맥 값이 한국보다 더 비싸다. 하긴, 맥도널드에는 이제 어차피 찾아가기도 어렵다. 개솔린 값이 겁나서이다, 연수시절엔 갤런당 60센트 정도였는데 지금은 6달러를 오르내린다. ‘Good old days‘가 그리운 건 결코 나이 탓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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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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