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티에이징의 꽃 ‘레티놀’ 제대로 알고 쓰시나요
▶ 낮에 용기 열면 성분 파괴 우려, 밤에 사용하는 게 효과적
각질 분리해 피부 따가울 수도…민감 피부는 1, 2주 적응 기간을
“이 약을 마시면 단 하루도 더 늙지 않아요.”
1992년 개봉한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에는 ‘젊음의 묘약’이 등장한다. 이 신비의 약을 마시면 주름 한 줄 없는 매끈한 얼굴로 변하고, 탄력 없던 몸매도 늘씬하게 돌아온다. 영화 속 주인공 메릴 스트리프과 골디 혼은 이 젊음의 묘약을 마시고 영원히 늙지 않는, 청춘의 삶을 꿈꾼다.
영원한 젊음은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신의 고유 영역이다. 하지만 늙어 가는 시간을 조금만 단축시킬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안티에이징’이다. 그 중에서도 피부 노화를 막기 위해 인간의 노력은 끝이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글자글 늘어 가는 주름과 중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늘어지는 피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레티놀’이란 단어를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알고 보면 레티놀은 빛에도 공기에도 쉽게 파괴되는 상당히 까다로운 성분이다.
‘안티에이징의 꽃’ 이라는데…직장인 박선영(32)씨는 20대부터 아이크림만은 꼼꼼하게 바르는 버릇이 있다. “젊었을 때부터 피부 관리를 잘 하라”는 어머니의 조언 때문이다. 박씨는 “아침저녁으로 아이크림을 챙겨서 바르는 편”이라며 “주변 친구들도 주름이나 탄력 개선에 좋은 기능성 화장품을 찾아 구매하곤 한다”고 말했다.
안티에이징에 대한 관심은 더 이상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가 됐다. 주름은 물론 모공, 탄력 등 늙어 가는 피부를 잡아주는 기능성 화장품은 20, 30대 소비자에게도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다. 또한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젊음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젊은 세대에서 ‘얼리 안티에이징’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최근엔 레티놀 역시 재조명되고 있다. 화장품 업계에서 ‘안티에이징의 꽃’으로 각광받는 게 바로 레티놀 성분이다.
업계에 따르면 레티놀은 피부 재생의 기능을 갖고 있는 레티노이드(비타민A) 계열에 속하는 물질 중 하나다. 1990년대 미국 의학계가 여드름 치료에 이를 사용하면서 환자들의 피부가 주름이 감소하고 탄력이 증가하는 현상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이후부터 레티놀은 안티에이징 성분으로 본격 연구되기 시작했다.
레티놀은 사람의 피부에서 표피(피부의 제일 바깥쪽)와 진피(표피 아래 섬유성 결합조직)의 세포를 활성화하는 기능이 있다. 주름 생성에 관여하는 특수 수용체(세포 표면의 단백질)와 결합해 콜라겐(섬유 단백질), 엘라스틴(탄력성 많은 단백질)의 생산과 합성을 유도함으로써 주름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주름 개선용 화장품에 사용 가능한 성분 중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물질”로 꼽힌다. 그래서 ‘주름 개선 하면 곧 레티놀’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러나 레티놀에도 단점은 있다. 다루기 매우 까다로운 성분이란 점이다. 빛과 공기, 수분에 모두 예민해 화장품으로 제조했을 때 유효 성분이 온전히 피부에 닿기까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또 적정 농도를 벗어나면 피부에 자극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레티놀을 제품화하기 위해서는 효능을 유지하도록 안정화하면서도 자극은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필수적이다. 화장품 업계와 의학계는 레티놀을 대체할 만한 유효 성분 개발에 오래전부터 힘써 왔지만, 레티놀에 버금가는 성분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안티에이징에 관한 새로운 성분을 연구할 때 그 효능을 확인하기 위한 기준 물질로 여전히 레티놀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빛과 열, 공기에 민감최근 해외 유명 화장품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레티놀 제품을 다시 선보이고 있다. ‘엘리자베스 아덴’과 ‘달팡’은 레티놀의 안정화와 활성도 유지를 위해 1회씩 사용이 가능한 캡슐 형태 제품을 내놓았다. ‘올레이’ 역시 세럼과 크림, 아이크림으로 구성된 레티놀 제품군을 최근 새롭게 출시했다.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카테고리가 바로 레티놀 제품이다. 더 좋은 주름 개선 성분을 찾아 나섰던 글로벌 브랜드들도 결국 레티놀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국내 첫 레티놀 화장품는 1997년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아이오페’가 출시했다. 아이오페 제품에는 ‘다중 캡슐화’라는 독특한 기술이 적용돼 레티놀이 안정적으로 피부에 전달될 수 있게 했다. 다중 캡슐화는 고농도의 순수한 레티놀을 여러 개의 미세한 캡슐에 담아 안정적인 형태가 유지되게 하는 기술이다.
채병근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연구임원은 “레티놀이 워낙 민감한 성분이라 지난 25년간 안정화하는 방법이 가장 큰 숙제였다”며 “현재는 캡슐로 감싸지 않고 그물 같은 매트릭스 구조의 ‘다상 폴리머(기본 단위 분자가 반복되는 구조의 화합물)’를 적용해 레티놀이 쉽게 산화하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산화는 레티놀의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 된다. 레티놀이 빛과 열, 산소 등에 노출되면 쉽게 산화하고 파괴되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서도 금방 산화하기 때문에 레티놀 성분의 제품은 용기도 중요하다. 일반적인 크림 유형의 화장품이 주로 뚜껑을 돌려서 여는 용기에 담겨 있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레티놀 화장품은 튜브 형태 용기 제품이 대다수다. 튜브형 용기는 공기와 빛을 차단하는 데 효과적이다. 최근에는 소비자가 사용하기 직전까지 신선도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레티놀 성분이 산소에 노출되지 않도록 화장품 내용물과 입구를 분리하는 잠금장치를 한 용기까지 등장했다.
빛이나 열에 약한 레티놀의 이 같은 특성을 감안하면 낮보다 밤에 사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낮에 제품의 뚜껑을 열면 열수록 레티놀 성분이 빠르게 파괴될 우려가 높아진다.
간혹 피부가 예민한 사람들 중에는 레티놀 화장품을 사용한 뒤 피부가 따갑거나 붉어지는 경우가 있다. 레티놀 성분이 피부의 각질을 분리해 내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은주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임상시험팀장은 “각질이 일어나는 등의 자극이 생길 수도 있으니 피부가 예민한 사람은 1~2주 정도 적응 기간을 두고 레티놀 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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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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