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밥을 하는 것도 ‘짓기’이고 옷이나 집을 만드는 것도 ‘짓기’이고 글을 쓰는 것도 ‘짓기’다. 또한, 농사도 짓고 웃음과 한숨도 짓는다. 아마도 삶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에 ‘짓는다’는 표현을 쓴 듯하다. 그러고 보면 살아간다는 건 무엇을 짓는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맛있는 오곡밥을 짓기 위해선 쌀을 씻어 불려야 한다. 이런 준비 과정이 없이 막 씻은 쌀로 밥을 지으면 밥이 부드럽지 못하고 콩은 설익어 맛이 나지 않는다. 물의 양도 잘 맞추어야 한다. 또한, 불의 온도도 적당해야 하고 어느 정도 지나면 불을 줄여 뜸 들이는 시간도 거쳐야 맛있는 밥이 완성된다. 기술이 발달한 요즘에야 전기밥솥으로 흰쌀, 잡곡 혹은 현미냐에 따라 눈금에 맞춰 물양도 조절하고 열의 양도 밥솥이 알아서 하니 누구나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지만, 이런 기계의 혜택 없이 밥을 지으려면 이카로스의 날개를 떠올렸을 법하다. 높이 날면 태양의 열에 타 죽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에 빠져 죽는 운명의 이카로스처럼, 밥은 너무 뜨겁게 오래 두면 시커멓게 타 못 먹게 되고 너무 빨리 뜸을 들이면 설익어 못 먹게 된다.
코로나 사태로 집에만 머무른 이후로는 날마다 밥을 짓는다. 밥을 지어 남편과 아이와 함께 앉아 식사하는 일이 많아진 요즘 밥을 지을 때면 ‘결혼은 평생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던 인도 친구 생각이 난다.
몇 해 전 가을, 인도인들의 가장 큰 축제인 빛의 축제, 디왈리에 초대받아 갔을 때 그 친구의 혼인 사진을 보며 들었던 이야기다. 힌두교를 따르는 인도 전통 결혼식은 사흘간 치러지는데 첫날 가장 중요한 의례가 음식에 관한 것이다. 신부가 손을 앞으로 뻗고 신랑이 신부 뒤에 서서 손을 뻗어 함께 음식이 든 접시를 들고 제사장이 그 음식을 차례차례 불에 던져 불꽃이 타오르게 한 후, 신랑과 신부의 옷 한쪽을 묶어 한 몸이 되어 불의 제단을 일곱 바퀴 돈다고 한다. 음식을 함께 나누며 살고, 윤회를 믿는 그들에겐 일곱 번의 생을 살아도 당신과 살겠다는 약속의 표시라 했다.
올여름 우연히 호박 덩굴을 심은 이후로 나는 요즘 농사짓는 일에 빠져있다. 밥 짓는 즐거움이 나누는 기쁨에 있듯 농사짓는 일도 그렇다. 뒷마당에 텃밭을 일구어 각종 야채를 심어 자라는 것을 관찰하고 수확이 생기면 나누는 즐거움에 모기에 시달리고 손과 얼굴이 거칠어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부추를 여러 화분에 나누어 담고 봄에 모종을 땅에 심어 제법 자란 고추를 파내어 화분에 담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화초도 감정이 있을까?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는 설렘의 손짓인지, 내게 건네는 작별의 인사인지, 화분에 담겨 내 곁을 떠나가는 부추와 고추의 살랑이는 초록 잎이 마음에 남아있다.
비가 와 밖에 나갈 수 없거나 심신이 지친 때면 앉아서 글을 쓴다. 글도 밥 짓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정성을 들여 짓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겨 바삐 만들어내면 설익은 밥이 되듯 글도 그렇다. 정성을 들여도 찰지게 잘 지어지는 날도 있고 애써서 했는데도 영 설익은 밥처럼 망가지는 날도 있다.
전기밥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밥 짓기와는 달리 글짓기는 발달된 기계문명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인공지능이 요즘엔 시나 소설을 쓰기도 하지만 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에세이는 결코 그럴 수 없다. 내 글에 달린 댓글의 악평을 본 후, 나는 왜 글을 쓰나, 그만둘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삶에서 가장 먼저 즐겨한 것이 글짓기인 듯싶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를 잘해 학교 대표로 글짓기 대회를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주변에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이를 본 적이 없는 터라, 글을 쓰는 것은 일기를 쓰듯 삶의 한 부분이지 일이나 업이 되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내게 글짓기는 밥을 짓고, 농사를 짓는 것과 비슷하지 싶다. 때로는 맛이 없는 밥이 되고, 수확이 적거나 아예 없는 농사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꾸 하다 보면 더 맛있는 밥,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듯 나의 글도 그렇게 되리라는 소망을 안고, 나는 오늘도 글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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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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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글 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