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위도우는 맹독성을 지닌 암거미로 보통 때는 혼자 있다가 배란기에만 수컷을 찾아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치명적인 거미다. 그런데 인간 여자들 중에도 이런 블랙 위도우들이 있다. 이들을 일컬어 치명적인 여자를 뜻하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고 한다. ‘팜므 파탈’은 거역 못할 미모와 성적 매력으로 어리숭한 남자를 유혹, 몸과 마음을 빼앗은 뒤 남자를 멸망의 길로 몰고 가는 요부들이다.
‘팜므 파탈’의 원조는 천하장사 삼손을 몰락시킨 딜라일라 일 것이다. 순진한 졸병 호세를 탈영병으로 만든 카르멘도 그런 여자요 살로메와 클레오파트라도 ‘팜므 파탈’이라고 해도 좋을 여자들이다.
‘팜므 파탈’은 이렇게 극적인 여자여서 많은 영화 특히 범죄영화인 필름 느와르의 주인공으로 지금까지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암캐’(Le Chienne)에서 나이 먹은 경리사원 모리스를 유혹한 창녀 룰루와 ‘푸른 천사’(The Blue Angel)에서 나이 먹은 교수 라트를 파멸의 길로 몰고 간 카바레 댄서 롤라-롤라(말렌 디트릭) 그리고 ‘킬러즈’(The Killers)에서 버트 랭카스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에이바 가드너 및 ‘치명적 매력’(Fatal Attraction)에서 하룻밤 정사 후 자기를 외면하는 마이클 더글러스에게 식칼을 들고 달려드는 글렌 클로스와 함께 ‘블랙 위도우’(Black Widow)에서 나이 들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 뒤 남편을 독극물로 살해하는 테레사 러셀 등이 다 그런 여자들.
스크린의 많은 ‘팜므 파탈‘ 중에서도 독성 있는 사악함과 함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놓고 서로 으뜸의 자리를 다투는 여자들은 ’이중 배상‘의 바바라 스탠윅과 ’우체부는 항상 벨을 두 번 누른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의 라나 터너일 테다. 두 영화는 다 범죄소설작가 제임스 M. 케인의 글이 원작인데 나로선 그 미모에서 얼음장 같은 냉기가 감도는 스탠윅이 더 치명적이다.
스탠윅이 주연한 필름 느와르의 최고걸작 중 하나인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1944^사진)이 올해로 개봉 75주년을 맞는다.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이 영화는 어찌나 허무하고 야멸치고 냉정하게 아름다운지 보자면 한기를 느끼게 된다. 따스한 온기와 감정이란 일체 배제된 영화로 케인이 기자시절 취재한 간부들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와일러와 또 다른 범죄소설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가 함께 각본을 썼다.
유혹적인 미모를 지닌 주부가 돈과 욕정에 눈이 멀어 외간남자를 유인해 자기 남편을 살해하는 흑백 치정극으로 패라마운트 작품이다. 제목은 생명보험에 든 사람이 사고사할 경우 보험금의 두 배를 지불한다는 보험용어.
이 영화는 미 중산층의 삶 속에 흐르는 탁류를 파헤친 범죄영화이자 도덕극이다. 결점은 있으나 순진한 남자가 도덕적 선택을 놓고 그릇된 선택을 한 뒤 욕정과 범죄의 폭력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드는 얘기로 와일더는 이런 도덕극을 만든 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글들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고백했다.
자기 정부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보험회사 세일즈맨 월터 네프(프레드 맥머리)가 회사에 돌아와 녹음기에 자신의 범죄사실을 고백하면서 플래시백으로 진행된다. 월터는 보험갱신을 위해 LA북쪽 로스 펠리스의 디트릭슨의 집에 들렀다가 종국에 자기를 잡아먹고 마는 블랙 위도우인 살기 감도는 선정미를 지닌 디트릭슨의 아내 필리스(스탠윅)를 보고 첫눈에 빨려든다. 필리스는 나이 먹고 무미건조한 남편을 살해할 계획을 짜고 남편 모르게 그의 이름으로 생명보험과 사고보험에 든 뒤 월터를 유혹해 공범자로 만든다. 순진한 월터는 처음에 필리스의 음모에 반대하나 결국 여인의 맹독성 아름다움과 선정성에 굴복, 기차사고사로 위장해 디트릭슨을 살해한다. 그러나 보험금 상환 조정자로 월터를 자기 아들처럼 아끼는 바턴 키스(에드워드 G. 로빈슨)가 디트릭슨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 배후를 파고들면서 악인은 다 지옥으로 간다.
월터와 필리스의 첫 대면이 은근하면서도 자극적이다. 월터를 맞으려고 위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단구의 금발미녀 필리스의 샌들을 신은 발찌가 채워진 발목이 뿜어내는 선정성과 그 발목을 바라보는 월터의 욕망이 서린 눈길에서 이미 월터의 파멸을 읽게 된다.
대사가 사납고 날카로우면서 또한 비정하고 냉소적이다. 배경에 ‘탠저린’의 멜로디가 흐르는 가운데 서로 상대의 몸에 총을 쏜 두 간부는 서로를 포옹한 채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필리스가 “우린 모두 썩었어”라고 말하자 월터가 “그래, 그러나 당신이 더 썩었어”라고 대꾸한다. 사랑이 배제된 두 연인의 작별인사의 극치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사실적이요 에누리 없는 연출 그리고 촬영과 감정적인 음악(미크로스 로자-후에 ‘벤-허’ 음악 작곡)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영화로 작품상 등 모두 7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지금도 재상영과 재방영되는 명화로 로렌스 캐스단이 감독하고 윌리엄 허트와 캐슬린 터너가 나온 뜨거운 필름 느와르 ‘바디 히트’(Body Heat)도 이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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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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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을 가진 인간으로서 사랑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극을 불러 오는지는 지금도 끊임없이 진행 되고 있지요.
'사랑은 찰라적' 인 것이라는 박위원의 금언을 사람들이 일찍 깨달았다면 인류는 훨씬 더 행복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