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서쪽의 부촌 네이퍼빌에 한달 전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알리제이(11)라는 소녀가 착한 일을 하려고 레모네이드를 팔았는데, 못된 틴에이저들이 돈 바구니를 들고 튄 것이었다.
바구니 속의 돈은 9달러에 불과했지만 소녀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길모퉁이에 서서 2시간 반 동안 음료를 판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푸드 뱅크에 성금을 보내려던 계획은 무너졌다. 상심한 딸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동네 SNS에 글을 올렸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런 도둑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 여기까지가 사건 1막이다.
그리고 2막이 시작되었다. 이웃들이 즉각 나섰다. 소녀네 집 앞이 너무 한적하다 여긴 한 이웃은 사람들 통행이 빈번한 자신의 집 앞으로 레모네이드 스탠드를 옮겨오게 했다. 한 경관은 도둑이 오지 못하도록 ‘보초’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어 경찰차 여러 대가 번쩍번쩍 불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행진해왔다. 소녀의 좌판은 축제의 장이 되었다.
주민들이 너도나도 레모네이드를 팔아주고, 경찰관들이 십시일반 170달러의 성금을 모으고, 페이스북으로도 기부금이 들어왔다. 소녀가 이날 번 돈은 거의 350달러. 도둑맞은 9달러가 40배로 튀겨져 돌아왔다. 마음을 열면 일어나는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겹겹의 갈등들로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 분노와 증오 부추기는 리더십에 분열 깊어가는 미국 … 적아 구분 어렵게 뒤엉킨 정치판을 보는 것도, 좌우로 갈린 대중들의 허망한 적대감을 보는 것도 피곤할 때 가끔 찾는 뉴스가 있다. CNN의 ‘좋은 소식(the Good Stuff)’이다. 무거운 뉴스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라며 CNN이 매주 내보내는 가슴 따뜻한 뉴스들이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 그러나 특별한 일들을 소개하는데, 보다 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일종의 뉴스 청량제이다.
레모네이드 소녀의 ‘대박’ 소식 며칠 후에는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사는 캐나다 청소년 3명이 ‘좋은 소식’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론(18), 베일리(17), 빌리(15) 삼총사는 어느 늦은 밤 도넛을 사러가던 중 연기가 풀풀 나는 자동차를 보았다. 여성 운전자는 차를 길에 세워둘 수도 없고, 토우 트럭을 부를 형편도 안 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여성의 딱한 처지에 용감하게 나선 것은 빌리였다. “우리가 차를 밀자!”
문제는 여성이 사는 곳까지의 거리. 5마일이 넘었다. 가파른 언덕을 넘고, 중간에 배터리가 죽어 다시 충전하면서, 이들은 한밤중에 땀을 뻘뻘 흘리며 두시간 반 동안 자동차를 밀었다. 댄이라는 운전자가 그들의 뒤를 내내 따라가며 헤드라이트로 길을 밝혀주고, 소년들의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우연한 선행은 세상에 알려졌다. 소년들의 전화와 페이스북은 칭찬의 메시지로 불이 났다.
“세상이 부정적인 것들로 넘치다 보니 사람들은 뭔가 긍정적인 것을 원한다. 그래서 이런 선행은 신나게 퍼져 나간다“고 운전자 댄은 설명했다.
레모네이드 소녀를 응원하는 것도 자동차가 서버린 운전자를 돕는 것도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때, 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의 연대감이 있을 때, 혹은 단순히 상대방의 어려움이 가슴으로 느껴질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런 뉴스에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그 자연스런 일이 더 이상 자연스럽지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사람을 보면 신뢰보다 경계심이 앞서고, 한 동네 주민사이에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지 오래이며, 모르는 이의 아픔을 느끼기에 가슴은 너무 굳어있다. 우리가 더불어 사는 사람들, 커뮤니티의 변화와 상관이 있다.
과거 커뮤니티는 물리적 장소를 의미했다. 거주지역을 기반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한 동네/마을사람들은 강한 소속감으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21세기 들어서며 커뮤니티의 개념이 바뀌었다. 스스로가 느끼는 ‘정체성’이 커뮤니티의 기본이 되고 있다. 한인 커뮤니티, 히스패닉 커뮤니티, 혹은 동성애 커뮤니티 같은 것이다. 의사소통의 채널이 소셜미디어로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체성에 기반해 끼리끼리만 소통하다 보니 커뮤니티 간의 벽은 더욱 공고해졌다. 지리적 공동체의식이 무너진 자리에서 길가다 마주치는 사람은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레모네이드 소녀의 이웃주민들은 “소녀 덕분에 이웃이 모처럼 하나가 되었다, 옛날 같은 공동체 의식이 느껴졌다”며 즐거워했다.
하나가 된 느낌의 바탕은 따뜻함. 사람도 사회도 따뜻해야 건강하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만들려면 우리가 따뜻해져야 한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이 비법이 될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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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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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4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래서 아직도 이 세상은 살맛나는 동네입니다.
한국은 문재인정권전까지만해도 거의 독재정권에 가까웠으니 할말없지만 미국은 그래도 반대했던 대통령후보도 일단 대통령이됬으면 기꺼이 그를 받아들이고 밀어줬는데 트럼프가 대통령된후는 이게 바뀌었네요. 미국은 지금 반토막이 됬읍니다. 한국도 아무리 문재인이 싫다해도 일단 그가 대통령이니 전국민이 밀어줘야되는데 오히려 일본편을 드니 이해가 안됩니다.
원도사님은 세금을 조금내셔서 그런게아닐까요? 저는 가끔씩 정부에서 하는짓거리를보면 제가낸새금이 아까울때도 있지요...
요즘 지구촌에서 보기드믐 현상...여기까지 써 놓고보니 갑자기 슬퍼진다...왜 이리도 자기만 아는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이웃이 없으면 난 살수가 없는데도 그들이 만든 차 집 빵 사과 쌀로 매일 먹고 쓰고 내가 살수있는데 고마움을 느끼긴 고사하고 이웃을 남을 무서워하는 해야하는 그런세상 정말 이건 아닌데도 요즘 어떤 속좁은 이들은 그래야 한다합니다 남은 남이니 내가낸(쥐꼬리만한)세금을 축낸다나 참 생각들 대단하다 할까요. 특히 와싱톤 정가에서 더 심하니 이나라의 장래가 몹시 걱정이됩니다. 이웃은 나고 내가 이웃이고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