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의 2월이 갑자기 ‘아트 페어의 달’이 돼버린 듯하다. 2월 첫 주말에 ‘LA 아트쇼’가 있었고, 바로 다음 주말에는 ‘프리즈’와 ‘펠릭스’를 비롯한 5개 아트페어가 LA다운타운, 할리웃, 베니스비치, 팜 스프링스에서 동시에 열렸다. 전에도 매년 1~2월이면 여기저기서 아트페어가 열리기는 했지만 모두 고만고만한 로컬미술제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처럼 판이 커지고 화단의 관심이 증폭된 것은 작년에 처음 LA에 진출한 ‘프리즈’(Frieze LA) 때문이다.
프리즈는 아트바젤(스위스), 피악(프랑스), 아모리쇼(뉴욕)와 함께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국제 아트페어의 하나다. 2003년 런던에서 시작돼 빠른 속도로 성장한 프리즈가 2012년 뉴욕에 이어 2019년 LA에 진출했을 때 미술시장은 흥분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LA 아트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던 언론들이 프리즈가 온다고 하니 그 준비과정부터 큐레이터 인터뷰, 현장 스케치, 화보에 성과까지 대단하게 보도했고,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티켓을 구하지 못해 동동거렸다. 현대미술의 메카로 여겨지는 LA이지만 세계적인 미술제가 찾아오기는 처음이었으니 그만큼 환영과 기대가 컸던 것이다.
과연 프리즈의 수준은 감탄할 만했다. 갤러리와 작품들의 격과 급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체적인 기획과 진행에서 프로페셔널리즘이 돋보이는 행사였다. 이제야 제대로 된 국제미술제가 생겼다고, LA아트쇼는 정신 차려야겠다고 쓴소리 하는 칼럼을 작년 이맘 때 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생각이 좀 다르다. 미술시장의 빈부차이, 계급격차가 너무도 확연하게 느껴진 때문이다. 프리즈는 화단 귀족층인 ‘그들만의 파티’였다. 첫날 프리뷰에는 레너드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페즈를 비롯한 A급 할리웃 스타들이 대거 출동했고, 마이클 고반 라크마(LACMA) 관장, 클라우스 비젠바흐 모카(MOCA) 관장, 조앤 헤일러 더 브로드(The Broad) 관장들이 왕림하셨다.
티켓 가격은 작년보다 훌쩍 뛰어올라 125~175달러(프리뷰는 500달러)나 했고 그것도 한참 전에 매진되었으니 ‘일반 관람객은 오지 말라’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파라마운트 영화사 스튜디오에 설치된 거대한 텐트 속의 77개 부스마다 전 세계에서 날아온 콜렉터와 화상, 미술계 인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판매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3월의 홍콩 아트바젤이 취소돼 이리로 대거 몰리면서 더 성황을 이뤘다는 분석도 있다.
프리즈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LA 아트쇼다. 매년 LA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LA 아트쇼는 상류층의 프리즈에 비하면 중하류 서민층의 미술장터라 해야겠다. 좀 어설프지만 누구나 부담없이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고, 티켓이 40달러지만 프리 패스를 많이 돌리기 때문에 갤러리에 아는 사람만 있으면 무료입장할 수 있는 행사다.
프리즈에는 박서보 이우환 김창열 하종현 정도는 돼야 작품을 걸 수 있지만, LA 아트쇼에는 남가주의 화가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출품할 수 있다. 한국서 오는 갤러리들도 급이 다르다. 프리즈에는 작년과 올해 모두 ‘현대’와 ‘국제’ 외에는 어떤 화랑도 초대받지 못했지만, LA 아트쇼에는 이름 없는 중소형 갤러리들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올해 제25회 LA 아트쇼는 유난히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과거의 시끌벅적한 장터의 흥분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때 15개나 나왔던 한국 갤러리도 올해는 4곳으로 지난 10년래 가장 적었고, 로컬 한인 갤러리는 한곳도 참가하지 않았다. 화단의 관심이 다 빠져나간 듯 썰렁하고 주눅 든 느낌이었다.
결국 LA 아트쇼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보도자료를 돌리고 내년부터는 프리즈와 같은 주말에 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리즈의 후광이라도 입지 않으면 자연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즈 주말에 몰려오는 국제 미술계 인사들은 같은 기간에 열리는 다른 아트페어들도 돌아보기 때문에 이들의 발걸음이라도 유치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올해 프리즈와 같은 주말에 개최했던 펠릭스(Felix), 스타트업(stARTup), 스프링/브레이크(Spring/Break), 아트 LA 컨템포러리(ALAC), 아트 팜스프링스 등의 위성 아트페어들은 짭짤한 부대효과를 누렸다고 전해진다.
아트페어는 현대 미술산업의 중요한 플랫폼이다. 미술품을 예술적 가치가 아닌 돈으로 보는 철저한 투자시장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벌여놓는 계급차를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다. 영화 ‘기생충’의 해결 없는 종말처럼 여기도 선을 넘을 수 없는 현실이 가로막고 있다.
LA 예술가들과 함께 성장해온 LA 아트쇼가 거대자본에 밀리지 않고 자신만의 특수성을 살려 자생하는 묘법을 찾아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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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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