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주 사이에 여러 종류의 음악회에 다녀왔다. 오페라 ‘요술피리’를 비롯하여 LA 체임버 오케스트라, 백건우 리사이틀, 조성진과 LA 필하모닉의 협연, 카메라타 퍼시피카… 모두 다 특별하고 아름다웠지만 이 가운데 개인적인 울림이 가장 큰 연주회를 들라면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실내악 콘서트를 이야기하고 싶다.
음악애호가 중에는 교향곡과 협주곡처럼 크고 웅장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아노 트리오나 현악4중주처럼 소수의 연주자가 옹기종기 모여서 합주하는 실내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실내악은 실내악대로, 오케스트라 음악은 그대로 모두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 음악회에서 느끼는 감동과 만족감은 실내악 연주회에 갔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진다. “오늘 연주 정말 좋았다”고 감탄하며 돌아오는 음악회는 언제나 실내악 콘서트였다.
실내악이란 2개 이상의 독주 악기그룹이 소수의 청중을 위해 실내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말한다. 대개 독주자나 지휘자가 따로 없이 제1바이올린 주자의 숨소리나 고갯짓으로 시작되는 단아한 음악으로, 각 악기가 이상적인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호흡과 조화가 중요한 음악이다.
무대와 청중의 교감이 즉시 이루어지는 친밀감,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다 들리는 긴장과 흥분, 오케스트라 사운드처럼 웅대한 소리가 아니라 악기 하나하나의 음결이 모여서 이루는 협화음과 불협화음에 때론 기뻐하고 때론 놀라는 일이 벌어지는 곳도 실내악 연주회에서다.
음식으로 치자면 진한 양념 없이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한, 재료의 맛으로 음미하는 담백한 요리를 먹는 기분이랄까, 거창하지 않아서 부담 없고 티켓 가격도 비싸지 않고 연주장 역시 아담해서 어디에 앉아도 음악이 잘 들리는 기분 좋은 콘서트가 실내악 연주회인 것이다.
지난 달 LA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 갔었다. 이번 시즌에 새로 부임한 음악감독 제임 마르탱(Jaime Martin)의 연주가 어떤지 궁금해서 찾아간 연주회였다. 50년 역사를 가진 이 연주단은 30~40명 규모인 남가주의 대표적인 실내관현악단으로, 매달 프로그램을 글렌데일 알렉스 디어터와 UCLA 로이스 홀에서 두차례 연주하고 있다.
연주회 시작 전에 이사장이 무대로 나와 오랜 구독자 청중들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먼저 10년 이상 된 구독자들에게 일어서라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일어섰다. 그 가운데 20년 넘은 사람들을 세우자 수십명이 남았고, 마지막으로 30년 넘은 구독자를 호명했을 때는 맨 앞좌석의 노부부만 서있었다. 실내악단의 아름다움은 이런 충성된 청중의 사랑과 지원으로 세대를 넘어 전해진다.
나도 카메라타 퍼시피카(Camerata Pacifica)의 충성스런 청중이 된 지 10년이 넘는다. 1년에 9~10개 프로그램을 연주하는 이 단체의 콘서트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달 빠지지 않고 참석할 만큼 이들의 음악을 굉장히 좋아한다. 연주자 중에 리처드 용재 오닐, 크리스틴 리, 정지혜, 트리샤 박 등 뛰어난 한인 뮤지션들이 포진해있기도 하지만 뉴욕 시카고 LA를 비롯해 영국, 스페인, 아일랜드 등지에서 활약하는 정상급 음악가들이 무대에 서고, 특히 프로그램이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전방위로 짜이기 때문에 언제나 경이로운 경험을 하고 돌아온다. 이제는 단원들이 모두 나의 가족 같아서(물론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무대에 오른 연주자의 얼굴이나 제스처만 보고도 오늘은 컨디션이 어떤지 소리가 어떤지 판별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실내악단의 매력은 그런 데 있다. 오랜 세월 가다보면 정이 들고, 조금씩 더 알게 되면서 더 궁금하고 더 좋아지는,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나의 소양도 깊어지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LA 일원에는 탁월한 연주를 들려주는 실내악단이 여럿 있다. 그리고 하나씩 들여다보면 모두 특징이 있고 전문 분야가 달라서 흥미롭다.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는 수준 높은 실내관현악단으로 매달 남가주 4개 연주장에서 무료 공연을 갖고 있다. 자카란다(Jacaranda)는 현대 작곡가들과 과거의 안 알려진 음악들을 찾아 연주하는 특별한 앙상블로 샌타모니카 제일장로교회가 연주장이다. 무지카 안젤리카(Musica Angelica)는 바로크음악 전문 앙상블로 한 시즌에 3개 프로그램을 롱비치와 LA 한인타운(6가와 커먼웰스의 제일회중교회)에서 연주한다. 살라스티나(Salastina)는 소수정예 연주자들이 연 7개의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패사디나와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 공연한다.
음악 좋아하는 분들은 하나씩 다녀보면서 실내악의 기쁨을 찾아보시기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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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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