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나서 백일이 되면 백일잔치, 1년이 되면 돌잔치를 하는 것이 우리의 풍습이다. 지금은 축하의 행사이지만 과거에는 축원의 행사였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 영아 사망률이 높았다.
그래서 백일과 돌이 되면 제일 먼저 차리는 것이 삼신상이었다. 아기를 점지하고 산육을 관장한다는 삼신(할머니)을 모시는 상이다. 주로 산모의 시어머니가 절을 하며 “젖 잘 먹고 젖 흥하게 점지해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긴 명을 서리 담고, 짧은 명은 이어대서 수명 장수하게 점지하고, 장마 때 물 붇듯이 초생달에 달 붇듯이 아무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게 해주십시오” 하고 빌었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첫해를 무사히 넘겼다 해도 홍역, 천연두, 디프테리아 등 질병이 찾아들면 많은 아이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20세기 이전 농경사회 어린이들의 3분의 1은 성년이 되기 전에 죽었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난다고 나이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선진국에서 아기를 잃는 일은 드물어졌다. 2018년 기준 영아 사망률은 OECD 평균 1,000명 당 3.9명, 미국은 5.9명, 한국은 3명이 약간 못된다. 양질의 영
양섭취, 위생적 환경, 예방접종, 첨단의료기술 등이 합쳐진 결과이다. 아이들은 쑥쑥 자라서 체격도 좋고 체형도 반듯하다.
그런데 하드웨어 번듯한 이 세대에게서 소프트웨어 이상이 감지되고 있다. 바이러스 감염된 컴퓨터처럼 속으로 혼란스런 아이들이 늘고 있다. 우울증, 불안증, 공허감 등
정신건강에 경고등이 켜진 아이들이다. 이들이 성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
남가주의 명문대학인 USC가 어수선하다. 8월 마지막 주 개학한 후 11월초까지 9명의 학생들이 사망했다. 지난 베터런스데이 연휴에는 3명이 연이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재학생 4만7,500명인 USC에서는 보통 연간 4명에서 15명이 사망한다. 불행하게도 이 정도는 어느 대학에서나 있는 일이다. 하지만 2달 반 사이 9명이 숨지니 학교당국도
학생들도 여간 긴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중 3명은 자살, 4명은 약물/알콜 과다복용으로 학교 측은 밝혔다. 교통사고 사망 케이스도 있는데, 한 신입생이 8월말 이른 새벽
110번 프리웨이를 걸어가다가 두 대의 차에 치여 숨졌다. 정신이 맑은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자녀의 사망소식을 들은 부모들은 얼마나 큰 충격에 빠졌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일 것이다. 대부분 후회와 자책,‘ 내가 뭘 잘못 했을까?’ 싶은 혼란에 빠져있을 것이다.
USC 케이스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어느 한 대학의 일로 볼 수없기 때문이다. 오피오이드 남용은 이미 국가적 문제로 부상했고, 스무 살 전후 자살은 전염병 수준으로 늘고 있다.
의학이 발달한 21세기, 대부분의 질병으로 인한 사망은 감소했다. 반면 희생자를 늘리는 세가지가 있다. 알츠하이머, 마약, 자살이다. 전자가 노인들 문제라면 나머지 둘은 젊은 층을 공격하고 있다.
미국대학보건협회에 따르면 15~24세 청(소)년 자살률은 1950년대 이후 세배로 뛰었다. 자살은 대학생 사인의 2위(1위는 사고)를 차지한다. 지난달 발표된 연방질병통제국 보고서에 의하면 2007년부터 2017년 사이 10~24세 자살률은 56% 증가했다.
지금 20세 전후 연령층은 이전의 밀레니얼 세대가 그 나이였을 때에 비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고 중증 우울증과 자살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들은 디지털 세대, 사람 대신 기기와 붙어 지내는 삶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한창 꿈에 부풀어야할 나이에 이들은 왜 약물에 빠지고 생명을 끊는가. 심리상담가인 모니카 이씨는 ‘이 사회가 주는 메시지’에 주목한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업 갖는 것이 성공, 그렇지 못하면 패배자라는 메시지이다. 상담 받으러 오는 학생들 중 명문고교, 일류 대학 재학생들이 꽤 된다는 그는 말한다.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더 더욱‘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항상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에 너무나 힘들어 하지요. 불안증과 우울증이 많습니다.”
‘메시지’의 압박감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우울증을, 우울증이 종종 마약 남용으로 이어진다.
해결책은 세상의 성공지상주의에 맞서 자기 자신으로서 당당할 만큼 내면의 힘을 갖는 것. 그런 힘의 원천은 부모라고 그는 말한다. 아이가 편안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아이의 말을 그냥 들어주라고, 들어주는 것이 격려이고 위로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부모와 탯줄처럼 연결되면 그들은 힘들 때 돌아가서 쉴 곳이 있다. 성년의 문턱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게 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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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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