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쿠 카네 메이슨(Sheku Kanneh-Mason)은 영국의 첼리스트다. 이름이 특이한 이유는 아버지가 서인도제도의 작은 섬 안티과 출신이고, 어머니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인 흑인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셰쿠는 2016년 유서깊은 BBC 영뮤지션 콩쿠르에서 흑인으로는 최초로 우승하면서 음악계를 놀래켰다. 이어 음악계를 넘어 온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 2018년 5월19일 일어났는데, 해리 왕자와 메간 마클의 로열웨딩에 초대받아 축가를 연주한 사건이었다. 전세계로 중계된 그 결혼식을 2억명이 시청한 이후 셰쿠는 하루아침에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의 연주에 매혹되는 이유는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누가 들어도 단번에 알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재능 때문이다. 연주 기교가 아무리 뛰어나도 어쩔 수 없이 부족한 것이 연륜인데, 그 한계를 뛰어넘는 셰쿠의 연주는 듣는 이가 넉다운 될 만큼 강렬하고 아름다운 것이다.(유튜브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셰쿠는 현재 20세, 그 나이에 이런 성취는 말도 안 되는 일이고, 흑인 연주자로서는 전례 없는 일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흑인 연주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수영, 골프, 테니스 등 서구문화권에서 흑인이 드문 분야 가운데 하나가 클래시컬 뮤직으로, 지휘자 작곡가 독주자, 심지어 오케스트라의 단원 중에서도 흑인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LA 필하모닉만 해도 100명이 넘는 단원 중 흑인은 서너명도 안 된다. 그것도 현악과 목관 등 주종 악기에서는 없고, 금관이나 타악기, 아니면 콘트라베이스 파트에서나 어쩌다 볼 수 있을 정도다.
셰쿠라는 특별한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년전, 언제 미국에 오나 찾아보니 2018년 5월 LA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예정돼있었다. 큰 기대를 갖고 기다린 그 연주회는 그러나 바로 한달 전 무기한 연기되었다. 로열웨딩에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무척 실망스러웠지만 그런 기회를 감히 흘려보낼 수는 없을 터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그렇게 연기됐던 그의 미국 초연이 이달 초 지퍼홀에서 열렸다.
1년반이나 기다린 콘서트는 셰쿠와 그의 누나인 피아니스트 이사타(23)가 함께 한 리사이틀로 개최됐다.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짧은 변주곡과 루토스와프스키의 ‘그레이브’, 바버와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 처음부터 앵콜곡까지 피아노와 함께 하는 연주였는데 그를 보러 온 청중을 위해 첼로 솔로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셰쿠의 기막힌 연주를 직접 듣고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는 마치 첼로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고, 첼로는 그와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활과 현이 춤을 추며 긋고 치고 뜯는 소리가 얼마나 깊게 심금을 파고드는지, 그 강렬한 표현력과 감성적인 음색, 달인의 경지에 이른 연주력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스무살짜리가 저렇게 첼로를 켤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연주 내내 터져 나왔다.
셰쿠는 7형제의 셋째인데, 경이롭게도 모든 형제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것도 대충 잘하는게 아니라 모두들 왕립음악학교에 다니며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다. 장녀 이사타(23)는 피아노를, 둘째(브라이마, 21)와 넷째(코니야, 18)와 여섯째(아미나타, 13)는 바이올린을, 셰쿠와 다섯째(제네바, 16)와 막내(마리아투, 9)는 첼로를 연주한다.
이 형제들 간의 호흡과 케미스트리는 다른 어떤 연주 그룹에도 견줄 수 없는 완벽한 것이어서 그동안 듀오, 트리오, 쿼텟을 이뤄 계속 연주해왔고, 왕실에 초대받은 적도 여러번이며, 최근에는 7형제가 함께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에서 연주하는 영광을 누렸다. 카네 메이슨 가족에 대한 BBC 4부작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만큼 이들은 영국의 ‘센세이션’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대단한 자녀들을 둔 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 호텔 비즈니스 매니저인 아버지 스튜어트 메이슨과 버밍햄대학 강사였던 카디아투 카네는 아마추어 뮤지션으로,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적극적으로 음악레슨을 시켰다. 특히 아프리카 흑인으로서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교육시켰고, 클래식 음악계에 흑인이 드문 현실을 좌시하지 않도록 독려했다. 셰쿠가 아프리카 풍의 의상을 입고 연주하는 일(지퍼홀에서도)이 적지 않은 이유도 부모의 뿌리교육 때문이다.
또한 그와 형제들은 흑인과 소수민족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런던의 ‘치네케’(Chineke!)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들 모두를 만나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치네케’의 LA 데뷔 콘서트가 4월15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있고, 셰쿠는 5월16~17일 드디어 LA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예정이다. 엘가나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을 들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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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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