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우주 시대(Space Age)다. 20세기엔 미국의 NASA (미국 항공 우주국)과 같은 국가 주도였다. 21세기 들어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가 2000년 블루오리진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2002년 스페이스X를 설립해 경쟁적으로 우주 산업을 시작했다. 2020년 5월 스페이스X가 민간 기업 주도로 사람을 태운 첫 우주 비행을 성공시켰고, 올해는 블루오리진이 우주 관광 산업 시대를 열기 위해 1969년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한 7월 20일을 잡아 베조스가 직접 손님을 태우고 우주여행을 했다.
7월 들어 영국 출신 억만장자 리차드 브랜슨이 베조스의 첫 우주여행을 앞질러 7월 11일에 민간인 첫 우주여행을 한다고 연일 뉴스에서 우주여행 시대를 얘기하고 있었다. 브랜슨이 우주로 날아가기 전날 저녁, 나는 한 친구의 은퇴 파티에 갔었다. 하지만, 미국식으로 치러진 은퇴 파티에서 배를 채우지 못한 남편과 나는 파티를 마치고 한국식당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근처에 한국장을 보러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 들어서는데 한 직원이 문 앞에 서서 “십분 있으면 문 닫습니다” 해서 바삐 장을 보고 나와 마트 앞에 서서 차를 가지러 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미니밴 옆에 서서 열려진 트렁크에 실린 무언가를 가리키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파마머리의 전형적인 중년의 한국 아줌마. 뜨거운 여름 햇볕에 그을린 탓인지 어두운 얼굴에 검은 티셔츠, 검은 바지, 검은 앞치마를 두르고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가게 앞에서 허가 없이 무엇을 파는 것이 부끄러워서인지, 두려워서인지, 차마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 트렁크 안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게에서 새어 나온 흐린 불빛으론 열린 트렁크 안에 진열된 것들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차 가까이 다가가는데 남편의 차가 그 미니밴 뒤에 세워졌다. 남편이 우리가 산 것을 차에 싣는 동안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김치와 밑반찬, 흰 가래떡과 현미 가래떡, 백설기, 팥 시루떡. 미니밴 트렁크와 젖혀진 뒷자리에 진열된 것들이었다. “가래떡은 얼마예요?” 무어라도 팔아주어야만 할 것 같아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10불이요.” 포장된 가래떡은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큼직하고 두 배는 들어 있는 듯 보였다. “현미 가래떡 하나 주세요.” “20불에 세 개 가져가세요. 아까워서 그래요.” 짐을 다 실은 남편이 다가와 보더니 “가래떡 두 팩에 시루떡 한 팩으로 주세요.” 하며 20불을 건넸다. 그녀가 건네준 떡은 묵직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선 “7월 11일 내일 드디어 브랜슨이 첫 민간 우주여행을 떠납니다!”하며 상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국 뉴멕시코의 황량한 사막이 펼쳐진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에서 출발한다니 미국인에겐 특별히 역사적인 날인 듯하다. 더운 여름, 길에 서서 음식을 팔던 그녀의 땀 맺힌 얼굴이 마음에 남은 내겐 그들의 흥분은 하늘의 별처럼 멀리 느껴졌다. 되레 7월 11일이라는 말에 플레미쉬 날과 함께 어린 시절 보았던 TV 만화 ‘플란다스의 개’가 떠올랐다.
2017년 여름 이후론 7월 11일이면 벨기에를 떠올린다. 가족 휴가의 첫 여행지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도착한 날이 7월 11일이었는데 도심 광장에 커다란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때 그날이 ‘플레미쉬 공동체의 날(Day of the Flemish Community)’로 13세기 말에 치른 프랑코-플레미쉬 전쟁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과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 ‘플란다스 개’의 플란다스가 벨기에에 속한 땅으로 플레미쉬(Flemish)가 플란다스를 지칭한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살던 꼬마 넬로와 그의 충견 파트라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방세를 내지 못해 길에 나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어린 넬로와 함께 불 꺼진 성당에서 얼어 죽어간 파트라슈의 모습이 내 어린 마음에 동판처럼 새겨져 있었나 보다. 나이 들고 지친 몸으로 우유 통이 든 수레를 나르던 파트라슈와 함께 눈가에 주름진 얼굴에 땀을 닦던 그녀의 모습이 겹쳐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플란다스 개의 어린 넬로처럼 그녀에게도 돌보아야만 할 그 누군가가 있는 것일까. 머나먼 별은 무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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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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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사는 지구촌에 이웃에 아직도 산적해있는 해야할일 해야만 할일들이 산적해 있다고 한편으론 쌩각하면서 그래도 말입니다 그래도 먼 훈날 훈날 지구촌에 요런자의 노력이 모험이 우리에게 또다른 배가 비행기가 인터넷 전화기 전기가 되질않을까를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