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끝이 안 보이는 머나먼 길이다. 그 길을 따라 한발 두발 걸어가는 것이 삶의 과정이다. 걷다보면 평탄한 길이 있다. 험한 길도 만난다. 길가에는 꽃들이 피어있다.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도 만난다. 물론, 먹구름이 끼고 비나 눈이 내리는 궂은 날도 있다. 목적지를 정해 걷는 사람도 있고 그저 길이 있어 걷는 사람도 있다. 혼자 걷는 사람도 있을 테고 여럿이 함께 걸을 때도 있을 게다. 이처럼 삶이 걷기, 걷기가 삶인 셈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행위. 몸을 이용한 운동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 바로 걷기다.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방편. 쉴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휴식. 걷기는 그런 것이다. 비록 단순동작이지만 다양한 즐거움과 큰 행복감을 안긴다.
어느 스님은 걷기 예찬을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걸으면 행복하다. 오롯이 내 발로 디뎌야 갈 수 있으니 성취감도 높다.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박자에 맞춰 걷다보면 머리에 잡념이 사라진다. 그저 걷는 행위자체가 목적이 된다. 온통 제 발에만 정신이 집중되면서 순간 무상무념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일정 간격으로 반복되는 발걸음은 목탁이 되고, 그 순간만큼은 속세를 떠난 구도자가 된다. 걷는 것은 타는 것과 다르다. 익숙하고 편안함에 길들여져 야성이 사라진 지금 사람들은 딸 흘리고 불편한 걷기를 선호한다. 모든 것을 걸음에 맡기고 걸어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신을 본다. 걷다보면 가진 것이 무거워 침이 된다. 많이 갖고 갈 수 없으니 가진 것을 놓아버리게 된다. 거기에는 우리네 걱정과 근심도 있다, 내 안의 욕망이 하찮게 여겨지고 이내 슬그러미 내려 놓게 된다고.
이처럼 걷고 산책하는 것을 현란한 어구로 찬양한 이름깨나 날린 저명인들은 한 둘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최고의 운동은 걷기이고 최고의 양약은 웃음을 꼽았다. 철학의 스승은 우리의 발이라 한 루소도 있다. 니체는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 몫을 하고 싶어한다”며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고 했다.
걷기 예찬의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야 말로 삶의 예찬이며 생명의 원천인 동시에 인식의 예찬”이라고 표현했다. 조세 거부운동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다음과 같은 걷는 자에 대한 예찬은 더욱 빛이 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걷기에 필요한 여가와 자유와 독립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걷는 자가 되려면 신의 은총이 필요하고 하늘의 섭리가 필요한다. 걷는 자가 되려면 걷는 자의 피가 흐르는 집안에서 태어나야 한다” 이외에도 걷기에 대한 명언을 다 셀 수 없을 지경이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 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어떤 정신상태, 세계 앞에서의 행복한 겸손, 현대의 기술과 이동 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즐기는 센서를 새롭게 해주는 것이다. 걷기는 “삶을 방해하는 생각의 가지치기”다. 결국 걷는 것은 자신의 길을 되찾는 일인 셈이다.
걷기는 이처럼 사색과 명상뿐만 아니라 육체적 건강에도 매우 유용하다. 걷기는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명약이다. 걷기는 지친 혈관을 쉬게 한다. 과로 속에서 잠든 영성을 흔들어 깨운다. 내면의 불꽃을 되살려 주며 마음을 넓히고 미소를 준다.
인간의 전체 뼈 중에서 25%인 52개의 뼈가 두 발에 모여 있다. 그러니 두 발이 땅을 굳건히 딛고 있을 때 사람은 자신과 세상의 맥박이 일치함을 느낄 수 있다. 걷다 보면 온갖 고민이 사라진다. 뇌를 자극해 평소 풀지 못했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의욕을 북돋워주며 식욕이 돌고 수면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걷는 사람의 뇌가 젊기 때문이다.
9월에 들어서니 파란하늘이 주는 색감의 변화가 여름철 더위를 식혀준다. 거리마다 상큼한 바람이 분다. 가을은 사색과 더불어 걷기가 좋은 계절인 이유다. 가로수 거리, 숲길이라도 좋다. 걷다보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건강 에너지도 쑥쑥 자란다. 걷기의 계절이다. 이 좋은 계절에 많이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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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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