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9일은 1992년 일어난 ‘4-29 폭동’의 기념일이다. 한 흑인 교통위반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난폭하게 구타하는 장면이 찍힌 비디오가 공개되었고, 과잉진압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경찰관들에게 무죄 평결이 나오자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킨 날이다. 비슷한 시기에 흑인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한인 여성이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흑인소녀와 옥신각신하다가 살해한 것이 과잉행위라는 논란으로 언론에 오르내린 사건이 있었다. 무죄 판결 난 경찰관들에 대한 분풀이가 엉뚱하게 한국인에게로 향하게 된 배경이었다.
평소 많은 한인들이 흑인지역에서 장사하여 돈을 벌면서도 흑인들에게 차별적 시선을 보여온데다가 항상 고급차를 타고 다니면서 흑인사회에 기부하는 일에는 인색한 데 대한 불만이 불붙여진 것이었다. 2,300여 한인업소가 약탈 또는 방화되었고, 53명의 사망과 4,000명이 부상하는 인명피해가 있었는데도 경찰은 한인지역보다도 안전한 일본 타운과 유대인 타운을 방어하는데 대부분의 병력을 투입했다.
한인 이민사 100년 초유의 사건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았지만 이를 계기로 얻은 것이 오히려 더 많았다고 나는 평가한다. 당시 한인교포들의 분위기는 자식 교육을 위해 이민 길을 택했다고 하는데도 정작 언어장벽 때문에 심도 있는 대화가 단절되어 그들을 ‘잃어버린’ 세대로 여기는 자포자기적 분위기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표적이 한인들로 바뀐 억울한 상황에서 TV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면 흑인들은 유창한 영어로 왜곡한 주장을 펴는데 반해 한인들은 언어장벽 때문에 마이크를 피할 수밖에 없어서 자연히 언론에는 일방적으로 흑인들의 주장만 방영될 수밖에 없었다.
이 억울한 상황을 보다 못한 영어권의 우리 자녀들이 일어섰다. 잃어버린 줄로 여겼던 자녀들 역시 ‘한국인’임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들 역시 아무리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밖에 모른다 해도 영원히 ‘한국인’으로 취급 받을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이 나라에서 정당하게 권리를 찾으려면 자녀들을 의사나 변호사만이 아닌 각계각층에 고루 진출시켜야 됨을 인식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한인 2세들이 주축이 되어 계획한 5월2일의 ‘평화대행진’에는 나도 참여했는데 10만명, 그것도 많은 2세들이 참여한 질서정연한 행진이었다. 흑인에 대한 분노나 원망의 차원을 넘어 인종화합을 부르짖음으로써 불행을 건설적 방향으로 승화시킨 한인들의 역량이 미 주류 TV나 언론들로부터 대단한 찬사를 받았던 행사였다.
그러나 아쉬운 것 한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당시 폭동 피해자들을 위해 국내외 많은 동포들로부터 수천만 달러의 거액 성금이 답지했었다. 그 사용을 놓고 많은 의견들이 있었는데 대다수 동포들의 권고는 큰돈을 쪼개면 푼돈이 되어버리니 지혜롭게 투자하여 지속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라는 것이었다.
피해자 자녀 장학재단 설립이라든지 한인사회를 위한 회관이나 사업체를 만들고 수익금으로 피해자에게 지속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것 등의 의견들이 있었다. 유대인이나 타 민족 같으면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의견들이 제시됐고 많은 피해 당사자들도 그것을 원했지만 논쟁 끝에 3,000달러 정도씩 나누어가짐으로 그 거금이 쪼개져 바람 속에 흩어져버린 것이다.
만약 당시 멀리 보는 비전이 있었더라면 근 30년이 지난 지금 한인사회는 큰 재산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며 피해자들은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을 지금까지도 받고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의 교훈은 보험회사에서 피해 보상을 받을 때는 세금보고가 보상의 기준이 되는데 많은 한인업소들이 수입을 줄여 보고했기 때문에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120여 민족이 어울려 산다는 이곳에서 왜 하필 한인이 타겟이 되었는지를 진단한다면 동족인 탈북자를 차별대우하는, 우리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지독한 차별의식 때문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인종차별 하면 미국을 연상하지만 솔직히 흑인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나 제3국에서 온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한국인보다 더 심한 민족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의 사회, 정치, 지역, 심지어는 종교계에까지 만연해있는 독선과 정죄, 차별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4-29 사건의 교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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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은퇴의사-라구나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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