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자주 보는 청년이 있다. 20대의 더벅머리 청년이다. 백팩을 메고 도로변에 서 있다가 교차로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면 정지한 차량들 사이를 천천히 이동한다. 한 손에 판지 팻말을 들고, 눈으로는 누군가 잔돈을 건네지 않을까 운전자들을 살피면서. 대개의 경우는 허탕이다. 청년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손을 한번 내젓고는 인도로 올라선다.
생김새가 아시안인 그가 한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청년의 부모는 아들의 저런 모습을 알고 있을까, 필시 아들이 어디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얼마나 속을 태울까 - 가슴이 저리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음으로써 이 땅에 새싹 돋아나듯 사람 하나 발 딛게 하는 일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인지를 나이 들수록 절감한다.
캘리포니아의 대표적 흑인정치인인 허브 웨슨 LA시의회 의장이 내년 3월의 수퍼바이저 선거 캠페인에 돌입했다. 그는 마크 리들리-토마스가 임기제한으로 물러나는 LA카운티 수퍼바이저 2지구 선거에 출마한다. 리들리-토마스는 반대로 웨슨이 14년간 터줏대감으로 있는 LA시 10지구 선거에 출마한다. 수십년 경력의 정치인들이 자리 맞바꾸기를 하려는 것이다.
주하원의장, 최초의 흑인 LA시의장 등 정치적 성공가도를 달려온 웨슨이 이번에는 좀 색다른 캠페인을 하고 있다. 지난주 웨슨 선거진영은 그가 아들을 찾느라 LA 다운타운의 노숙자 거리, 스키드 로우를 헤매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내보냈다. 아픈 가족사를 공개함으로써 정신질환, 약물중독, 홈리스라는 지역구의 고질적 문제에 책임 있게 대응하겠다는 선언이다.
그가 선거운동 중인 사우스 LA, 저소득 흑인밀집지역에서 그의 아픔은 많은 주민들에게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LA카운티의 홈리스 인구가 근 6만 명이고 보면 그의 아픔은 선거구와 무관하게 수많은 가정들의 숨겨진 고통일 것이다. 웨슨의 가슴 찡한 동영상이 노회한 정치인의 영리한 선거 전략이라 하더라도, 노숙자 아들을 가진 아버지의 고통 앞에서 자식 가진 모든 자들은 속수무책이다. 가슴 빗장이 속절없이 열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동병상련 - 자식 걱정이다.
흑인커뮤니티 신문인 LA 센티널 보도를 보면 웨슨 부부가 아들 더글러스로 인해 겪은 고뇌의 역정은 아득하다. 네 아들 중 맏이인 그가 문제에 휘말리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 이제 그의 나이는 50살이다. 양극성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약물복용으로, 마약중독으로, 거리 생활로 이어진 지 30년이다. 좀 낫는가 싶다가 다시 악화하고, 안정되었구나 싶을 때 다시 거리로 사라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지금 사춘기 아들딸 때문에 속 썩는 부모들은 명함도 못 내밀 크고 긴 고통이다.
웨슨은 아들과의 지난 세월을 감정의 롤러코스터로 표현했다.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두서없이 격렬하게 죽 끓듯 반복했다.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이럴 수가 있느냐” 하는 분노, “그런 자식 없는 셈 치자” 하는 부정, “더 잘 살펴야 했던 걸까, 때려야 했던 걸까” 싶은 자책과 혼란, 그러다 보면 “밥은 먹었을까, 바깥이 너무나 추운데…” 하는 걱정, 이 모두를 관통하는 가슴 저변의 슬픔과 고통.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험이다. 자식 걱정은 부모의 숙명. 걱정의 내용이 덜 심각하기를, 걱정의 기간이 덜 길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갈등은 파국을 몰고 오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 간 관계의 단절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가슴 따뜻한 할러데이 광고들이 등장한다. 지난해에는 독일의 한 수퍼마켓 체인 광고가 감동적이었다. 중년의 엄마가 오래 인연을 끊고 살아온 딸과 화해하는 내용이다. 딸은 아마도 10대에 임신을 한 것 같고, 그런 딸에게 엄마는 분노했다.
모녀간의 불화가 어느 날 격렬한 언쟁으로 불붙고, 딸은 만삭의 몸으로 집을 나간다.
그리고는 여러 해가 지난 후 마침내 엄마는 딸을 찾아가고, 딸은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엄마를 맞는다. 해피엔딩이다. ‘해피’란 함께 있어야 할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것.
자식 걱정의 백전노장인 웨슨은 “아들이 여전히 살아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아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돕는다면 언젠가는 하늘로부터 승리의 축복이 내려지지 않을까’ 그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로서 그는 모든 부모들의 가슴에 가 닿는다.
12월이다. 정신없이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 어느새 한해의 끝에 섰다. 그렇게 언젠가는 생애의 끝에 서게 될 것이다. 그 끝에서 후회가 없으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이다.
가족친지들이 함께 하는 연말, 관계의 기상도를 살펴보자. 막히고 얼어붙은 관계가 있는가. 특히 그것이 자녀와의 관계라면 용기가 필요하다. 용서하고 화해하는 용기이다. 자녀와 단절하고 행복할 부모는 없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계절, 진정한 마무리는 화해와 사랑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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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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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감동적인 글입니다. 눈물이 나오는군요.
많은 사람들이 노숙자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견해를 갖고 있지만 이들 모두가 한때 사랑을 받고 자라다가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도움을 못 받게 됨으로 나락의 길로 떨어지면서 거리에 나돌게 되는데.... 비판에 앞서 자식들이나 친지가 건강하게 하루를 보낼수 있는 상황에 먼저 감사할줄 알고 동정은 못해도 인간이하로 취급하는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