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호박 무게의 95%가 수분, 소금 넉넉히 뿌려 물기 빼고 수분 안 더하는 게 맛내기 요령
▶ 무침·나물·샐러드 만들 땐 속살은 빼고 돌려깎아 채썰면 아삭함과 고소함이 훨씬 살아나
수분함량이 높은 애호박을 전으로 부칠 때는 계란 흰자를 적당히 걷어낸 뒤에 계란 옷을 만들어 입혀야 바삭바삭한 호박전을 구울 수 있다.
<뉴시스>
애호박을 잘 씻어 수평으로 둥글게 썬다, 까지 쓰고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자를 서랍에서 꺼내어 두께를 헤아려 본다. 여담이지만 전공이었던 건축 탓에 한때 자를 세기가 귀찮을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치수에 대한 감각도 일정 수준 훈련을 통해 갖췄으니 대강 감은 잡히지만 그래도 정확한 게 좋다. 예상대로 최대 1㎝까지는 괜찮을 것 같다. 이름이 ‘애’호박이니 이 채소는 섬세하다 못해 연약하다. 따라서 웬만한 조리에 썩 잘 버티지 못하니 조금 넉넉하다 싶게 써는 게 차라리 낫다. 썬 애호박을 종이 행주 위에 가지런히 올리고 소금을 가볍게 솔솔 뿌려 30분쯤 둔다. 수분 함량이 무게의 95%이니 일정 수준 덜어내는 게 호박의 맛과 질감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된다. 게다가 우리는 양념 문화가 발달해서 ‘찍히는’ 음식 쪽에는 간을 적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호박전이라면 아무런 맛도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소금을 넉넉히 뿌리고 기다리는 동안 입힐 옷을 준비한다. 애호박의 수분 함량이 90%라고 했으니 나머지 요소에서 웬만하면 수분을 더하지 않는 게 맛있는 호박전의 요령이다. 애호박, 계란, 밀가루 정도가 전부인 호박전의 재료 중 나머지 수분의 함량은 계란 흰자가 쥐고 있다. 10%가 단백질이고 나머지가 수분이니 애호박과 막상막하이다. 게다가 이제 끝나가고 있지만 여름 동안에는 닭이 지쳐서 그런지 흰자가 한층 더 묽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흰자는 노른자가 자연스레 풀어질 정도 외에는 쓰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호박을 몇 개를 부치든 쓰는 계란의 절반에서 흰자를 걷어낸다고 생각하자. 호박에 소금을 뿌린 뒤 계란을 풀어 놓으면 물기가 빠지는 동안 온도가 올라가 좀 더 자연스레 흰자와 노른자가 어우러진다. 같은 이치로 소금간을 하면 계란의 단백질 사슬이 풀어져 더 부드러워지니 참고하자.
30분이 지나면 썬 애호박을 종이 행주로 덮어 손으로 가볍게 두들기듯 눌러 표면에 송송 맺힌 물기를 완전히 걷어낸다. 이제 본격적으로 애호박을 부칠 차례다. 논스틱팬의 바닥을 한 켜 입힐 정도로만 기름을 가볍게 둘러 약불에 올려 최대 10분까지 달군다. 오른손잡이라면 불과 팬을 맨 왼쪽에, 그리고 계란, 밀가루, 호박의 순으로 둔다. 오른손으로 호박을 집어 밀가루를 입히고 손으로 가볍게 털어낸 뒤 계란물에 올린다. 그리고 왼손으로 집어 달군 팬에 올린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양 손을 엄격히 분리해서 써야 손에 부침옷이 떡져서 부치다 말고 손을 씻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3~4분 지진 뒤 뒤집어 2~3분 마저 익힌다. 한 김 날리고 먹어야 이에 사뿐사뿐 씹히는 애호박의 ‘알 덴테’ 질감을 즐길 수 있다. 레몬즙을 한두 방울 떨군 간장에 찍어 먹으면 향긋함과 산뜻함이 한결 더 살아난다.
