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교회 창문에는 그 흔한 스테인드글라스도 없었다. 앞 유리창문 밖으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교회 뒤뜰에 떡갈나무 7그루가 옹기종기 서 있었다. 예배 시작 전 오르간에서 흘러나오는 성가곡이 시각과 청각의 어울림을 이루어 마음을 가라 앉혀 준다. 부교감 신경계의 활동이 높아지면서 교감신경계의 활동이 위축되어 생리적으로 긴장에서 이완의 명상상태로 되어 간다.
7그루의 나무 중 유독 3번째와 5번째 나무가 나의 시선을 끈다. 3번째는 둥치 밑에서부터 가지가 너무 많이 삐쳐 나와 키도 작고 빈약하다. 늘어진 가지들 때문에 피곤하게도 보인다. 꽃으로 치면 걱정, 불안, 인내와 함께 살아온 서정주 시인의 가을 국화를 연상시킨다. 가지가 많아 고달픈 한편 잎들이 풍성하여 새들의 쉴 곳을 마련해주고 나무에 꽃이 필 때는 벌과 나비들까지 날아든다. 비록 삶이 피곤하고 귀찮지만 남을 배려해주는 나무다.
5번째는 나무들 중 몸통이 가장 두텁고 키도 제일 크다. 가지가 둥치 꼭대기 근처에 몇 개뿐이라 힘과 자신이 넘치는 외모이다. 하늘로 곧게 뻗어 새와 벌들도 자주 들락거리지 않는다. 오직 외모를 뽐내며 행복감을 외부로부터 찾는 듯싶다. 남들로부터 칭찬받기 위해 판단의 기준이 자신이 아닌 남에게 달려있다. 인지왜곡(Cognitive distortion)으로 자존감이 낮아 결국 남의 삶을 살아가는 나무 같이 보인다.
그 중간 4번째 나무는 눈에 잘 띠지 않는다. 가지도 많지 않고 둥치도 그만 그만해서 그저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서있는 모습이다.
프로이드 선생의 심리구조 이론을 대입하면 3번째 나무는 윤리, 도덕, 책임감, 양심을 주관하는 초자아 쪽으로, 5번째는 자신의 욕망, 이익, 출세만 챙기는 자기중심적, 자기 세상적인 원초자아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는 모양새다.
나무를 의인화 해보면 3번째는 사도 바울, 5번째는 율법학자 사울이 아닌가 싶다. 사울은 율법을 잘 지키는 주류 유태인으로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일삼는 당시 사교집단 예수교 교인들을 학대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런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를 만나 회개한 후 이름도 바울로 바꾸고 죽을 때까지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알리는 사도가 된 것이었다.
정신과의사로 일하며 많은 사람과 환자들을 만나 보았다. 나대로 분석해 본 결과 인간은 크게 세 부류에 속했다. 한쪽 끝은 이기적 사람, 다른 쪽 끝은 이타적 사람, 그 가운데 이기와 이타가 배합된 중간적 사람이 있었다.
보통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은 양쪽 끝에 놓여 있었고 중간적 사람은 평범한 민초들이었다. 다시 말해 자아가 비교적 잘 조화된 사람은 출세에 소극적이며 둔했고 자아가 그리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출세를 추구했다.
세계 역사와 문화를 살펴봐도 인류사를 이끌어 온 사람들의 대개가 반쯤 미친 상태의 마음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어디에 미쳐야 세상이 알아주는 과학자, 문학가, 예술가, 정치가, 혁명가 그리고 정신병환자(특히 정신분열증과 조증 양극성장애)도 될 수 있다.
사회적 선망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마음속에 많은 갈등이 도사리고 있어 그 자신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건강하게 바로 서지 못한 자아 때문에 항상 무엇에 쫓기듯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렇다면 단 한번 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알베르 까뮈가 이방인에서 소리치듯 3번째 나무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눈물 나게 살 것인가, 혹은 5번째 나무처럼 자신을 속이고 불편을 감수하며 살 건가? 그도 저도 아니면 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4번째 나무처럼 세상에 순응하며 한평생 두리둥실 살 건가가 문제다.
화가 고갱 같이 서유럽에서 남태평양까지 건너가 그 곳 원주민 여자와 살았던 특별한 삶일 필요는 없다. 사람의 색깔과 삶의 모습은 각기 다르겠지만 이기와 이타의 양극을 이루는 스펙트럼 선상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간쯤에서 각자 생긴 모양, 걸머진 소유, 미지근한 심장을 가진 장삼이사로 살면 마음이 편하고 정신병 환자가 될 위험도 적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살아보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인생살이다. 세상에 정신과 환자가 많은 게 그래서 일 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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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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