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년을 그림자같이 붙어다녔던 철학과 친구가 독일에서 책 한 권을 선물로 보내왔다. 문학평론가 강인숙(이어령교수 부인)씨가 펴 낸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이다.
제목이 주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나를 설레게 했다. 편지는 나에게도 젊은 날 내면적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슬픔 보다는 편지를 읽는 기쁨으로 해서 내 삶에 활력과 풍요로움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을 열면 하얀 공간에 편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짤막한 정의가 내려져 있다. 네 줄로 함축된, 시와 같다. 편지는 수신자 혼자서만 읽는// 호사스런 문학이다// 그것은 혼자서 듣는//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같다.
1979년 여름이었다. ACEC에 입사한 지 9년째 되던 해다. 사장 Spiller 씨가 내 방을 찾아와 아주 정중히 “이건 귀하의 나라 코리아에서 온 편지인데 귀하가 처리해 주면 고맙겠다”면서 국제항공우편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네 주었다. 코리아에서 온 편지라고? 아! 코리아, 꿈에도 그리는 코리아! 그 때의 나는 그랬었다. 그래서 가슴이 뛰었다.
너무도 놀랍고 반가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대한건설협회에서 건축계약문서 (Contract Document)를 리바이즈 하려는데 미국이 사용하고 있는 건축계약문서를 참고로 하고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5,300의 우리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각종 건축계약문서 리스트를 즉시 보내면서 편지 한 귀퉁이에 한글로 이런 낙서를 했다. ‘코리아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국입니다. 반갑습니다.’ 그 쪽에서도 내 편지를 받고 한국인, 더구나 한국여성이 이 회사에 있음에 몹시 놀랬다는 사연과 함께 필요한 문서들을 신청해왔다. 몇가지 건축계약문서를 기증형식으로 급히 보내주었다.
얼마 후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책 한 권이 배달 되었다. 송지영 저 ‘그 산하 그 인걸’ 이다. 실로 10년만에 만져보는 한국책! 나는 회사 동료로부터 필독의 문학서적으로 추천을 받아 읽고는 큰 충격에 빠졌던 스캇 휫저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답례로 보냈다.
건축계약문서가 인연이 되어 그날부터 태평양 상공에는 서울과 워싱턴을 잇는 구름다리가 놓여졌고 이를 통해 지난 30년동안 수 많은 편지와 책들이 오고 갔다. 읽을만한 신간서적이 나오면 두 권씩 사서 한 권은 내게 꼭꼭 보내주고 있노라 했다.
출판이 금지되었던 월북 작가들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자 정지용전집을 선두로 여러 권의 문학서적들을 서둘러 보내면서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아주 오래 전 한국전쟁 때 아직 중학생이던 꿈 많은 시절, 피난길의 그 많은 무료한 나날을 보낸 산과 들에서 이태준의 문장강화와 상허문학독본을 읽고 또 읽으며 어린 가슴에 전쟁이 주는 비애를 달랬습니다…..”
그가 코리아 헤럴드지에서 영문기사를 담당하고 있을 때 언론탄압으로 벽에 부딪힌 그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S기업으로 뛰어들어 해외 건축시장 개척의 중역으로 세계 구석구석을 숨막히게 누비고 다닌다 했다.
바로 이 시기였다. 나이지리아에서 그림엽서 한장이 날아왔다. 울창한 숲 속에 야생화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한적한 오솔길을 물동이를 이고가는 젊은 여인의 그림이었다. 폴 고갱의 ‘타히티안 여인들’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원색의 색채를 띈…. 그런데 그 편지는 얘기를 하다 말고 뚝 끊긴 채로 보내 왔다. 공항에서 급히 몇 자 적다가 보딩 했나보다 했는데 이튿날 쓰다 만 또 한 장의 그림엽서가 날아 왔다.
거기에도 잘 있으란 인사말 같은 것은 없었다. 셋째 날에도 그 낯익은 필체의 그림엽서가 날아왔으니 ‘자, 오늘은 이만 안녕! 서울가서 다시 씁니다.’ 라고 비로소 끝을 맺었다. 그제서야 자세히 살펴 보니 엽서 한 구석에 깨알 같이 작은 1, 2, 3 의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한 날 한 시에 써보낸 석장의 그림엽서가 뿔뿔이 헤어져 하루 한 장씩 배달되어 사흘을 연거푸 편지를 읽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었다.
그 무렵 우리 회사는 “Brainstorming” 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아이디어창출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느라 정신이 몹시 혼돈해 있을 때 사흘에 걸쳐 한 장씩 날아 온 그 그림엽서들은 지쳐있던 나를 햇빛 쏟아져내리는 나이지리아의 푸른 초원으로 이끌어내어, 잠시 일손을 멈추고 신선한 이국의 정취에 취하게 해 주었다.
후일, 이 유머러스한 석장의 그림엽서 사건(?)은 나로 하여금 종종 이름 지을 수 없는 미소를 자아내게 할 것이며 30년이란 긴 세월,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연주되는 호사스런 문학의 산책길을 걷게 해 줌으로써 나의 내적 성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주었던, 헤아릴 길없이 깊고 따스하고 한결 같았던 그의 우정의 고마움은 어떤 말로 표현한다 해도 미흡할 뿐이다.
<
이경애 / 락빌,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