삼겹살, 깻잎과 함께 먹으면 좋은 호박나물사계절 살 수 있고 비싸지도 않지만 수분 함량 95% 탓에 애호박은 까다로운 채소이다. 채소라면 무릇 수분 함유량이 높기 마련이지만 애호박의 문제는 대체로 이를 다스리지 않고 쓴다는 데 있다. 그나마 전은 좀 낫다. 포털 사이트를 뒤져 블로그 등의 레시피를 찾아보면 대체로 소금간을 해서 부친다. 하지만 다른 길은 어느 것을 골라도 같은 지점에 도착한다. 찌개도 볶음도 애호박이라면 운명은 곤죽인 것이다. 해결 방안이 없을까? 일단 찌개라면 간단히 투입 시기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미약하나마 광명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고기든 채소든 한꺼번에 넣고 국물 음식을 끓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연약한 애호박은 오래 익혀야 하는 식재료와 함께 끓다가 곤죽이 되어 껍질 주변의 약간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애호박에게 원하는 결과가 정확히 이것이었다면 문제 없겠지만 아니라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맨 끝일 수도 중간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불에 올리는 시점에서 다른 재료와 함께 투입하는 것은 애호박에게 너그럽지 못한 처사가 아닐까?
볶음은 좀 더 까다롭다. 그저 말로만 정석을 늘어 놓기는 참 쉽다. 세포벽이 파괴되어 재료 내부의 수분이 배어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센 불에 가능한 짧게 볶으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애호박에게 수분을 뽑아내지 않으면서 볶아내는 화력을 가정의 가스레인지에서 갖추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볶지만 이 음식이 궁극적으로는 ‘호박나물’로 통한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불로 익히지만 대체로 식혀서 먹는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이름에 충실하도록 애호박을 정말 나물로 무쳐서 먹을 수는 없는 것일까?
다시 애호박을 도마에 올린다. 이번에는 0.3~0.5㎝ 두께로 어슷하게 썬다. 전을 부치려고 수평으로 써는 것보다 두 배 정도의 단면적이 나오도록 썬다고 생각한다. 체에 담아 소금을 넉넉하게 뿌리고 볼에 받친다. 얇게 썰었으니 짧게는 10분이면 물기가 빠진다. 종이 행주를 한 겨씩 깔고 덮어 물기를 완전히 걷어내면 정말 버무리는 호박나물의 바탕이 간단히 준비된다. 한식의 전통을 살리자면 새우젓이나 액젓 등 젓갈류와 잘 어울리니, 이를 바탕으로 송송 썬 대파나 쪽파와 마늘, 식초, 참기름 등과 버무린다. 어느 밥상에 올려 놓아도 두루 어울리지만 특히 삼겹살구이와 깻잎쌈의 하늘이 맺어준 인연 사이에서 삼각관계의 분쟁 가능성이 없는 공존을 도모하는데 탁월하다. 살짝 아삭함이 남아 있는 질감이 삼겹살과 깻잎 사이를 중재해줄 뿐만 아니라 젓갈의 감칠맛과 짠맛이 삼겹살의 기름을 견제해주는 덕분이다.
레몬, 바질 등과도 찰떡궁합한편 양식을 원한다면 약방의 감초처럼 쓰는 비니그레트를 준비한다. 산과 기름을 1:3의 비율로 섞고 소금과 후추로 간한 뒤 거품기로 휘저어 걸쭉하게 유화된 드레싱을 만든다. 마늘과 샬롯 등의 향신채는 음식을 만들기 30분 전에라도 산에 담가 두면 매운맛이 상당히 빠져 덜 버겁다. 어떤 종류의 식초를 써도 좋지만 앞에서도 살짝 언급했듯 레몬이 호박과 아주 잘 어울리니 즙도 내고 겉껍질도 강판으로 갈아 더하면 풋풋하고 싱그럽다. 여기까지만 나아가도 훌륭하지만 음식을 요리로 탈바꿈 시킬 수 있는 묘안이 두 가지나 있다. 첫 번째는 견과류의 고소함을 더해주는 것이다. 얇게 저민 아몬드(마트의 제과제빵용품 매대에서 살 수 있다)를 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담아 고소한 냄새가 막 피어오를 때까지 볶아 함께 버무린다.
