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은 시기가 어느 인생에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출구 없는 터널에 갇힌 듯 삶이 온통 캄캄한 날들이다. 실연, 이혼, 질병, 학업·직업상의 실패, 배우자나 자식 문제, 파산 등 돌아보면 다시는 겪어내지 못할 것 같은 날들이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런 날들을 용케도 살아냈다는 것, 그 캄캄한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말이 된다.
모두가 그렇게 운이 좋지는 못하다. 터널 속에 갇혀서 끝내 나오지 못하는 케이스들이 있다. 절망에 짓눌린 영혼은 어느 막막한 순간 생명을 끊음으로써 안식을 추구한다.
자살이다.
한국에서 또 연예인이 자살했다. 25살 여성 아이돌이 우울증과 악플에 시달리다 못해 죽음을 택했다. 한국이 자살공화국 딱지를 단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연예인들의 자살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짚어보아도 이은주를 시작으로 최진실, 박용하, 정다빈, 최진영, 안재환, 장자연 등 30명이 넘는다. 매년 두세 명씩 자살을 했다는 말이 된다.
인기 연예인의 자살은 종종 그 한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베르테르 효과 즉 모방자살이 뒤따른다. 그러잖아도 자살충동이 있던 사람들이 유명인의 자살을 보고는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자살이 유행병일수는 없지만 유행병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 그리고 툭하면 터지는 연예인 자살의 근본적 요인은 그 사회 특유의 성공 강박과 극심한 경쟁이다. 숨이 탁탁 막힐 정도로 치열한 경쟁, 밀리면 바로 떨어진다는 불안감, 떨어지는 순간 낙오자로 손가락질 받는 분위기, 손가락질을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는 체면문화 등이 한국을 OECD 자살률 1위 국가로 올리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6.6명으로 미국(13.5명)의 두 배이다. 한국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10만명 당 20명 이내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을 세웠을 정도이다. 같은 문화와 정서, 기질을 가진 미주한인들 역시 타인종/민족에 비해 자살위험이 높다.
인생은 고해 - 살아있는 한 고통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다. 삶의 모퉁이마다 어려움은 불쑥불쑥 찾아든다. 그렇다고 어려움 때문에 사람이 자살하지는 않는다. 어려움을 감당하기에 너무 약한 정신이 자살을 부른다. 정신의 뼈대를 삭아서 바스라지게 만드는 주범은 우울증. 자살의 70~80%는 우울증 때문이다. 10~20%는 정신분열증 그리고 나머지는 어떤 충동적 원인 때문에 자살하는 것으로 정신과전문의는 분석한다.
캄캄한 터널에서 우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꽉 막힌 것 같아도 길은 열릴 것이라는 희망, 그러니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준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의지가 되는 어떤 존재, 그와 연결되어 있다는 든든함이 우리를 절망에서 일으켜 세우곤 한다.
자살로 누군가를 잃지 않는 길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로 행동으로 존재자체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관심 그리고 연대감이다.
호주여성 아만다 존스톤(33)은 친한 친구 3명과 지인 9명을 자살로 잃었다. 이들이 죽으면서 남긴 글은 “힘들었지만 남에게 부담이 될까봐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더 이상 그렇게 친구를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존스톤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친구들과 서로 서로 정신건강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매일 오후 4시에 각자 자신의 정신적 기상도를 1~10 사이로 점수 매겨 그룹방 메시지로 주고받았다. 누군가 몹시 우울한 날이면 특별히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바로 알고 위로해줄 수가 있었다.
이 간단한 시스템이 효과가 있자 존스톤은 이를 전 세계 무대에 올렸다. 2017년 11월 ‘루프의 일원(Be A Looper)’이라는 무료 앱을 출시했다. 5명이 한 조가 되어 정신적으로 편안한지, 힘든지를 매일 점수로 주고받는 앱이다. 하루 24시간 셀폰을 들고 사는 시대에 이 보다 편리한 정신건강 체크 시스템은 없다.
앱은 76개국으로 퍼졌고, 이를 통해 자살충동을 알린 사람은 거의 2만 명. 관심과 위로가 바로 갔을 것은 물론이다. 덕분에 앱 사용자 중 자살한 사람은 아직 없다.
한국에서는 ‘보고 듣고 말하기’ 자살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죽음이 좋아서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살 수가 없어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자의 10명 중 9명은 자살 전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관심을 기울여서 그 신호를 알아채고(‘보기’), 가슴 속 이야기를 들어준 후(‘듣기’) 전문가와 연결시켜(‘말하기’) 자살을 막자는 캠페인이다.
루퍼 앱은 한조가 5명이니 자신을 빼면 4명이다. 각자 4명씩만 챙긴다면 세상에서 자살은 많이 줄어들 수가 있을 것이다. 관심을 갖고 보고 듣는 것,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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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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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가 골치아픈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 해결책이 나올 것입니다. 미주한국일보 댓글란에 달리는 악플들을 보십시오. 참으로 어려운 민족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