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평소와는 다른 이메일이 계속 들어온다.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확산에 따른 문화예술 기관들의 잇단 상황 발표다.
라크마(LACMA)는 14일밤 열기로 했던 ‘서도호 피자와 맥주 파티’(Pizza and Beer Tasting Party Inspired by Do Ho Suh)를 취소했다. 이 행사는 뮤지엄에 전시중인 서도호의 설치작품(‘348 West 22nd Street’)을 축하하며 신나는 음악과 함께 한국, 뉴욕, LA의 피자와 로컬 브루어리의 맥주를 시음하는 파티로 기획됐었다.
게티 센터, UCLA 해머 뮤지엄, 스커볼 문화센터, LA카운티 자연사박물관, 타르핏 뮤지엄 등은 모든 공공장소를 소독하고 손 세정제를 곳곳에 비치했다며 방문객들도 개인위생 수칙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모카(MOCA) 현대미술관은 ‘코로나바이러스 태스크포스’를 조직하고 매일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시기관들은 3월 중 모든 프로그램을 예정대로 진행할 예정이지만 상황을 보아 변경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LA 필하모닉, LA 오페라, LA 매스터코랄, 센터시어터그룹이 소속된 뮤직센터는 관련 공연장들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 아만슨 디어터, 마크 테이퍼 포럼에 손 세정제를 다량 비치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은 모두 예정된 공연을 계속하고 있으나 이 상태로 가면 캔슬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한인사회에서는 본보 주최의 할리웃보울 음악대축제가 연기된 것을 필두로 LA한국문화원이 3월과 4월의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문화원 개원 40주년 공연과 소장품 특별전을 비롯해 아리프로젝트, 한국어 스토리타임, 세종학당, 영화 프로그램이 모두 취소됐다.
주류 음악계에서는 이번 주말 예정이던 ‘사우스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벌이 캔슬됐다.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10일 동안 열리는 이 행사는 세계 50여개국 2만여 명의 음악관계자들과 2,500여팀의 뮤지션이 참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페스티벌이라 크나큰 여파가 예상된다. 한편 매년 4월 남가주 인디오에서 열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 페스티벌’은 아직 취소되지 않았는데 12만명 이상 몰려드는 광란의 행사인 만큼 취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는 파리의 루브르 뮤지엄이 지난 주 이틀간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오는 관광객이 한해 900만명이나 방문하는 곳이니만큼 코로나 감염사태를 우려했으나 직원들을 위한 안전조치를 마련한 후 재개한 것이다. 하지만 평소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모나리자 방이 지금 텅텅 비었다고 한다.
중국 다음으로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이탈리아는 전국의 박물관, 미술관, 영화관 등 공공시설은 물론 초·중·고·대학교가 모두 문을 닫았다. 유명한 베니스 가면축제도 취소됐고, 밀라노의 라스칼라 오페라하우스와 두오모 대성당이 문을 닫았으며, 세계 최대 건축축제인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개막이 5월에서 8월로 연기됐다. 영화계에서는 제임스 본드 영화의 개봉이 6개월 뒤로 미뤄졌으며, 3월 극장가 수입 손실은 세계적으로 50억달러에 이른다는 소식이다.
아직 남가주에서는 지역 확산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거의 패닉 수준이다. 7일 토요일 낮에 타운에 나가보니 평소 북적이던 쇼핑몰이 너무나 한산하고, 사람들이 줄을 서던 식당은 텅텅 비어있었다. 8일 아침 LA 마라톤 TV중계를 보면서도 깜짝 놀랐다. 거리에 응원인파가 거의 없는 마라톤 풍경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게 올 스톱한 느낌이다. 세상이 이랬던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다. 사스나 메르스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중국과 한국은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 듯하지만 미국은 이제 시작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오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미 불안과 공포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빠르고 강력하고 눈덩이처럼 커지는 패닉 바이러스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피하고 있다. 신체접촉을 하지 않는 이른바 ‘언택트’(untact) 문화가 확산되면서 마주앉기를 기피하고, 악수와 허그를 생략하고, 모두 6피트 이내의 개인공간에 갇혀 고립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코로나19는 물러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가 정지되고 경제가 마비된 상태가 오래가면 충격과 후유증이 크고 깊을 것이다. 재난에 대한 회복력을 키우는 시스템이 시급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재난이 점점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생태계와 자연파괴에 대한 대가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