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시간이 무겁게 간다. 가볍게 날아가는 듯하던 시계 소리가 철컥거리며 둔중한 걸음을 옮기는 것 같다. 왜 이런 걸까. 찬찬히 집안을 둘러본다. 익숙한 물건들뿐이다. 언제부터 저 자리를 지켜왔을까. 젊었을 때는 가구도 가끔씩 이리저리 바꿔가며 변화를 주곤 했는데 나이 들고부터는 무엇이든 한번 놓인 자리에 그대로 붙박여 있다. 내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이 중압감이 어쩌면, 익숙해질 정도로 오랜 세월을 함께했지만 더는 필요 없는 것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피가 큰 것은 엄두가 나질 않으니 작은 것부터 정리하기로 하자. 정리해고하는 책임자의 심정이 이럴까 하며 순위를 매긴다. 1순위가 옷이고 2순위는 책이다. 3순위는? 옷은 옷의 기능적인 면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켜준 고마운 것들이기도 하다.
정리하는 데도 나름의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낡거나 유행이 지난 것? 구입한 연도별로? 아니면 오랫동안 입지 않은 것부터?
그 세 가지 순서대로 몇 벌씩 추려내기로 하고 우선 소맷부리가 낡은 정장과 재킷 몇 벌을 골라낸다. 다음엔 구입한 지 오래된 옷 차례다. 구입 연도는 기억하지 못해도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 입던 옷인지는 생각난다. 세상에, 수원 S중학교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적어도 35년 전 옷이다. 그 시절에 입던 옷이 아직도 집안에 있었구나, 이걸 왜 여태 남겨놨을까 하며 입어 보니 의외로 잘 맞는다. 품도 낙낙하고 디자인과 색상은 청춘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어울리니, 두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
젊었을 적엔 왜 그리 우중충한 옷을 입었을까.
교사라는 직업을 의식해 ‘점잖은’ 옷을 골랐을 터였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옷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시하던 때였다. 옷걸이에 걸려있던 젊음을 오늘 날짜로 옷과 함께 버리는 기분이다. 알맹이가 빠져나간 겉껍질을 붙들고 있으면 뭘 하랴 싶으면서도, 그때 입던 옷 중에서 이것 하나만 남겼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다. 결국 그 옷을 제자리에 걸어놓고 만다. 그래도 추려놓은 옷이 꽤 되니 홀가분하다.
이젠 책 차례다. 빈한한 내 정신을 살찌운 양식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책을 정리하는 데는 기준을 정하기가 옷보다 어렵다. 오래됐거나 낡았다고 버릴 수도, 어렵거나 재미가 없었다고 젖혀놓을 수도 없는 일. 버릴 것을 골라내기보다는 한 번쯤 더 읽고 싶은 책을 챙겨야겠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아 몇 장 읽다 보니 재미있다. 분명히 읽은 책인데 반쯤 읽도록 여전히 새롭고 재미있을 때는 서글프다. 책 읽는 일에 빠져있느라 버릴 것은 몇 권 챙기지도 못했다.
책 정리가 며칠 째 이어진다. 옷이야 대충 훑어보거나 한번 입어보면 그만인데 책은 다르다. 이민 올 때 고국에서 읽던 책을 거의 다 나눠주고 왔으니. 영어책만 읽으며 살게 될 줄 알만큼 현실에 어두웠다. 읽던 책을 갖고 오지 않은 게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더구나 한국어로 글을 쓰는 길로 들어섰으니 갖고 있던 책 생각이 새록새록 날 수밖에. 어떤 책은 지나간 어느 시절로 나를 데려다 놓고 어떤 책은 잊지 못할 누군가를 기억나게 한다.
옷과 책을 반쯤 정리했더니 몸과 머리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이젠 추억의 무게를 덜어낼 시간인데, 그건 더 자신이 없다. 책이야 버린다 해도 또 사서 읽을 수 있지만 지나간 삶의 기록인 사진은 한번 버리면 복원 불가능한 일이다. 왠지 내 편의를 위해 가족의 역사를 지워버린다는 느낌에 편치 않다. 앞으로 나이는 더 들 테고 활동은 줄어들 게 뻔한 일. 추억을 길어 올릴 실마리가 없으면 지나간 소소한 삶의 서사를 어찌 다 기억할까. 가족과 친구의 이야기가 지워진 노경의 삶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지나온 삶을 고스란히 내장한 앨범이 고민의 주인공이다. 앨범은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뒷전으로 밀려나 자리만 차지한 지 오래다. 일 년에 한 번 펼쳐볼 일 없는데도 버리려니 망설여진다. 몇 세대에 걸친 가족의 발자취를 지우는 불경한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 불안하기까지 하다.
얇은 종이에 불과한 사진 한 장 한 장이 갖는 삶의 무게가 굉장하다. 어떤 사진은 젊을 적 우리 가족 시간이 고스란히 평면화되어 있고, 어떤 사진에는 부모님 삶이 흑백 시간으로 눌려 있다. 나는 빛바랜 사진이 보여주는 이미지 너머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진 밑에는 짧게나마 순간을 설명하는 글귀가 적혀있다. 손으로 쓴 상투적인 말인데도 세련된 문장보다 더 뭉클 한다. 나는 밀려드는 세월의 하중을 이기지 못해 그만 앨범을 덮고 일어선다. 어쨌거나 버리는 일의 첫 단추는 끼웠고 미룰 수 있는 내일이 있는데, 하며 어설픈 변명을 해본다. 버리고 비워내는 미학을 배워가는 초보자에게 미니멀 라이프는 여전히 멀고 먼 이야기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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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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