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뮬러스 체크가 도착했다. 부부 합산 2,800달러다. 우리 가족은 둘이지만 미성년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액수가 더 클 것이다. 부모와 자녀의 수령액이 똑같이 1,400달러니까 4인 가족의 경우 5,600달러를 일시불로 받게 된다. 거기에 더해 자녀부양 세금 크레딧도 빵빵하다니, 적지 않은 가정들에겐 ‘횡재’나 다름없다.
뉴욕타임스 분석에 따르면 자녀 있는 가구의 현금혜택은 평균 6,660달러에 달한다. 미국에서 거의 40년을 살았지만 연방정부로부터 이렇게 큰돈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우리 같은 서민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눈먼 돈’이다.
이와 함께 경기부양법안의 다음 프로젝트로 바이든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5,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투자에 나선다고 한다. 미국의 도로, 교량, 철도, 공항 등 교통인프라는 대부분 1950~60년대에 건설되어 많이 낡았기 때문에 투자의 필요성과 공감대도 형성돼있는 분위기다. 물론 이 정도의 지원과 투자로 지난 1년의 손실이 만회되지는 않겠지만, 두 차례에 걸친 정부의 통 큰 지원이 없었다면 미국의 경제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을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 주도로 구제를 베푼 역사는 의외로 길다. 로마의 10대 황제 티투스는 즉위 두달 만인 79년 8월24일, 베수비오화산이 폭발하는 대재난을 맞았다. 폼페이와 헤르클라네움 도시 전체가 매몰된 이 재난의 복구를 위해 티투스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재해현장에 직접 나가 진두지휘하며 위기를 수습했다.
그런데 바로 이듬해 로마 시에서 대화재가 발생하고 페스트가 만연하는 등 또다시 재난이 찾아왔다. 그는 로마의 재건에 힘쓰는 한편 질병퇴치 및 구제사업을 펼치며 2년3개월의 치세기간 대부분을 재난복구로 보내다 열병에 쓰러져 죽었다. 그를 훌륭한 황제로 평가한 로마시민들은 사후 ‘티투스 개선문’을 세웠고 지금도 로마 한복판에 서있다.
로마 이후 약 1,000년이 넘는 중세시대까지 서양에서의 재난구제는 국가나 왕이 아닌 교회가 담당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이 교회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교회를 통해 교육과 선교, 구제, 사회봉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빈민구제를 교회가 아닌 정부가 책임지기 시작한 것은 1601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빈민법’이 처음이다. 수년간 계속된 흉작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빈민과 실업자가 늘어나자 정부는 이들을 여러 층(노동능력이 있는 빈민과 없는 빈민, 빈곤아동, 장애인 등)으로 구분하여 작업장, 구빈원, 도제시설, 교정원 등으로 보내 구제했고, 생활수준과 가족 수를 고려해 수당을 지급했다. 이 법은 이후 200년 동안 보완 변형되면서 근대적 사회복지의 초석이 되었다.
그런데 로마와 유럽보다 더 오랜 구휼(복지)의 역사가 다름 아닌 한반도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홍익인간을 기본이념으로 세워진 고조선 시대부터 북부여,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는 빈민구제를 위한 다양한 공공부조가 있었다.
고려말 문신인 행촌 이암이 1363년에 기록한 ‘단군세기’는 고조선의 1세 단군 왕검(BC 2333)부터 47세 단군 고열가(BC 295)까지 2,000여년의 실록을 담은 책이다. 여기에 27세 단군 두밀이 기원전 990년 “심한 가뭄이 든 뒤에 큰 비가 내리자 백성들이 곡식을 거둬들이지 못했다. 임금께서 곡물창고를 열어 두루 나눠주게 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구호정책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어쩌면 세계최초일지도 모른다.
또 ‘삼국사기’(김부식, 1145)부터 ‘목민심서’(정약용, 1818)에 이르는 책들이 다양한 재난구제정책을 기록했고, ‘구휼국사’(신정언, 1946)는 한반도 역대 왕조의 구휼정책과 제도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고구려 때는 백성들이 궁핍한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추수 때 갚도록 한 ‘진대법’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재해와 질병수습을 위한 ‘구제도감’, 굶주림을 다스리는 ‘구급도감’ 등을 운영했으며, 재난 때 세금과 부역을 감면해주는 ‘견감제도’도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구휼정책이 있었는데 특히 세종대왕은 재난 예방 및 대처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평상시에도 재난에 대비한 구휼 물품을 항상 준비하도록 했고, 큰비가 내리면 수재가 우려되는 곳에 수문을 열고 관원들이 밤새 순시하도록 했다.
흉년에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구휼미를 사용했으며, 전염병이 심각해진 고을에는 그 지역 출신의 관리나 해당분야를 잘 아는 사람을 파견하는 등 전문가 중심의 위기대응책을 펼쳤다. 세종 8년 한성에서 큰불이 나 민가 2,150호가 전소됐을 때는 피해백성들에게 식량 공급, 부상자 치료, 사망자 장례비 지원, 그리고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목을 공급했다.
세상이 달라져서 나라님도 없고 구휼미도 없지만, 재난 당한 국민을 살피는 일은 여전히 정부의 몫이다. 바이든의 스티뮬러스 체크로 팬데믹에 지친 많은 미국인 가정들이 여유를 갖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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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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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불상사를 당행을때, 우리나라 우리대통령이 나를 구해줄것"이란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정부의 국민들은 가장 행복한국민!!!
언젠가는 다시 우리모두가 벌어서 세금으로 내야할돈이지만 지금 발등에 불이낫으니 그것부터 끄고 볼일이지요..현정부 아직은 잘 하고 있다고 볼수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