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 대통령은 하지 말자.”
어느 몹시 고단하던 날 어머니는 아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글쎄요, 생각 좀 해보구요.” 아들은 재치 있게 농담을 받아 넘겼다.
유권자 등록명부를 들고 어머니가 주소를 말하면 아들은 가서 문을 두드리고 … 그렇게 모자는 LA 시의회 12지구를 같이 돌았다. 대략 60 평방마일. 한 도시의 한 지역구만해도 이렇게 넓은데, 전국을 무대로 하는 대통령선거 캠페인은 얼마나 힘들까, 문득 생각이 미친 어머니의 농담이었다. 지난 13일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존 이 시의원 당선자와 어머니 수잔 이 씨의 정다운 모습이다.
이 당선자가 출마선언을 하고 선거운동에 나선 지난 반년, 어머니 이 씨는 매일 선거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아침에 나가면 우선 한인 유권자들에게 전화를 하고, 유세 나갔던 이 후보가 돌아오면 상황이 어떤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눈치를 보고, 선거캠프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 먹을 간식이나 물은 부족하지 않은지 챙기다 보면 하루가 갔다. 때때로 아침식사거리를 싸들고 노인아파트를 찾아가 “우리 아들 도와 달라” 캠페인도 했고, 가가호호 방문에 동참했으며, 선거 당일에는 운전기사로 나섰다. 다리가 불편하거나 차편 없는 노인들을 픽업해 투표소로 모셔가고 모셔오기를 반복했다.
그의 나이 80세, 힘들지 않았을까?
“피곤한 줄 몰랐어요. 선거운동 재미있게 했어요.”
그리고 바라던 대로 “존이 시의원이 되어서 너무나 좋다”고 그는 행복해 한다. 그가 미국에 온 것은 근 60년 전. LA에 공부하러 왔지만 결혼하면서 학위의 꿈은 흐지부지 잊혀졌다. 대신 이번에 ‘시의원 아들’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동안 수십년 아들에게 들인 정성을, 지난 세월의 고통을 모두 보상받은 느낌이다.
부모가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이민 1세대가 2세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좀 더 특별하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낯선 시스템, 거기에 소수계라서 받는 차별과 불이익. 이민 1세의 삶은 날개 하나쯤 접고, 발목 하나쯤 묶고 사는 삶이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모두 묵묵히 일하는 것은 꿈 때문이다.
1세대의 땀을 거름삼아 2세대는 날개를 활짝 펴고 높이 날아오르리라는 기대, 아메리칸 드림이다.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모든 제약을 뛰어넘어 2세들은 이 사회의 주역이 되기를, 이 땅이 우리 후손들의 땅이 되기를 꿈꾸는 마음이다.
이를 실현한 산 증인들이 유태인이다. 19세기 후반 대거 미국으로 이민 온 유태인들의 가계도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1세는 가난을 이기며 죽을힘을 다해 일하고, 2세는 이를 토대로 사업을 확장해 부를 축적하고, 3세는 유복한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해 전문직에 진출하는 수순이다. 예를 들어 가죽공예 기술자인 1세 밑에서 자란 2세는 가방제작업자가 되고 3세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식이다.
이후 한 세기 유태인들이 어떻게 사회 각계의 상부로 뻗어나갔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LA 시정부만 보더라도 시장(에릭 가세티), 시 검사장(마이크 퓨어), 시 회계감사관(론 갤퍼린)의 최고위 선출직 3명이 유태인이다.
미국에서 소수계가 살 길은 ‘유태인 모델’을 따르는 것뿐이라고 차만재 정치학 박사는 말한다. 인구의 2% 남짓한 유태인이 미국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억만장자의 절반, 연방대법관 9명 중 3명이 유태인이며, 대학마다 유태인 교수들이 진을 치고 있다. 거기에 유태인은 유권자 한명을 두 표로 계산할 정도로 투표율이 높다. 이들의 힘의 원천은 돈, 지식, 정치력. 한인사회가 손에 넣어야 할 것들이다.
한인들은 다행히 유태인들과 많이 닮아있다. 교육열이 높고 근면하다. 자영업 1세 부모 밑에서 자란 2세들이 가업을 이어 큰 사업가가 되기도 하고 의료계 법조계 학계 등 전문직 진출도 활발하다.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에 관심이 있는 2세들도 늘고 있다. 동부의 앤디 김 연방하원의원, LA 시의회의 데이빗 류 시의원(1.5세)과 존 이 당선자 등이 2세 정계진출 흐름의 물꼬를 텄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민정서가 거세다 해도 한계가 있다. 백인인구는 정체되고 이민인구는 늘어난다.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 들어 은퇴하면서 앞으로 2050년까지 근로연령층 인구증가의 93%는 이민 1세와 2세가 차지하리라는 것이 퓨 리서치 센터 분석이다. 현재 7,600만명인 이민 1세/2세 인구가 1억 6,000만명으로 늘어나면서 미국인구의 37%를 차지할 전망이다.
앞으로 우리 2세들의 역할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2세를 향한 1세대의 꿈이 더욱 담대해지기를 바란다. 오늘의 희생이 그들의 빛나는 비상으로 보상받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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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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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소팔아서 공부시킨 아들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에 악덕변호사가 되는 사례를 봅니다. 부모를 욕보이지 않는 정의로운 정치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무었이 어떻게 될지모르니 꿈조차 꿀수 없었든 미지의 나라 미국,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노력한 결과 아들 딸 낳고 다들 잘 되어 독립해 나갔는데,아직도 어릴적 자라면서 보고 듣고 겪었든 문화는 많은게 한국식이니 미국물이 훔뿍든 아이들을 보면서 가끔은 서운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무언가했구나하는 생각 이젠 가끔 조국 하늘을바라보며 엣친구친적도 생각나는여유도 누리지만, 나야 이젠 살만큼 살았다고할수도있지만 요즘 돌아가는 미국을 보자니 이세들이 은근히 걱정이 되는게 사실, 그래도 열심히자기 할 일 한다면 별일있겠는가 위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