두 번째로는 정말 용의 눈을 찍어 그림을 완성하는 마음으로 허브인 바질을 더한다. 바질과 애호박이 각기 지닌 풋풋함이 어우러지는 한편 바질의 달큰한 향이 피어올라 한층 더 감각적인 요리로 변모한다. 바질을 이파리만 따서 착착 포갠 뒤 수평 방향으로 돌돌 말아 도마에 올려, 칼로 최대한 가늘게 썬다. 썰린 이파리가 저절로 풀리며 아주 가는 채가 된다. 프랑스어로 쉬퍼나드(chiffonade)라 불리는 칼질의 기술이다. 어찌 보면 토마토와 생모차렐라 치즈의 카프레제 샐러드보다 더 화이트와인에 잘 어울리는 음식인데다가, 카프레제 샐러드의 재료값과 비교한다면 ‘가성비’마저 좋다. 치아바타 같은 빵만 곁들여도 좋고, 끼니를 해결하고 싶다면 새우나 흰살 생선 등을 팬에 가볍게 익혀 곁들이면 30분 안에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글을 읽고 입맛이 돌아 나물이든 샐러드든 만들어 본다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호박의 속살은 굳이 써야만 할까? 식재료를 낭비하면 안되지만 물기는 끝없이 나오고 소금에 절이면 꺾이거나 부스러지기도 한다. 수분 함량 95%라면 최선을 다하더라도 완전한 방어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다면 과감하게 속살을 배제해보자. 애호박을 삼등분한 뒤 껍질 바로 밑의 일부분만 속살이 남도록 돌려 깎아 채 썬다. 지금까지 살펴본 과정을 그대로 거치면 아삭함과 고소함이 훨씬 더 두드러지는 호박무침을 먹을 수 있다. 남은 속살 걱정은 맛있게 먹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애호박은 그렇다 치고, 주키니(돼지호박)는 어떤 대접을 해주는 게 좋을까? 수분 함량이 역시 95%라는 점을 감안하면 딱히 달리 접근해야 할 이유는 없다. 비교하자면 주키니는 껍질은 좀 덜 단단하고 속살은 조금 더 차진 한편 풋내가 조금 더 나는 편이지만 애호박의 대체재로 크게 무리가 없다. 다만 애호박도 차고 넘치는 우리의 현실에서 주키니를 굳이 똑같은 자리에 쓸 필요가 있을까? 아예 다른 가능성을 살펴보자.
오븐을 190℃(컨벡션 오븐은 180℃)로 예열하고 주키니 450g(중간 크기 두 개 수준)을 강판에 간다. 면포나 종이행주에 한 켜로 깐 뒤 말아 물기를 꼭 짜낸다. 중력분 250g, 베이킹소다와 파우더 각 1작은술, 계피가루와 소금 ½작은술을 볼에 담아 잘 섞는다. 다른 볼에 설탕 200g, 요거트 50g, 계란 2개, 레몬즙 1큰술, 녹여 식힌 버터 85g을 섞은 뒤 물기를 짠 주키니와 함께 가루 재료에 더해 잘 섞는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2.5, 10.5, 9.5㎝인 식빵틀에 부어 오븐에서 45~55분 굽는다. 이쑤시개로 한가운데를 찔렀을 때 빵 부스러기가 거의 묻어 나오지 않으면 다 익은 것이다. 10분 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틀에서 꺼내 망에 얹어 식힌다. 적어도 1시간은 식힌 뒤 썰어야 빵이 주저앉지 않는다. 누가 주키니를 굳이 채 썰어 넣어 빵을 만드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바나나빵도 같은 원리로 만드는 데다가 한식에도 무나 박고지 등을 쓰는 떡이 있음을 감안하면 누군가, 특히 채식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으니 참고하자.
사촌지간 애호박과 주키니, 호떡 굽듯 지져 내도 맛있어요 ‘애호박과 주키니는 웬만하면 호환이 가능하다’고만 써놓고 마무리를 하려니 왠지 아쉬우니 레시피를 하나 소개하자. 원래는 ‘프리터(fritter)’라 불리는 튀김의 일종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솥에 기름을 가득 채우는 본격적인 튀김(deep frying)이 아닌, 우리네 호떡 부치기와 비슷한 팬 프라잉(혹은 shallow frying)이니 부담도 적다. 빵을 만들 때처럼 애호박 혹은 주키니 450g을 강판에 갈아 물기를 꼭 짜낸다. 볼에 담고 계란, 마늘, 파, 밀가루 30g을 솔솔 뿌려 잘 섞는다. 이대로 한 숟가락씩 떠 올리브기름을 자작하게 담아 중불에 달군 팬에 노릇노릇, 바삭바삭하게 지져내면 되는데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나 체다, 페타 등 치즈를 더하면 더 맛있다. 레몬즙을 더한 간장, 혹은 사워크림에 찍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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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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