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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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제퍼슨의 약력
△1743년 4월13일 버지니아 새드웰 출생 △1762년 윌리암 앤 매리 대학 졸업
△1767년 변호사 개업 △1769-75년 버지니아 하원의원 △1775-76년 대륙회의 대의원 △1776-79년 버지니아 입법부 의원 △1779-81년 버지니아 주지사
△1783-85년 연합회의 대의원 △1785-89년 프랑스 공사 △1790-93년 합중국 국무장관 △1797-1801년 합중국 부통령 △1801-09년 합중국 대통령
△1819년 버지니아대학(UVA) 설립 △1826년 7월4일 버지니아 몬티첼로에서 영면
독립선언서, 종교의 자유에 관한 버지니아 법령, 북서부 영토조례 - 이 문서들은 토마스 제퍼슨이 남긴 유산의 일부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땅의 거의 모든 공직을 맡아보았으며, 알렉산더 해밀턴과 함께 미국의 정당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들 문서의 궁극적 가치는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독립선언서는 미국혁명에, 그리고 나아가 전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지성과 도덕의 힘을 부여하였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법령은 교회와 국가의 절대적 분리라는 원칙을 확립했다. 북서부영토조례는 북서부 영토에서 새로운 주를 신설하여 연방에 가입시킴에 있어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예제를 금지하며 기존의 주와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공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에 만들어질 모든 주를 위한 원칙이 되었다.
제퍼슨은 1774년 ‘영국령 아메리카의 권리 개관’이라는 소책자를 펴냄으로써 작가로서 그리고 정치이론가로서 인정받았다. 대륙회의에서 그는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을 위임받았다. 버지니아 의회에서는 126개 신규 법령의 초안 작성에 기여했는데, 그 가운데는 깨어 있는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하여 그가 필요하다고 믿었던 공립학교와 도서관을 제공하는 법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 프랑스 공사로서 제퍼슨은 합중국(연합)을 위한 무역협정을 타결시켰고 정치철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제헌회의에서 그는 제자인 매디슨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공화주의의 원칙과 권리장전을 헌법에 포함시킬 것을 요청했다.
워싱턴 내각의 국무장관으로서 제퍼슨은 재무장관 해밀턴과 함께 최초의 정당 지도자가 되었다. 1796년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의 제퍼슨은 연방주의당의 애덤스에게 패배했으나 1800년에는 승리했고, 이로 인해 연방주의당은 권력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제퍼슨은 취임사를 통해 상처를 치료하고자 노력했다.
“우리는 같은 원칙을 가진 형제들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공화주의자요, 우리는 모두 연방주의자인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 제퍼슨은 여러 면에서 연방주의자처럼 직무를 수행했다. 중앙집권적 권력에 항상 회의적이었고 강한 주권(州權)의 옹호자였음에도 루이지애나 영토를 매입했고 루이스와 클락에게 새 영토를 탐사시켰으며 도로와 운하와 학문과 교육을 포괄하는 연방 시스템을 설계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했다. 국민에 대한 그의 애정은 교육과 근본적 자유에 대한 그의 믿음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국가에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웠다.
제퍼슨의 관심 영역은 또 다른 그의 업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서부 주의 기하학적 형태로부터 십진법 기반 화폐체계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 박학다식한 남자는 지적 자유의 원칙에 너무나 심취된 나머지, 그의 묘비가 말하듯, 대학을 설립한 것을 나라를 세운 것만큼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번역자 이종권 씨는
서울 상문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동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캔사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로 번역가다. 외국어대학교와 경인여대에서 영어 강사를 역임했으며 캔사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뉴욕불교’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뉴저지에서 출판사인 프론티어 퍼블리케이션스를 비롯 보림식품, 뉴욕산삼컴패니 등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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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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