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수상자인 남윤동씨가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1992년 젊은 청년이었던 그가 나이 60을 바라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어 찾아왔기 때문이다. 지난 달 조하연 이사의 자택에서 열린 ‘카파미술상’ 30주년 행사는 오랜 세월이 맺은 결실의 감동과 변화에의 놀람이 중첩된 모임이었다.
미국 각지에서 날아온 8명의 수상자(총 16명)가 한 자리에 섰을 때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30년 역사를 한 자리에서 보는 감격과 자랑스러움, 대견함이 회원들의 마음을 흔들고 지나갔다. 그때 4~50대였던 이사들과 심사위원들은 7~80대의 노인이 되었고, 20대였던 수상자들은 중장년이 되어가는 모습을 서로 바라보았다.
시작은 30년전의 한 사적인 모임이었다. 1989년 평소 가깝게 지내던 남가주의 한인 미술애호가 겸 콜렉터 12명이 모여 카파(Korea Arts Foundation of America)라는 비영리재단을 만들고, 각자 주머니에서 기금을 출연해 미술상을 창설했다. 본보 발행인 장재민 회장을 비롯해 오인동, 손학식, 허스키 한, 김종수 부부 5쌍과 조하연, 노정란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 단체의 목적과 지향점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분명했다. 뛰어난 재능과 작품세계, 잠재력을 가진 한국계 젊은 작가를 발굴해 주류미술계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밀어주자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매번 그 목적을 이뤘고, 그 일을 30년이나 지속해왔다는 사실이다. 기관이나 단체가 아닌 개인들이 설립한 미술상이 그렇게 오랜 세월 한번도 거르지 않고 인재와 미래를 위해 조건 없는 투자를 계속해왔다는 사실은 경외감마저 갖게 한다.
상금이 1만달러라는 점이 굉장히 특별한 혜택이었다. 1만달러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는 굉장히 큰돈이었다.(지금 상금은 1만5,000달러) 주류화단에도 그렇게 상금을 많이 주는 공모전은 흔치 않았다. 당시 창립멤버들은 일부러 미술계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상금을 확 올렸다고 한다. “우리는 마이노리티이기 때문에 주류화단에 진출하도록 확실하게 도와줘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을 모두 미술계에서 존경받는 큐레이터, 비평가, 교수 등 거장들로만 구성했다는 점이다. 첫 공모전부터 2018년 제16회 공모전까지 매 3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LA타임스와 LA위클리의 미술비평가, 해머뮤지엄 소장, LA시립미술관 소장, 라크마(LACMA)와 모카(MOCA)의 큐레이터들, UCLA와 CSULA의 교수 같은 이들에게 위촉됐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은 심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들을 눈여겨보았다가 주류 진출에 다리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8회나 심사에 참여한 하워드 폭스(LACMA 큐레이터)는 지금까지 고문으로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이날 30주년 행사에도 참석했다.
초창기에 숨은 에피소드가 있다. 1992년 첫 수상자를 발표하고 5월초에 수상작 전시회가 예정돼있는데 4.29 폭동이 터졌다. LA 전체가 난리였고 특히 한인들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점에서 전시 취소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문이던 헨리 합킨스(작고, 당시 UCLA 미술학과장)가 사회가 불안한 때일수록 문화로 치유해나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조언해 전시회를 강행한 것이다. 한국문화원 입구에 탱크 1대와 군인 2명이 총을 들고 보초를 선 가운데 개막식이 열렸다.
그렇게 태어난 카파미술상은 처음부터 주목받았고, 한인 커뮤니티에 강력한 미술후원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 많은 작가들이 이 상을 받고 나서 주류로 나가 성공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카파미술상은 ‘행운의 상’이라는 애칭도 생겨났다. 가장 유명해진 사람은 서도호지만(그의 작품이 지금 LACMA에 전시중이다) 그 외에도 많은 수상자들이 작가로, 대학교수로 미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카파상은 뜻 깊은 상이다. 아티스트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 분투하던 시절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준 상일뿐더러, 큰 상금과 LA한국문화원에서의 개인전은 작가 경력에 큰 디딤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더 큰 상과 레지던시를 많이 받은 작가들도 자기 이력에 카파상 경력을 반드시 집어넣는 것을 보면 작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지 헤아려볼 수 있다.
오경자 카파회장은 “이제는 우리가 배출한 작가 중에서 심사위원이 나올 때가 되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모인 수상자들도 “이젠 우리가 카파를 도와야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30년전 아름다운 뜻을 가졌던 몇 사람의 헌신이 이렇게 거대한 물결을 이루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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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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