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월경 사태는 바이든이나 트럼프 때, 혹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위협을 벗어나기 위해, 굶주림과 종교 핍박을 피해, 안전한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세계의 난민들은 오늘도 국경을 넘고 있다. 중남미에서는 미국 국경의 리오 그란데 강을, 북한 주민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중동과 북 아프리카에서는 지중해를 건너고 있다.
파리나 런던에 유서깊은 박물관, 오페라 하우스, 명품 부띠크만 있는 게 아니다. 도시외곽에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주민들이 정착해 도시 빈민으로 공존하고 있다. 테러가 국내 사건처럼 터지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이주민은 원래 한 나라의 국내 문제였다. 개발연대의 한국에서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농촌 청년들이 공장에서, 상점에서, 혹은 일반 가정의 부엌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소 판돈을 들고 튀었던 소년 중에는 성공신화를 쓴 사람도 있지만, 많은 청년들은 도시의 뒷골목에서 곤고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이런 현상이 지금은 국제화됐다. 농촌에서 도시가, 시리아에서 프랑스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온두라스의 크리스토퍼 부모들은 갱단에서 가입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아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이제 10살, 등을 떠밀어 혼자 미국으로 보냈다. 크리스토퍼는 걸어서 석달 만에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도착했다. 무리를 이룬 700여명은 밀입국 알선업자의 안내로 지난 3월25일 밤 뗏목을 타고 리오 그란데를 건넜다. 크리스토퍼 일행은 다음날 아침 바로 국경순찰대에 체포됐다.
크리스토퍼는 품속에 출생 증명서 한 장을 간직하고 있다. 뒷면에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살고 있다는 친척 아주머니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부모의 바램 대로 그가 앞으로 미국서 살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부터 닥치는 일은 모두 이 10살짜리 아이가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 들어서면서 보호자 없이 미국으로 오는 아동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지난 3월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다 체포된 중남미 밀입국자는 17만여명으로 그 전달보다 70% 정도 늘었으나, 그중 1만9,000명 가까이가 나홀로 미국행 아이들이었다. 한 달새 1만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
10대가 많지만 그보다 더 어린 아이도 있고, 임신한 소녀도 있다. 얼마 전에는 밀입국 브로커가 에콰도르 국적의 3살, 5살 자매를 높이 4미터가 넘는 국경장벽 너머로 짐짝처럼 던져 버린 후 달아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미국정부가 우선 이런 아이들을 거둬주기 때문이다.
트럼프 시대에는 망명 신청자를 포함한 무단 월경자는 국경에서 바로 추방되는 예가 많았다.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새 행정부는 지난 1월말부터 공중보건과 사회복지, 인권에 관한 법률인 타이틀 42를 전과는 달리 적용해 나홀로 미성년자의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크리스토퍼처럼 혼자 온 아이들은 먼저 세관 국경경비대(CBP) 시설에 수용된 다음, 72시간내 보건복지부(HHS) 산하 난민 정착사무소(ORR)로 넘어 가게 되어 있다. 거기서 지내면서 부모나 미국내 친지등과 연결되고, 전혀 연고가 없으면 22개 주에 170개 정도 있는 정부지원의 기관에 보내진다. 이민이나 난민 승인 여부가 결정되기까지는 보통 2년 이상이 걸린다.
밀입국 아이들이 넘쳐나면서 지금은 ORR의 수용시설부터 턱없이 부족해졌다. 댈러스, 휴스턴, 샌 안토니오, 엘파소 등 텍사스 내의 컨벤션 센터와 교회, 군 기지와 가설 텐트 등이 수용소로 급조돼 이들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가장 먼저 샌디에고 컨벤션 센터가 개조돼 지난달 말부터 1,450명의 밀입국 아동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롱비치 시도 한시적으로 컨벤션 센터를 수용시설로 내주기로 하고, 연방 관계당국과 마지막 세부사항을 조율하고 있다. LA카운티 축제가 열리는 포모나의 페어 플렉스, 중가주의 주 방위군 시설도 수용시설로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라티노 이민자 권익단체들은 당국이 이런 임시 시설에 아이들을 둘 것이 아니라 가족 재회등 미국정착을 돕기 위해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고 바이든을 뽑았다는 입장이다. 일반 미국민들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문제다. 아이들은 세금으로 먹이고 재우고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일등국가로서 이들을 포용하는냐는 미국민의 결정에 달려 있다.
지난해 전 세계의 난민은 8,000만 명을 넘었다는 통계가 있다. 이주민 문제는 이미 특정 대통령이나 국가 단위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도입해도 머리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한 나라만 잘 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멕시코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이들의 나홀로 미국행은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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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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