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봄은 결혼의 계절이다. 그 옛날 우리는 비록 가난했지만 목련나무아래서 많은 하객들의 축복 속에 혼례를 치렀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사태로 결혼식마다 아무도 청하지 못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다. 결혼의 어원을 살펴보면, 결(結)이란 선비(士)의 입(口)에서 나온 길(吉)한 약속을 실(絲)로 단단히 맺는다는 뜻이다.
혼(婚)은 산기슭(氏)에 해(日)저무는 황혼(昏) 무렵, 신부 집에서 혼례를 올렸던 옛 풍속을 보여주고 있다. 또 혼인의 인(姻)도 여자(女)가 의지할(因) 곳은 곧 사위 댁(姻)이란 뜻이다.
서양 결혼의 풍속도 흥미롭다. 한국 전통 예식에선 ’합근례’라 하여 술잔에 신랑 신부가 번갈아 입을 댐으로써 부부임을 의식화 했지만, 고대 로마에선 서로 오른손을 맞대며 서약을 했다고 한다. 나중엔 두 손을 끄나풀로 묶게 되었고, 그 풍습이 결혼반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둥근 결혼반지는 영원한 결합을 상징한다.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는 것은 약지의 핏줄만이 심장과 직접 통해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양 결혼식은 종교의식과 밀접해있다. 유대인들은 검소한 집을 상징하는 초막 아래서 식을 올린다. 부부로 선포되면 신랑이 유리잔을 발로 밟아 산산조각을 낸다. 이는 예루살렘 옛 성전이 이교도들에 의해 허물어졌음을 상기시킨다. 결혼도 옛 성전처럼 졸지에 파괴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목숨을 다해 지키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가톨릭 교인들은 혼인 예식을 7성사의 하나로 드린다. 세례, 견진, 성체, 고백, 병자, 성품 성사와 함께 성스러운 성례로 드린다. 기독교인들도 부부가 한 몸임을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서약한다. 퀘이커 교도들은 특이하게도 성직자가 주례를 서지 않는다. 하나님이 친히 맺어주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식을 마치고 결혼 행진곡에 맞춰 퇴장하는 신랑신부에게 하객들은 흰쌀을 뿌린다. 쌀은 다산과 행운을 의미한다고 한다. 빵을 먹는 서양 사람들이 밀 대신 쌀을 택한 것이 좀 의외다.
아쉽게도 결혼의 의미가 점점 퇴색하고 있다. 미국에선 두 가정 중 하나가 이혼으로 끝난다. 또 계약혼이나 졸혼 등 변형된 형태도 늘어나는가 하면, 초혼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50년 전 평균 결혼연령은 남자 23세, 여자 20세였는데, 최근엔 30 중반의 만혼도 흔하다. 고학력사회에서 교육 연한이 길어진 탓이 크다. 여권과 경제력 향상으로 여성들의 결혼관이 바뀐 때문이기도 하다.
가정심리학자 태드 툴레하(Tad Tuleja)는 지난 세기 남녀의 결혼관 변화가 웨딩케이크를 자르는 의식에 상징적으로 잘 나타나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 의식을 4단계로 나누었다.
첫째는 케이크를 자르는 과정이다. 1세기 전엔 신부들이 혼자 잘랐다고 한다. 신부 아닌 사람이 자르면 부정 탄다는 불문율 때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신랑이 신부의 손을 잡고 리드하며 자르는 게 통례로 변했다. 남성우월주의가 은연중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둘째 단계는 신부가 첫 케이크를 신랑에게 먼저 먹여준다. 이는 깨끗한 몸과 마음을 바친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셋째 단계에서 신부는 전통적 결혼관에 반발을 보인다. 신부는 장난끼를 섞어 신랑 얼굴에 케익을 문지른다. 여자도 반발할 수 있다는 의미란 것이다.
그러나 신랑은 결코 화내지 말아야 한다. 가정의 위기를 상징한 이 순간에 남자는 웃으며 아량을 보여야하는 것이다. 결국, 넷째 단계에서 신부는 이해심 많은 신랑의 위기관리 능력을 확인하고, 얼굴에 묻은 케이크를 부드럽게 닦아준다. 신랑 신부가 가정의 행복을 재확인하면서 출발하는 순간인 것이다.
결혼의 행복은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결혼 전엔 눈을 크게 뜨고 배우자를 찾아도, 결혼 후엔 반쯤 감고 살라는 말이 있다. 오래 살아보니 그 말이 백 번 옳다. 생 텍쥐페리의 말처럼 결혼생활이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같은 가치관으로, 같이 꿈꾸며, 같은 눈높이로 인생을 바라보며 기대어 사는 게 부부인 것이다. 그래서 행복한 부부는 오래 살다보면 오누이처럼 닮아가는 것이리라.
싱그러운 봄날, 멘델스존의 경쾌한 결혼행진곡이 널리 퍼진다. 빨리 세상이 풀려 새 부부들 위에 하객들의 박수소리가 하늘의 축복송처럼 쏟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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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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