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희의‘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우리에게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빠빠빠빰’ 으로 시작하는 다단조 주제의 <운명교향곡>이나 2000년대 한 공포영화에 주제곡으로 등장했던 <월광소나타>를 쓴 작곡가로 친숙하다. 오늘은 그의 마지막 피아노 삼중주에 대해 소개해볼까 한다. 먼저 피아노 삼중주(Piano Trio)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세 가지 악기로 이루어진 실내악 합주를 말한다. 베토벤은 총 7개의 피아노 삼중주를 남겼고 마지막 피아노 삼중주는 작품번호 97번(이하 Op.97)으로 그가 남긴 피아노 삼중주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베토벤은 피아노 삼중주에서 현악기를 피아노와 동등한 파트너로의 위치로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악기간의 긴밀한 호흡과 조화, 피아노 삼중주만의 풍부한 표현력과 기품을 보여주었다.
1814년 작품 초연
베토벤의 마지막 공개 연주
피아노 삼중주 Op.97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삼중주 곡으로 1811년에 완성되어 1814년에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베토벤이 직접 피아노를 맡아 초연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에게 이것이 피아니스트로서의 마지막 공개 연주가 되었다. 작품성을 인정받긴 했지만 포르테(forte, 강하게) 악상인 부분에서는 건반을 지나치게 내려치고 피아노(piano, 여리게)의 부분에서는 무작정 작게만 치는 등 초연에서 다른 두 악기와의 발란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베토벤의 청각 상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났고 그는 1814년 이후 청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소리를 듣기 위한 호른’은 말년에 베토벤이 사용했던 보청기이다. 이것을 귀에 대고 희미한 진동이라도 느끼고 싶었을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소리 자체에 대한 갈망으로 더 원숙한 음악이 빚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어 삼중주 <대공>이라 불려
‘대공(Archduke)’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Op.97은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었고 베토벤의 또 다른 피아노 삼중주곡 5번 <유령>과 함께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베토벤을 후원했던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대공은 베토벤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제자이면서 동시에 친구이기도 했다. 루돌프 대공은 죽을 때까지 베토벤에 대한 신의를 져버리지 않고 후원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베토벤의 많은 곡들이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었다. 특히 베토벤은 피아노 삼중주 7번을 ‘대공’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그에게 헌정하였고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피아노 삼중주를 쓰지 않았다. 삼중주 <대공>은 베토벤이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을 무렵에 작곡 되었지만 그의 후기 음악 특유의 웅장하면서도 고귀한 품격이 담겨있다.
전형적인 4악장 구조
피아노 삼중주 <대공>은 전형적인 4악장 구성이지만 기존의 어떤 삼중주보다 큰 규모였다. 또한 베토벤 후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당당한 선율과 우아함 등이 잘 조화되었다. 삼중주 <대공>은 피아노가 리드하는 1악장 첫 주제부터 마지막 4악장까지 웅장함이 느껴진다. 특히 3악장에서는 드라마틱한 격정보다는 내면을 향한 고요함, 밤 파도의 잔잔함 등이 연상되며 쓸쓸함과 평화가 동시에 느껴진다.
1악장의 웅대하고 밝은 첫 주제 선율이 피아노에서 시작되어 이것은 곧 바이올린으로 반복된다. 이후 짧은 경과부를 거쳐 피아노로 제2주제가 제시되며 이를 두 현악기가 이어받는다. 마치 마음이 맞는 세 친구가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듯한 세 악기의 조화는 사무치게 아름답다. 마지막 코다(Coda, 악곡•악장 등의 종결부)에서는 제1주제를 주요 소재로 한 선율이 화려한 분위기 속에 마무리된다.
전형적인 스케르초(Scherzo)로 쓰인 2악장은 바이올린과 첼로가 경쾌한 주제를 연주하고 피아노가 이어받아 주제 선율을 반복한다. 현악기의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끝으로 튕겨서 연주하는 기법)와 스케르초라는 제시어처럼 세 악기가 장난치는듯한 익살스러움과 유쾌함이 묻어난다.
3악장은 “Andante cantabile ma perocon moto. Poco piu adagio”로 쓰였다. 주제와 네개의 변주가 이어지는데, 이는 제시어 “cantabile(노래하듯이 부드럽게)”를 그대로 표현하였다. 피아노가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 이어지는 현악기의 선율도 매혹적이다. 13분이라는 짧지 않은 길이의 악장이지만 깊고도 그윽한 서정성은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된다. 3악장을 듣고 있노라면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듯도 하다. 들으면 들을수록 또 듣고 싶고 한번 듣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매력적인 3악장은 가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앞 악장에서 쉼 없이 마지막 악장으로 연결된다. 마지막 악장인 4악장은 론도(Rondo, 동일한 주제가 되풀이되는 사이에 다른 가락이 여러 형태로 끼어드는 형식)로 쓰였고 전체적으로 활기차면서도 우아한 느낌이다. 피아노가 발랄한 론도 주제를 연주하고 현악기가 화성 진행을 담당하면서 간간히 선율에 참가한다. 마지막 악장은 피아노가 주가 되어 화려하게 진행되며 힘차게 끝맺는다.
지난주 퇴근 길 라디오에서 삼중주 <대공> 3악장이 흘러 나왔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음악으로 위로 받는 느낌이랄까. 집에 도착했지만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끝까지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일에 치여 지친 날 심심한 위로를 받고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모두에게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대공> 3악장 감상을 추천한다.
-Ludwig van Beethoven Piano Trio Op. 97
<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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