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작업하는 설치 작가 양혜규가 뉴욕현대미술관 (MoMA) 재개관 기념에 초대되었다. 모마의 허브같은 공간 마론 아트리움에서 ‘소리 나는 이동식 조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조형물 6점과 대형 벽 디자인 작업을 보여준다. 자연물과 인공물,
동서양의 차이와 간극을 넘나드는 작가의 예술적 본령을 드러내며 수많은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이 전시는 오는 4월까지 진행된다.
◆소리나는 이동식 조각
전시작품 ‘손잡이’는 ‘소리 나는 이동식 조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조형물이다. 선사시대의 샤머니즘으로부터 오늘날 한국의 혼성적 사회정치적 모델에 대한 작가의 탐구를 반영했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조형물과 함께 빛과 소리의 유희가 곁들여진 분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수십여 개의 붉은색 강철 손잡이가 삼면의 벽에 걸쳐 빛을 분산시키는 홀로그램과 검정 스티커로 콜라쥬 된 대형 벽화 위에서 무늬를 이룬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벽화 위의 손잡이는 기능하지 않고 6점의 조각물에 부착된 손잡이는 실제로 움직인다. 원시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조형물의 몸체는 방울로 뒤덮였고, 주술 의식을 연상시키는 방울 소리와 새소리가 설치된 작품 사이로 울려 퍼진다.
작가는 말한다. “‘손잡이’란 사물과 이를 작동하려는 의지를 가진 것의 중간에서 둘을 매개하는 존재다. 여기서 중간은 중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의 구조 사이에 끼인 사이 공간으로 엄연히 존재한다. 중간에서 연결 시켜주고 있음에도 많이 소외되고 자꾸만 잊히는 존재다.” 잊혀진 손잡이, 사색의 손잡이에 대하여 관람객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작가는 그동안 인류 역사와 문화, 사회의 다양한 변화를 그만의 추상적 화법으로 표현해 왔다.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객관적 진실’에 맞서는 ‘주관적 진실’의 세계라고 규정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스튜어트 코머는 “양혜규는 조각적이고 감각적인 설치작업으로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이번 전시작품을 통해서도 다양한 문화를 새로운 형태와 언어로 번안해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세계적 작가로 입지를 굳힌 양혜규
양혜규는 1994년 독일로 이주 후, 현재 모교인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설치 미술의 장르에서 동시대 작가 중 가장 돋보인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지정되면서다. 이어서 2012년 카셀 도큐멘타, 2016년 파리 퐁피두 센터 개인전, 2018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독일 ‘볼프강 한 미술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최전선이라는 모마에서의 이번 전시로 세계 미술시장을 석권하게 되었다. 그가 세계적 작가가 된 것은 개인 작가지만 첨단의 고급 미술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이처럼 정상급 전시를 하기 때문이다. 한국출신 미술계의 차세대 주자로 이미 앞장 서 있는 그에게 기대와 응원의 힘을 전한다.
◆새롭게 탄생한 ‘뉴 모마’
1929년 문을 연 모마는 뉴욕을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근 한 세기 동안 명실공히 현대미술 작품의 근거지로 성장했다. 모마는 그간 몇 차례의 공사에도 불구하고 연간 300만 명의 관람객과 급격히 증가한 작품 전시를 위해 대대적인 재건축을 했다. 4억 5천만 달러를 들인 이번 공사에서 미술관 옆 빌딩을 연결해 4000㎡의 전시 공간을 확보했다.
새 공간에서 눈여겨볼 곳은 세계 최초로 미술관 라이브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실험적인 예술과 퍼포먼스 전용 스튜디오다. 이곳에서 펼쳐질 미디어 및 퍼포먼스 프로그램은 한국의 현대카드가 단독 후원한다. 예술사의 보다 광범위한 서술 안에서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여 관객과의 자유로운 호흡을 추구하는 혁신적인 시도가 펼쳐질 것이다.
모마 관장 글렌 로리는 “미술관은 실험과 학습의 장소로 대중에게 열려 있다고 믿는다”며 새로운 모마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작품 전시 방법에 혁신을 담아냈다고 전한다.
공간 확장, 작품의 재배치, 웹사이트 개편 등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뉴 모마’는 앞으로도 미술관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 갈 것이다.
문의 doh0504@gmail.com
●도정숙
뉴욕, 서울, 워싱턴, 파리에서 30여회의 개인전을 가짐. 세계 각지에서 국제 아트 페어와 200여 회의 그룹전 참가. 매거진 ART MINE에 미술 칼럼 기고 중. 저서로 <그리고,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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