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나라를 연 해는? 1392년. ‘열세 살(13) 난 아이(92)’라고 암기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는? 1592년. ‘열다섯 살(15) 난 아이(92)’라고 암기했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독립한 해는? 1945년.
보통은 그냥 <1392년>, <1592년>, <1945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앞에 서기(西紀)라는 말이 붙어야 한다. <서기 1392년>, <서기 1592년>, <서기 1945년>이라고 말이다. 서기는 서력기원(西曆紀元)을 줄인 것으로, 서(西)양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책력(曆)인데, 예수 탄생을 기원(紀元)으로 한다. 연구에 의하면 예수가 서기 1년 1월 1일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게 중요하지는 않게 되었다. 서기는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서기에서는 AD와 BC라는 표현을 쓴다. AD는 라틴어인 아노 도미니(Anno Domini) ‘주(主)의 해에’ 즉 기원후를 말하고, BC는 비포 크라이스트(Before Christ) ‘예수 이전에’ 즉 기원전을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주(主)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강조해서 주후(主後), 주전(主前)으로 적기도 한다. <주후 1945년>이라고 적는다는 얘기다. <천주 강생 후 1945년>이라고 적는 경우도 있다.
연도를 계산할 때에 기원후의 시작은 <1년>으로부터 시작된다. <0년>은 없다. <기원전 1년>에서 <기원후 0년>이 없이 <기원후 1년>으로 간다. 즉 <기원전(BC) 1년 12월 31일> 다음날은 <기원후 0년 1월 1일>이 아니라 <기원후(AD) 1년 1월 1일>이 된다.
그리고 1년 1년을 모아 100년을 한 단위로 묶으면 이를 <세기(世紀)>라고 한다. 그래서 1세기는 ‘서기 1년 1월 1일부터 100년 12월 31일까지’를 말한다. 따라서 2세기는 ‘서기 101년 1월 1일부터 200년 12월 31일까지’를 말한다. 그렇게 계산하면 20세기는 ‘서기 1901년 2월 1일부터 2000년 12월 31일까지’가 된다.
자 여기서 잠깐 옛날 일을 생각해보자. 2000년 1월 1일. 그때에 <새 천년>이 밝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21세기>가 시작되었다면서. 그런가? 정말 <2000년 1월 1일>이 <21세기의 첫날>인가? 아니다. 21세기의 첫날은 그 1년 후인 <2001년 1월 1일>이다. 그때에도 ‘2000년 1월 1일은 21세기의 첫날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온갖 언론들이 ‘21세기를 맞이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모두들 그렇게 알고 지나갔다. 목소리가 크면 이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긴다’는 것과 ‘맞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단기(檀紀)라는 게 있었다. 단군기원(檀君紀元)을 줄인 말인데, 단군(檀君)이 새로운 나라를 열었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2333년을 기원(紀元)으로 삼아 첫 해로 한다. 그래서 <단기 = 서기 연도 + 2333년>라고 계산했었다. 1948년 9월 25일부터 시행되었다가 1962년 1월 1일부터 서력기원(西紀)이 채택되어 단군기원(檀紀)은 폐기되었다.
불가에서는 불기(佛紀)를 쓴다. 불멸기원(佛滅紀元)의 줄임말인데, 석가모니가 적멸(寂滅) 즉 열반에 든 해를 기준으로 삼는다. 열반에 든 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서기 연도에 544년을 더하여 불기로 삼는다.
일본과 대만(중화민국)은 자체 기준으로 연호를 쓰고 있다. 이슬람 국가도 자체 기준이 있고 유태인도 자기네 기준에 의해 햇수를 계산한 그들의 달력이 있다.
추가 이야기 두 가지 더.
우리는 ‘기원전’과 ‘기원후’를 연도 앞에 적는다. 기원전 384년, 기원후 325년. 영어는 조금 달라서 BC는 연도 뒤에, AD는 연도 앞에 적는다. 384 BC, AD 325.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BC를 쓰면서 ‘년’을 붙일 때에는 영어 표기와 달리 연도 앞에 BC를 적는다. BC 384년.
BC 대신에 BCE라는 표현을 쓰고 AD 대신에 CE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BCE는 Before the Common (or Current) Era의 줄임말이고 CE는 Common (or Current) Era의 줄임말이다. BC와 AD는 기독교를 전제로 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종교색을 배제하기 위해 BCE, CE를 사용한다.
------------------------------------------------------------------------------------------
김성식은
지난해 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수필부문 가작에 입상한 수필가로 버지니아 스프링필드에 거주 중이다. 서울 출신으로 중앙대학 법대를 졸업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