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가난한 수재들의 학교!” 였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만 해도 서울대 캠퍼스에서 부티 나는 학생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가난한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달고 살고, 그들 가정교사와 부잣집 여고생 제자와의 사랑은 드라마의 단골소재가 되었다.
지금 서울대 캠퍼스에서는 가난한 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재학생 중 거의 4분의 3이 소득 9~10분위 고소득 가정 출신이라니 서울대는 이제 부자들의 대학이다.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해 시험점수 잘 받으면 일류대학에 가던 시절로부터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는 많이 바뀌고 많이 복잡해졌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이 일류대학 진학의 필수조건이라는 말은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거기에 아버지의 인맥까지 동원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고속 압축성장 반세기, 부의 대물림은 확고한 현실이 되었다.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일수록 일류대학에 들어가 또 다시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되면서 자신들의 계층을 고수하는 추세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계층 이동의 엘리베이터는 고장 났다.
한국을 거대한 분열의 장으로 내몰았던 ‘조국 사태’는 근본적으로 진영과 계층 간 대립. ‘헬조선’을 외치던 흙수저 젊은 세대는 계층이라는 높은 벽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분노했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팽창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하고 개인이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는 구조적 빈곤이 강고해지고 있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한달내내 일한 후 아파트 렌트비 내고나면 식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자녀들을 입히고 먹이며 공부시키겠는가.
중상류층은 엘리베이터 타고 휙휙 올라갈 때 소득 하위계층은 걸어서 계단을 오르는 것이 대략 ‘20 대 80’으로 나뉘는 이 사회의 구도이다. 한 계단 한 계단 걸어서 올라가자면 우선 지쳐서 중도포기하기 쉽고, 기어이 올라간다 해도 한계가 있다. 계층 간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부의 대물림까지 더하면 현실은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다. 애초에 출발하는 층이 다르다.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는 분노를 낳고 분노는 쌓이면 폭발하는 법.
그래서 관심을 모으는 것이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이다. 누구나 기본적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식, 그래서 기본소득은 인권에 해당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마티 루터 킹 목사가 주창했던 ‘보증 소득’이다.
핀란드, 캐나다 등지에서 실험했던 기본소득제가 미국 땅에도 등장했다. 북가주 스탁턴의 젊은 시장인 마이클 터브스(29)가 지난 2월부터 실험운영 중이다. 돈 많은 실리콘 밸리의 관련 단체에서 기금을 마련, 130 가정에 월 500달러씩 지급하고 있다.
인구 31만의 스탁턴은 빈곤률, 실업률, 범죄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악명 높은 도시. 주민 4명 중 한명은 빈곤층이고 25세 이상 성인 중 대졸자는 17%에 불과하다. 한두시간 거리의 실리콘 밸리와 비교하면 스탁턴은 소득 양극화의 표본이 된다.
2016년 시장에 당선, 미국에서 최연소 시장이자 스탁턴 최초의 흑인시장인 터브스는 “모든 게 가난에서 비롯된 문제, 가난이 제일 큰 이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가난의 해악을 몸으로 체득했다. 그가 스탁턴에서 태어나 자랄 때 엄마는 10대의 싱글맘이었고, 아버지는 강도 및 유괴로 종신형을 살고 있다. 함께 자란 사촌은 몇 년 전 할로윈 파티 중 총격 살해되었다. 다행히 엄마의 교육열 덕분에 그는 공부에만 전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스탠포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기본소득이 빈곤과 폭력이라는 암울한 늪에서 도시를 구해낼 수 있을까. 공짜 돈이니 함부로 써버리지는 않을까, 일을 게을리 하지는 않을까 … 실험을 통해 알아내고 싶은 이슈는 많다. 그러나 답을 찾기에 실험대상은 소규모이고 기간 역시 18개월로 제한되어있다.
분명한 것은 재정부담에 짓눌려 허덕허덕 살아가는 빈곤층에게 추가소득이 주는 위안은 크다는 사실이다. 주 6일 근무하던 한 가장은 500달러의 여유 덕분에 격주로 토요일을 쉬면서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고 고마워한다. 삶의 질이 개선된 것이다.
“… 그런 건가? 이렇게 살다 가라는 건가?/ 그런 건가? 하루하루 오늘은 괴로움의 나열인데/ 그런 건가? 띄어쓰기도 없이 범람하며 밀려오는 나날/ 그런 건가? 내일도 오늘과 같다는 건가?”(김승희, ‘반투명한 불투명’ 중)
양극화의 한쪽 편, 못 가진 진영에서 이 사회에 던질 법한 하소연이다. 구성원의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가 번영하고 행복할 수는 없다. 아담 스미스의 지적이다.
양극화의 골은 날로 깊어지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길은 날로 멀어지고 있다. 최소한 이편에서 저편을 바라보는 시각은 열려있어야 하겠다. 관심과 포용의 정책이 필요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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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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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7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이세상에 공산주의건 민주주의건 사회주의건 어느제도도 완벽한건없다. 끊임없이 변화하지않으면 결국 몇백년이지나 현제도는 무너진다. 역사가 말해준다. 그 어느 시스템도 영원하지않다는걸. 민주주의도 계속 바뀌어야 오래간다. 헌데 보수들은 그냥 하던대도 영원히 하려고하니 한심하다.
이글의 중간까지는 공감이 가나.나머지는 멍멍 소리
말말말 처럼 할수있는말이지 당신도 말만이렇게하지 전혀 현실에서 노력하는게없지않나 모두가다그렇다 이게현실이고 이렇게 가는거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살아라
옛말에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세계가 양극화가 된것도 결국은 정치와 경제가 야합하며 만들어진거지요. 돈만추구하는 그룹들이 정치와 손을 잡고 전세계를 단일 투기장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양극화가 이젠 지구적인 현상이고 누구도 막기 힘들게 되어버렸어요. 고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것 같아요
양극화도 결국은 그 주체들의 노력이 쌓여서 이루어낸것이고 자본주의를 사는 인간들은 그런 노력의 산물이 없어지는것을 원치 않으니 어쩌겠나? 법으로 부의 편중을 강제하려면 사회주의가 되고 그렇다고 놔두면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