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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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모리스의 약력
△1734년 1월 31일 영국 리버풀 출생 △1748년 필라델피아에서 수학 △1754-93년 필라델피아 Willing & Morris Co. 동업자
△1775-78년 대륙회의 대의원 △1779-81년, 1785-86년 펜실베이니아 입법부 의원 △1781년 Bank of North America 설립
△1781-84년 연합회의 재무담당관 △1786년 애나폴리스 회의 대의원 △1787년 제헌회의 대의원 △1789-95년 합중국 상원의원
△1798-1801년 채무로 수감 △1806년 5월 8일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영면
필라델피아의 대부호이자 거상으로 “혁명의 물주”로 불리는 로버트 모리스는 대륙군을 대신하여 빈번하게 그의 재산을 위험에 빠뜨렸고, 군수물자로 지나친 이익을 남긴다고 의심도 받았던 일도 있었으며 해소는 되었지만 말년에는 모든 것을 잃고 3년간 채무자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다.
모리스는 로저 셔먼과 함께 건국을 위한 세 가지 주요 문서 독립선언서, 연합헌장, 그리고 합중국 헌법에 모두 서명했던 2인으로 족적을 남겼다.
애국파 가운데 보수주의자였던 모리스는 1775년 대륙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 전까지는 인지세법 반대 항의서에 서명한 것 말고는 활동이 거의 없었으며, 처음에는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독립을 지지하지 않았다. 독립선언서의 채택을 위한 표결에는 기권했었지만 서명은 했다. 또한 1778년 연합헌장에도 서명했다.
대륙회의가 영국의 위협으로 인해 필라델피아에서 퇴각했던 1776년 모리스는 남아서 실행위원장으로서 정부의 책임을 다했다. 그 해 말 워싱턴은 진격을 위한 군비를 요청했고 모리스는 개인 신용을 담보로 자금을 확보함으로써 그해 12월 워싱턴이 트렌턴에서 독일용병을 격파할 수 있었다.
전쟁의 나머지 기간 동안 모리스는 공식, 비공식으로 재정과 군수를 담당하는 최고의 민간인이었다. 1781년 5월 연합회의는 그를 재정감독관이라는 새로운 직책에 임명했다. 그해 여름 그는 워싱턴과 긴밀히 작업하며 요크에 주둔한 콘월리스를 전면 공격하기 위한 지원 계획을 수립했다. 이번에도 모리스는 탄약과 군수품을 자신의 개인보증으로 구매하여 지원했다.
1779년 대륙회의 소속 어느 위원회는 모리스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그의 회사를 통해 지나친 이익을 남긴다는 고소를 취하했다.
전쟁 후 모리스는 계속해서 연합회의 재정담당관직을 유지하였으나 연합회의가 해야 할 일과 그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회원국 사이에서 발목이 잡혀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의 신용은 거의 탕진되었고 수차례나 사직을 고려했으나 떠나지 않았다. 그는 최초의 국립은행을 설립했으나 펜실베이니아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가 사임했던 1784년 경 연합정부는 해외에서 사실상 신용이 전무했고, 이에 모리스는 강력한 중앙 정부 수립을 촉구했다. 애나폴리스 회의에서 그는 필라델피아 회의를 개최하는 데 찬성했다. 제헌회의 기간 동안 그는 워싱턴의 숙식을 제공하며 워싱턴을 사회자로 추천했고 9월에는 최종본에 서명했다.
모리스는 워싱턴으로부터 새 정부의 재무장관직을 제안 받았으나 고사했고, 펜실베이니아 초대 합중국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야인으로 돌아간 후에는 무리하게 토지 투기에 뛰어들어 전 재산을 날리고 말았다. 1798년부터 1801년까지 그는 필라델피아 채무자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빈털터리에 잊혀진 사람이 되어 출소했다.
●번역자 이종권 씨는
서울 상문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동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캔사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로 번역가다. 외국어대학교와 경인여대에서 영어 강사를 역임했으며 캔사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뉴욕불교’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뉴저지에서 출판사인 프론티어 퍼블리케이션스를 비롯 보림식품, 뉴욕산삼컴패니 등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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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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