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스팅이 만든 뮤지컬이 온다고 해서 얼마나 기대하고 기다렸는지 모른다. 지금 LA뮤직센터 아만슨 극장에서 공연 중인 ‘더 라스트 쉽’(The Last Ship) 이야기다.
스팅(Sting, 68)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폴리스’ 시절부터 40년 넘게 활동하면서 그 갈대같은 목소리로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Every Breath You Take)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 ‘메시지 인 어 버틀’(Message In A Bottle) ‘록산’(Roxanne) 등 수없이 많은 히트곡을 노래해 세계인의 마음을 울려온 싱어송 라이터다.
팝과 록, 재즈, 레게, 클래식까지 워낙 음악의 스펙트럼이 넓은 뮤지션이지만 그가 2014년 뮤지컬 ‘라스트 쉽’을 발표한 것은 좀 의외였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엇갈린 평을 받고 4개월 만에 프로덕션을 내렸는데, 스팅은 포기하지 않고 극본과 음악을 새로 쓰고 완전히 개작하여 2018~19년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다시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이번에 미국에서 처음 공연되는 것이다.
때는 1986년, 영국 북동부의 블루칼라 타운이 배경이다. 이곳 주민들의 생업인 조선소가 문 닫게 되자 이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은 거대자본과 권력에 맞서 투쟁하기로 연대한다. 이때 나타나는 사람이 오래전 고향을 떠났던 남자주인공, 그는 과거 사랑했던 여인이 자신의 딸을 낳아 키우고 있음을 알게 되고 로맨스가 재점화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조선소 감독(스팅 분)을 중심으로 단결해 마지막 배를 짓는다는 스토리다.
재미있을까? 아니, 재미없었다. 80년대 영국 조선소노동자들의 투쟁이라니,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을까. 게다가 스토리 진행이 답답하게 늘어지고 진부해서 솔직히 많이 실망스러웠다. 개작한 게 이 정도니 오리지널은 어땠을까. 그나마 스팅이 나오니까 흥행이 어느 정도 따라주는 것이다.
음악은 그런 대로 좋았다. 스팅의 노래, 스팅의 목소리도 여전히 참 좋았다. 좋은 넘버도 꽤 있고, 출연진 모두 훌륭한 노래와 연기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자고로 뮤지컬은 신나고 재미있어야 한다. 화려한 춤과 노래도 있어야 하고, 스토리가 말이 되든 안 되든 대중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접점이 있어야 한다. 무겁고 암울한 이야기는 팔리지 않는다.
도대체 스팅은 왜 이런 뮤지컬을 만들었을까?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본명이 고든 매튜 토마스 섬너인 스팅은 어린 시절 조선소가 있는 마을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늘 보던 사람들이 고된 육체노동자들이었다. 그런 삶에 매몰되기 싫었던 그는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향했고, 결국 대스타가 되었다. 그런데 슬럼프에 빠져있던 어느 날 그는 조선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뮤지컬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작품 배경은 영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광부들의 파업을 마거릿 대처 총리가 강경 진압했던 시기를 반영한다. 1년 이상 영국사회를 깊이 흔들어놓았고,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잔재하는 영국 역사의 한 챕터가 스팅에게는 유년의 상처로 남았던가보다. 뮤지컬을 보면서 스팅이 자신의 뿌리에 대한 한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마지막 배’는 유년시절을 쓰다듬고 놓아주는 의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팬들에게 얼마나 어필할지 모르겠다. 쇼는 2월16일 LA 공연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세인트폴,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를 돌고 이후엔 유럽 투어가 예정돼있다.
공연을 보고 나서 스팅이 뮤지컬보다 먼저 발표한 음반 ‘더 라스트 쉽’을 들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담백하고 서정적인 목소리, 바람이 통과하는 듯한 독특한 사운드, 음유시인처럼 깊고 투명하고 진솔한 음성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반이었다.
수많은 스팅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공연실황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1992년 테너 파바로티와 함께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Panis Angelicus)을 한 소절씩 나누어 부르는 듀엣이다. 정장을 차려 입은 거구 파바로티 옆에 검은 가죽바지와 민소매 셔츠만 입은 스팅이 서있다. 파바로티의 웅장한 목소리가 시원하게 울려퍼지면 이어 스팅의 고독한 목소리가 그 여운을 똑바로 가로지르며 뚫고 나온다. 기름지며 윤택한 테너의 소리를 맑게 씻어주는 음성, 건조하고 우아하게 공기를 가르는 바람소리 갈대소리는 들을 때마다 가슴 뛰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부디 스팅이 뮤지컬을 넘어서 더 아름다운 음악의 여정을 계속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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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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