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필리핀의 11살 소녀가 학생 육상대회의 단, 중거리 시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달리기 성적도 좋았지만 소녀는 운동화가 없어 자신이 직접 석고 붕대를 발에 감고 그 위에 나이키 로고를 그려 넣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소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반면 최근 마라톤 대회에서 인간의 한계로 여겨왔던 2시간의 벽을 깬 케냐의 킵초게 선수가 기록 수립 당시 착용했던 운동화가 화제이다. 나이키에서 특수 제작한 베이퍼 플라이라는 신발은 중간층에 탄소 섬유판이 박혀 있어 마치 스프링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수의 뛰는 힘을 10% 이상 크게 높여주고, 평지를 뛰는 경우 1-1.5% 경사진 내리막길을 뛰는 효과를 준다고 한다.
사람의 발은 걷거나 뛸 때 생기는 충격을 흡수하게끔 설계가 되어있다. 발에는 총 3개의 아치모양이 있다. 옆에서 보면 발 안쪽과 바깥쪽에 각각 다른 아치가 형성 되어있다.
발 안쪽 아치는 바깥쪽 보다 높아서 위에서 누르는 충격을 단단한 용수철처럼 많이 흡수해 준다. 바깥쪽 아치는 높이가 낮고 땅에 직접 맞닿는 면적이 많은 쪽이라 뼈들과 인대들이 단단히 붙어 직접 몸무게를 받쳐준다.
발을 앞쪽에서 보면 발의 좌우 모습도 아치를 형성하고 있으며 충격을 흡수하기 적합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아치는 단순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발 한쪽에만 발가락뼈까지 합쳐 26개의 뼈, 33개의 관절 그리고 100개 이상의 인대가 있고 34개의 근육으로 조절 받고 있다.
모든 뼈가 제자리에서 아치를 형성하여, 평균적으로 우리가 하루에 만보, 일생동안 11만 5천 마일을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게 해준다.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발의 아치 모양이나 높이가 조금만 달라져도 발이 아프고 걷는데 지장을 받게 되며 다리, 골반, 척추의 정렬 상태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인대와 근육은 약해져 발의 아치 모양은 바뀌는데, 몸무게는 늘어나 하중이 더해지면 발의 통증이 빈번해진다. 특히 당뇨환자의 경우는 뼈가 약해지고 말초신경 손상으로 발관절의 모양이 변형을 일으켜 아치가 무너져 내리는 ‘샤콧 관절’을 유의해야 한다. 건축에 쓰이기 시작했던 아치모양이 몸속에 태초부터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를 설계하신 분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아치 모양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모양이다. 인공적인 아치의 기원은 신석기 시대에 두 개의 돌을 서로 기대어 걸친 삼각형이 아니었을까? 곡선 모양의 아치는 BC 4,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부터 존재하였지만 본격적으로 에트루리아인이 만든 문, 건축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로마에서 더욱 기술이 발전된 아치는 암석, 콘크리트 등 압축에 강하지만 비틀림에 약한 재료에 대해 유리하다. 거대한 건축물에 큰 문이나 창문을 만드는데 아주 유리한 아치는 아치를 구성하는 쐐기모양의 돌(홍예석)을 반원 모양으로 쌓으면 위에서 누르는 힘이 아치의 곡선을 따라 주변 기둥과 땅으로 분산된다. 아치를 떠받치는 기둥만 튼튼하게 짓는다면 쉽게 크고 높은 건물을 올릴 수 있다. 홍예석 사이에 생기는 마찰력 때문에 별도의 접착제를 쓰지 않고도 오랫동안 형태가 유지된다.
로마인들은 다리와 수로에 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교각을 세우기에 너무 긴 강이나 계곡에도 아치를 적용하여 구조물을 만들 수 있었다. 스페인 세고비아, 프랑스 님 등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수도교는 반복되는 아치 모양과 높게 뻗은 긴 다리로 되어있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 아치구조물의 견고함을 알 수 있다.
한국에 있는 석굴암도 아치형태로 지어졌기에 지진이 잦았던 경주에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고, 파리의 개선문이나 유럽의 성당 등 거대한 건축물에도 아름다운 아치 구조가 쓰였다.
아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쐐기이다, 잘 다듬은 돌을 양쪽에서 반원형의 형태로 아치를 만들며 쌓아올리다가 두 곡선이 만나는 가운데 부분에 쐐기 형 돌덩이를 끼워 넣는데, 옆의 곡선에 있는 돌들이 서로를 밀어내면서 단단하게 결합해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된다. 아치의 묘미는 모든 돌이 서로서로 의지하여 서 있는 것이다.
2020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에 들어섰다. 아치 모양의 개선문을 들어서는 것을 상상해 본다.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후에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물어볼 것이다. 열심히 살았지만 혼자서 하나씩 굴러다니는 돌이 될지, 단단하게 서로 받쳐주어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움과 필요한 것을 선사한 아치 같은 건축물이 될지 생각해본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로 의지하고 딱 붙어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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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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