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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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리빙스턴의 약력
△1723 11월 30일 뉴욕 알바니 출생 △1741 예일대학 졸업 △1748 변호사 개업
△1752-53 주간지『인디펜던트 리플렉터 The Independent Reflector』발행 △1772 법조계 은퇴
△1774 통신위원회 회원 △1774-76 대륙회의 대의원 (뉴저지 대표) △1776 뉴저지 민병대 준장
△1776-90 뉴저지 최고행정관·주지사 △1787 제헌회의 대의원 △1790 7월 25일 뉴저지 엘리자베스타운에서 영면
정의를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남자였던 윌리엄 리빙스턴은 폭정이 눈에 띄는 곳에선 어디서든 펜과 칼을 들고 싸웠다. 변호사 겸 작가였던 그는 뉴욕시에서 지나치게 많은 영국성공회 교회와 법조계의 문제점을 공격하는 글들을 발표했다. 또한 (민병대) 준장으로서 혁명 초기 뉴저지 민병대를 이끌었다.
청년시절 리빙스턴은 화가, 작가 그리고 언어학자로서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예일대학은 수석으로 졸업했다. 뉴욕시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동안 뉴욕의 여러 신문에 변호사에 대해 비판적인 글들을 기고했는데, 이것들은 향후 그의 펜에서 나오게 될 많은 에세이와 잡지 기고문들의 예고편이었다.
1750년대에 들어서는 변호사로서 그리고 논쟁적 작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장로교도였던 리빙스턴은 『인디펜던트 리플렉터 The Independent Reflector』라는 주간지를 통하여 식민지에서 국교화를 시도하는 성공회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 이후에도 그는 뉴욕 『머큐리Mercury』 지에 「파수대 The Watch Tower」라는 칼럼을 기고했고 『감시병 The Sentinel』이란 책자를 출간했다.
1772년 5월 리빙스턴은 은퇴하여 뉴저지 저택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10월 16세의 알렉산더 해밀턴이 서인도 제도에서 자신의 여행경비를 지원해 주었던 장로교 목사의 소개장을 들고 그를 찾아왔다. 리빙스턴은 해밀턴에게 엘리자베스타운의 학교와 뉴욕의 킹스 칼리지에서 수학할 기회를 베풀었다. 대륙회의 대의원으로서 리빙스턴은 보수적인 노선을 따랐다.
1776년 6월 그는 뉴저지로 돌아와 민병대 지휘를 맡았고 그 바람에 독립선언서를 토의하고 서명하는 시점에 현장을 지킬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리빙스턴이 그 사안을 회피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뉴욕출신인 그의 형 필립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민병대에서 수개월간 복무한 후 리빙스턴은 뉴저지 초대 주지사로 선출되었다. 전쟁기간 내내 그는 체포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거처를 옮겨야 했다. 덕분에 영국군의 급습을 모면할 수 있었으나 그의 집은 파괴되었고 그럼에도 그는 역경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뉴저지에서 애국적 대의를 지지하고 선도했다. 『가제트 Gazette』지는 그를 일컬어 ‘뉴저지의 돈키호테’라고 칭했다.
전쟁기간에도 리빙스턴은 애국주의와 노예제 반대에 관련된 신문 기고를 이어갔다. 그의 영향력은 뉴저지 의회에서도 감지된다. 뉴저지는 1786년 노예 수입을 금지했다. 제헌회의에서 리빙스턴은 상원에서 각 주의 동등한 대표권을 주장했다. 또한 주지사로서 뉴저지가 헌법을 비준한 세 번째 주가 되는데 공헌했다.
열렬한 연방주의자 리빙스턴은 워싱턴이 조각했던 신생 합중국의 초대 정부에서 자신이 거두어 대학을 보냈던 젊은이가 새 대통령의 국정 핵심 참모인 초대 재무장관으로서 입각하는 장면을 생전에 지켜볼 수 있었다.
●번역자 이종권 씨는
서울 상문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동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캔사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로 번역가다. 외국어대학교와 경인여대에서 영어 강사를 역임했으며 캔사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뉴욕불교’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뉴저지에서 출판사인 프론티어 퍼블리케이션스를 비롯 보림식품, 뉴욕산삼컴패니 등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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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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