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명예 등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불행했던 문학 속의 대표적 인물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이다. 미모에 돈 많은 귀족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안나 카레니나는 누가 봐도 부러울 것 하나 없을 것 같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방황을 거듭하다 기차에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한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를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가 엇비슷하다. 모든 불행한 가정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이 한층 더 유명해지게 된 것은 진화생물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퓰리처상을 받은 자신의 책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 인용하면서부터이다. 다이아몬드는 이 문장에 대해 “톨스토이는 행복해지려면 결혼이 많은 측면들에서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 했다. 성적인 매력, 돈에 관한 의견일치, 아이들 훈육, 종교, 사돈들 그리고 다른 중요한 문제들이다. 이런 것들 가운데 하나라도 실패하면 행복에 필요한 다른 모든 것을 갖고 있다 해도 그 결혼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문학평론가도 아닌 다이아몬드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라 이름을 붙이며 톨스토이를 인용한 것은 무수한 초식성 포유류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가축이 된 것은 가축화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들 가운데 한 개만 어긋나도 가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 정작 가정의 행복과 불행을 적절하게 진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 가지 때문에 실패하는 가정들이 있는 반면 아무 것이 없는데도 단 한 가지가 있어 행복한 가정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은 ‘완벽한 가족’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무수한 사람들에게 불행감을 안겨온 주범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수많은 가족들이 ‘환상 속의 가족’과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자책하거나 좌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가족 간 문제들보다 이런 심리적 강박과 위축이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완벽한 가족’에 대한 환상은 오히려 가족들 간에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아무리 피를 나눈 관계라 해도 가족들 간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애써 갈등을 외면하거나 덮는다고 해서 완벽한 가족이 될 수는 없다.
피를 나눈 가족들 간에 끈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문제는 이것이 존중되어야 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영역에까지 종종 무차별적으로 파고든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가족사이라 해도 서로 간에 분리와 경계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무너질 때 가족은 서로에게 고통과 상처가 된다.
가족들 간의 관계를 망치고 상처를 안겨주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신과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로 여기는 ‘동일시’의 심리이다. 동일시는 책과 영화를 즐기는 데는 꼭 필요한 심리작용이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많은 폐해와 병리현상을 낳는다.
대표적인 것이 자기 아이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부모들이다. 특히 한국부모들이 그렇다. 자식을 독립적 개체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자아가 확대된 존재로 여긴다. 자신의 탐욕을 자녀들에게 투사하거나 결핍을 자녀들을 통해 보상받으려 한다. 여기서 가족의 갈등과 불행이 싹튼다.
가족 사이의 갈등을 줄여나가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바탕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태도이다. 한 가족이라고 해서 생각이 다 같거나 비슷할 수는 없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다름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보다 더 큰 갈등으로 증폭되기 쉽다.
NFL의 스타 쿼터백 애런 로저스가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가족과 대화조차 끊었을 정도로 불화해오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가족의 불화 원인은 종교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가족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종교나 정치적 이념이 다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다름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남들만도 못한 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결국 가족의 행복과 불행은 태도와 인식의 문제인 것이다. 조건과 환경이 절대적이라는 다이아몬드의 진화이론과는 다르다.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거나 뒤섞여 있는 것이 대부분 가족들의 모습이다. 다만 노력에 따라 그 비율이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그러니 ‘완벽한 가족’이라는 신화에 짓눌리거나 주눅이 들 필요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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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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