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가 패션잡지 ‘보그’ 8월호의 표지를 장식한 뉴스가 정가와 언론에서 한동안 회자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전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는 수퍼 모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보그에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전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는 8년 백악관시절에 3회나 보그의 표지모델이 되었고, 힐러리 클린턴은 영부인 시절에 한번,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에 또 한 차례 커버를 장식했다. 게다가 현 세컨드레이디 카말라 해리스조차 올해 2월호 보그에 특유의 바지정장과 컨버스 운동화 차림으로 표지에 나와 화제가 된 바 있다.
보그(VOGUE)가 어떤 잡지인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매거진”(뉴욕타임스 평)이며, 26개국에 1,250만 명의 독자를 보유한 ‘패션바이블’이고, 30년 넘게 재임해온 편집장 애나 윈투어는 ‘세계 패션계의 대통령’으로까지 불린다. 2006년 히트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바로 그 난공불락의 윈투어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보그의 상징성은 패션계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뷰티, 문화, 런웨이, 삶과 디자인을 포함한 예술전반에 걸쳐 품격 있는 정보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일반 매거진의 한계를 초월한다. 보그 표지에 등장한 패션모델은 평생의 꿈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스타들과 유명인사들도 여기 커버로 등장하면 곧바로 뉴스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톱모델 출신인 멜라니아의 ‘굴욕’은 의미심장하다. 윈투어 편집장은 지난 4년 동안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멜라니아가 왜 보그 표지에 등장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2019년 CNN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셸 오바마 여사와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처럼 글로벌 관점에서 여성에게 영감을 주고 아이콘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멜라니아 여사를 표지모델로 세울) 때가 아니다. 모든 면을 살펴야 공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멜라니아 대변인이었던 스테파니 그리셤은 “보그 표지를 장식하는 게 멜라니아를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퍼스트레이디가 되기 이전에 거기 나왔다. 퍼스트레이디에게는 얄팍한 사진이나 찍고 표지를 장식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이 많이 있다”고 발끈하면서 “패션잡지 산업이 얼마나 편향적인지, 윈투어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속이 좁은지를 보여준다.”고 거칠게 비난했다.
실제로 멜라니아는 보그 표지에 나온 적이 있다. 2005년 트럼프와 결혼할 때 크리스찬 디올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에는 역대 미 대통령부인들과 달리 대외행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형 퍼스트레이디로 불렸고, 이렇다 할 정치적 사회적 행보를 남기지 않았다.
그런 한편 보그가 멜라니아에게 인터뷰를 타진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녀의 백악관 뒷얘기를 폭로한 책 ‘멜라니아와 나’에 따르면 보그는 트럼프 임기 초반에 영부인 생활을 취재하려고 했다. 그러나 커버모델이라는 보장을 해주지 않자 멜라니아는 “보그 아니라 어떤 잡지에도 커버 아니면 안 나간다”며 거부했다. 이 책은 멜라니아의 친구 겸 보좌관이었으나 사이가 틀어진 스테파니 윈스턴 월코프가 썼는데, 그녀는 멜라니아가 이 일로 격분하여 욕설을 퍼붓는 소리를 몰래 녹음했다가 훗날 폭로했다. 녹음내용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나돌고 있다.
보그의 ‘멜라니아 패싱’에 분노한 것은 본인만이 아니다. 트럼프도 작년 12월 소셜미디어가 차단되기 바로 전 트위터에서 “패션업계의 잘난체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이 미 역사상 가장 우아한 퍼스트레이디를 4년 동안 매거진 커버에서 외면했다”고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데 보그 잡지가 민주당 성향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공화당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는 한 번도 커버에 나온 적이 없음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커버는 아니어도 다른 모든 공화당 영부인들은 재직시절 보그에 인터뷰가 실렸었다. 로라 부시, 바바라 부시, 낸시 레이건, 로잘린 카터, 베티 포드, 팻 닉슨, 레이디 버드 존슨, 재클린 케네디, 메이미 아이젠하워, 엘리노어 루스벨트, 루 헨리 후버가 그들이다. 멜라니아 패싱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다.
한편 질 바이든 여사의 보그 커버는 백악관 내 트루먼 발코니에서 오스카 들라 렌타의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유명 사진작가 애니 라이보비츠가 찍었다. 커버사진 외에도 인터뷰 기사와 함께 이스트룸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 백악관집무실 옆 패티오에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다정한 포즈 등 5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보그는 인터뷰 기사를 통해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는 교육학박사 바이든 여사는 퍼스트레이디의 살인적인 일정을 쪼개 여전히 워싱턴의 노던 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세과목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교육자를 넘어 행정부의 핵심이며 비밀병기인 그녀는 인프라와 교육, 공중보건 등 중요한 이슈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아내에 대해 “8년의 세컨드레이디 경험을 통해 백악관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준비된 퍼스트레이디”라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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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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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됨됨이를 가름하는데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영부인의 됨됨이를 보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