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부 시인의 고장 칼프에서 태어난 헤르만 헤세는 원래는 시인이었다. 그의 많은 시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詩)는 ‘책’이다. 이세상의 모든 책들이/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하지만 남몰래 가만히 알려주지/그대 자신속으로 돌아가는 길을....해와 달과 별/ 그대가 찾던 빛은/그대 자신속에 깃들어 있으니. 그대가 오랫동안 책속에 파묻혀/구하던 지혜/ 펼치는 곳마다 환히 빛나니/이제는 그대의 것이니.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의 북서쪽 7km 떨어진 곳에 다라야라는 도시가 있다. 아사드 독재정권은 반군세력이 있다하여 2012년에서 2016년까지 봉쇄하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이 도시에 퍼부었다. 드럼통안에 고철을 채우고 폭발제를 넣은 드럼통 폭탄을 투하하는데 이 폭탄은 터지면서 고철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가 아무데나 가서 박힌다. 다라야에서는 하루에도 20개이상의 드럼통폭탄이 터진다.
이스탄불 주재 프랑스 기자 델핀 마누이는 어느날 페이스북에서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지옥 같은 시리아에서 혈흔도 탄흔도 묻지 않은 생경한 사진, 책이 빼곡히 쌓여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두 젊은이의 옆모습”이었다.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내쉬는 가냘픈 숨소리처럼 그 사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묻고 물어서 어렵게, 사진을 올린 사람을 찾았고 그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을 올린 사람은 무자헤드 아흐마드(Ahmad Moudjahed)였다. 그 둘의 첫 연결은 2015년 10월 15일 열악한 인터넷으로 화면의 얼굴이 피카소의 그림처럼 일그러지고 점선이 되어 사라지기도 하고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대화는 자꾸 조각이 났지만 마누이 기자는 ‘조각난 진실을 모으는 일’을 위하여 계속 말을 걸었고 아흐마드는 쉴 새 없이 퍼붓는 폭격과 허기짐 속에서 그들만의 은밀한 요새, 지하 비밀 도서관에서 “미친듯이 책을 읽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조각난 진실들이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이라는 책으로 모아져 세상에 말을 걸고 있다.
아흐마드는 2013년 말쯤 친구를 따라 무너진 담장을 넘어 한 건물로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서자 한 줄기 빛이 두꺼운 먼지를 뒤집어 쓰고 마루에 흩어져 있는 책의 잔해를 비추었다. 천천히 무릎을 꿇고 시꺼먼 먼지를 뒤집어 쓴 책 하나를 집어 올렸다.
그런데 두터운 먼지가 덮인 책 겉장에 손톱이 긁히면서 “무슨 악기 소리”가 남을 느꼈다. 그때 그는 갑자기 “몸이 떨리고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함을 느꼈다고 한다. 아흐마드는 “도망치듯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면서 “내가 처음 시위에 나섰을 때와 같은 해방의 전율이었어요” 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후 40여명의 친구들과 함께 비행기 소리가 잦아들 때 쯤이면 부삽을 가지고 책을 수집하러 다녔다. 한달여 기간동안 1만5천여권의 책을 찾아냈고 비행기의 사정 거리를 좀 벗어난 건물의 지하 공간을 찾아 옮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은 오래전에 출판된 미국 작가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었다. 그책을 외투 속에 숨겨 돌아가면서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는데 색이 바래고 귀퉁이가 닳았지만 읽히고 또 읽혔다. 이 책은 끊임없는 폭격속에서 수렁에 빠져 고통스러운 영혼을 쉬게 하는 안락의자와도 같았던 것 같다.
다행히 살아남은 아흐마드는 기자와의 첫 대면에서 말한다. “우리는 끝난 것이 아니예요. 아사드가 한 도시를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우리들의 생각은 무너뜨릴 수 없지요. 저는 이렇게 자유로운 느낌이 든 적이 없어요.”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의 반아사드 젊은이들은 새로운 정신을 탐구하면서 작은 촛불 같이 조금씩 어두운 밤의 출구를 찾아갔다, 실지로 그 촛불은 독서로 찾아낸 자신들이 속에 깃든 빛이었다. 그 빛은 폭탄으로 파괴할 수 없다. 한번 켜진 빛은 그들이 지키려 했던 나라와 자유를 위하여 자랄 것이다.
책을 없애려 했던 모든 독재자들이, 중국의 문화혁명이나 독일의 나치가 그러했듯이,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불태울 수는 있어도 책이 찾아 준 독자의 마음속 빛은 자라서 언젠가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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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 기후 전문가,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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