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몇 시에 잠자리에 드는지가 중요하겠지.” 애플에서 메모리, 카메라모듈 등 핵심 부품의 글로벌 소싱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40대 초반의 중국계 2세로 내 조카뻘 나이인 에이드리언이다. 같은 애플이지만 다른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일하는 50대 중반의 중국계 리처드도 옆에서 웃으며 거든다.
오늘 따라 빡셌던 해군 신병훈련 컨셉의 토요 수중생존 클래스를 잘 마친 우리는 가쁜 숨을 들이쉬며 핫텁에서 한숨 돌리던 중이었다. 애플의 CEO인 팀 쿡이 매일 새벽 3시45분이면 일어난다는 소문이 진짜냐고 내가 물어보자 그들이 보인 반응이다.
새벽에 그리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과연 그가 얼마나 일찍 잠자리에 들면 그런 신새벽에 일어날 수가 있었겠냐며 보스인 쿡에 대해 일종의 장난기를 발동해 말한 것이다. 한바탕 웃은 뒤, 한국에도 그렇게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로 유명했던 글로벌 경제인이 있었던 걸 아느냐고 내가 묻자 그게 누구냐고 모두 귀를 쫑긋한다.
팀 쿡보다 15분 늦은 새벽 4시면 그날 추진할 새로운 일 생각에 설레어 도저히 잠자리에 더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는, 현대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의 이야기를 내가 술술 풀어나가자 그들은 깊은 호기심에 빠져든다.
1986년 여름 서울의 대방동 공군본부에서 중위로 제대한 나는 비원 옆 계동의 휘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자리에 건립된 현대그룹 사옥 1~2층에 있던 한국 외환은행에서 일했다. 수출입 신용장 및 해외공사 입찰 보증서와 선급금 환급 및 공사이행 보증서 발급 등의 다양한 국제 업무를 맡으며 정주영 회장과 현대그룹의 여러 해외 프로젝트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에세이의 제목은 당시 내가 ‘밑줄 쫙’ 그으며 몇 번이나 정독했던 정 회장에 관한 감동적인 자전적 수필집의 제목이다.
현대 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하이닉스와 같은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낸 고 정주영 회장은 중퇴자, 그것도 겨우 초등학교 중퇴자라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으며 서두를 꺼내니 그들은 더더욱 호기심을 보였다. 자기네들은 명문 스탠포드와 아이비리그인 유펜을 졸업해도 실리콘밸리에서 별 힘을 못 쓴다며 너스레를 떤다. 실리콘 밸리를 주름잡은 창업자들은 거의 대학 중퇴자라는 것을 빗대 말하는 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를,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을 공동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오리건의 리드 칼리지를, 그리고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은 시카고 대학을 중퇴한 사람들 아니냐는 말이다.
여하튼, 초등학교 중퇴 학력의 정주영 회장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지금은 북한지역인 강원도 고성군 아산면 통천리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돕는 따분한(?) 일보다는 대처에서 큰일을 모색하고 싶었던 청년 정주영. 그의 나이 17세였던 1932년, 그는 부친이 당시 농가의 재산 1호였던 소를 팔아 옷장 속에 넣어둔 돈을 훔쳐 서울로 달아난다. 수영친구들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억장이 무너졌던 그의 아버지는 12시간이나 걸리던 경원선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수소문 끝에 서소문 부기학원에서 수강 중이던 아들을 찾아낸다. 학원 인근 곰탕집에서 눈물로 아들을 타이른 끝에 어렵사리 고향으로 데려가지만, 그는 연이어 4번째 가출을 감행해 인천항에서 부두 하역노동을 하다가 경성으로 옮겨 아현동 쌀집에 쌀 배달부로 취직한다.
쌀집 주인은 부기(어카운팅) 실력도 있는 청년의 성실한 인간성을 간파하고는 주색잡기에 빠져 있던 아들대신 23세의 정주영에게 쌀집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이후 청년은 당시로서는 첨단산업인 자동차 수리업소를 인수했고, 5.16 혁명 후 5개년 경제개발계획 기간 중 경부고속도로 최단기간 건설, 현대자동차 설립, 울산 백사장에 세계 1위의 조선소 건설, 해외건설사업 등 한국경제에 수많은 신화를 이룩했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얘기는 정 회장이 소 판돈을 훔쳐 가출해 아버지에게 대못을 박은 불효를 1998년 11월 소떼 1천 마리를 몰고 휴전선을 통과해 북한당국에 선물하는 형태로 드라마틱하게 되갚았다는 대목에 이르렀다. 친구들은 휴전선을 넘어가는 1천 마리 소떼의 장관을 상상하며, 말하던 나는 어떻게 만들어낸 기적의 대한민국인가 되새기면서 김 서린 유리창 너머로 추수감사절이 얼마 안남은 늦가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 무리의 기러기 떼가 열심히 날개 짓 하며 리더를 따라 따뜻한 남쪽을 향해 가지런히 브이 대형으로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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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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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개인의 출중한 능력으로야 정주영 회장님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겠지요. 하지만 정당정치의 모순이 이러한 불세출의 영웅을 큰일을 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아주 큽니다.
정주영 회장님이 대통령을 하셨다면 지금쯤은 통일된 대한민국으로 잘 살걸로 난 믿습니다, 하면 되며 직접 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으니까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통일에 대해 말 하면 전부 날 미친사람취급하며 절대로 통일은 할수없다하는 문제에 부딛치게 되드군요 난 그때마다 그런 안된다는생각은 자기 혼자나 간직하며 살 일이지 남이 할수있고 해야 한다는데 해 보지도않고 부정부터 하는가 하고 안타깝게 생각이 들드군요, 지나간일아무리들춰내 쌈박질 해보았자 득될일 없것만 만나면 쌈박질 지구촌여기저기 특히 미국에서도 반반 으로갈라져 쌈박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