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 20년을 살며 토요일마다 산에 올랐다. 시애틀산악회가 집합장소로 정하는 곳 중 에 ‘맥도날드 주차장’이 있었다. 거기가 ‘McDonald‘s’ 식당인 건 회원들이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누군가가 미국인에게 맥도날드 가는 길을 물었다면 그가 못 알아들었을 터이다. 미국인들은 ‘맥다노’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맥도날드’라고 쓰고 그렇게 발음하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옛날 코리아타임스 기자시절에 ‘Sogri-san’과 ‘Abrog-gang’ 때문에 배꼽 빠지게 웃은 적이 있다. ‘속리산’과 ‘압록강’을 문교부 표기법으로 쓴 것인데 미국인들은 모두 ‘소그리산’과 ‘애브로그강’으로 읽었다. 당시 ‘매큔-라이샤워 표기법(MR)’을 채택했던 코리아타임스는 철자 아닌 발음을 기준으로 이를 각각 ‘Songni-san‘과 ’Amnog-gang’으로 표기했다.
미국인 학자들인 맥 맥큔과 에드윈 라이샤워가 1939년 최현배 등 한글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고안한 MR방식은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밖에서 널리 통용된다. 그때는 부산, 대구, 광주를 Pusan, Taegu, Kwangju로 표기했다. 종로도 Chong-no였다. 2000년 문화관광부(당시)가 표기법을 개정한 후 Busan, Daegu, Gwangju로 바뀌었고 종로도 Jong-no가 됐다.
인명의 영어표기는 가히 무법천지다. 지명과 달리 발음 아닌 철자대로 쓰도록 표기법이 정했지만 혼란이 많다. ‘복남’이와 ‘빛나’를 철자대로 쓰면 Boknam, Bitna인데 미국인은 이를 ‘보크남,’ ‘비트나’로 읽을 터이다. Kim, Lee, Park 등 성씨를 표기법대로 Gim, I, Bak으로 쓰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한글이름이든, 영어이름이든 그 표기방법은 각 개인의 고유권한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영어이름이 가장 독특한 사람은 초대 이승만의 ‘Syngman Rhee’이다. 표기법은 물론 성을 이름 앞에 쓰는 원칙도 무시했다. 역대 대통령 중 영어를 가장 잘한 티를 내는 듯 완전히 미국식이다. 1910년 프린스턴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에 처음 사용됐다. 그 전엔 ‘Seung Manh Ye‘ 또는 ’E. Sung Man‘이라는 영어 명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이어 영국 유학파인 윤보선은 ‘Yun Posun’으로 이승만처럼 이름을 한 글자로 썼는데 후대부터 표기법에 따라 이름 사이에 붙임표(하이픈)를 넣었다. Park Chung-hee, Chun Doo-hwan, Kim Young-sam, Kim Dae-jung? 식이다. 김영삼은 미국인들에게 ’젊은 쌤‘으로 통했을 터이다. 사무엘(Samuel)의 줄임말인 Sam은 John이나 Paul처럼 흔한 이름이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의 영어이름은 좀 웃긴다. 윤석열은 한글철자대로 ‘Yoon Suk-yeol’로 또박또박 쓴다. ‘Suk’은 ‘(젖을) 빤다’는 뜻의 Suck를 연상케 한다(‘sucker’는 풋내기라는 뜻). ‘yeol’도 ‘고함지르다’라는 뜻인 ‘yell’을 연상케 한다. ‘풋내기의 고함’으로 이해되면 곤란하다. 오히려 MR방식을 따라 ‘Sungnyol’로 표기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이재명의 Jae-myung은 ‘지멍’으로 불릴 수 있다 (‘ae’ 겹모음은 ‘이’로 발음한다). 영어엔 ‘yun?’으로 시작되거나 이어지는 단어가 없다. 현대(Hyundai)를 ‘헌다이’로 발음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지난 2017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맥없이 자진사퇴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이승만보다 영어를 더 잘했는데 영어이름이 ‘Ban Ki-moon’이다. Ban은 ‘금지’를 뜻한다. “기문을 막아라”라는 뜻이 돼버렸다. 성씨가 옥(OK)씨였다면 당선됐을 것이라는 농담도 회자됐었다.
물론 선거의 당락과 이름은 관계없다. 아이다호 현직 주지사 이름은 Butch Otter(수달 도살자)이다. 미시간 주엔 Lawless(무법)라는 성씨의 판사가 있고, 인디애나엔 성경의 대표적 우상인 Baal(바알) 성씨의 시장, 텍사스엔 Rape(강간)라는 성씨의 치안관이 있었다. 한때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 전 연방하원 의장 뉴트 깅리치의 ‘뉴트(Newt)’는 ‘멍청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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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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