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조지아, 애틀랜타에서는 감동적인 사건이 있었다. 흑인남자대학인 모어하우스 칼리지 졸업식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식이 발표되었다. 미국 최대의 흑인재력가인 로버트 F. 스미스(56)가 396명 졸업생 전체의 학자금융자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선언했다.
모어하우스 칼리지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졸업한 전통 있는 흑인대학이다. 미국에서 흑인이라는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을 정신적 뼈대로 이어오며 이번에 135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식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식 축사를 하기로 되어있던 스미스는 최근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학자금 빚이라는 족쇄에 덜커덕 묶이는 졸업생들의 갑갑한 현실이다.
젊은이들이 어깨 펴고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도록 족쇄를 풀어주자고 결심한 것은 졸업식 전날이었다고 한다. 대략 4,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학자금부채 탕감 결정은 대학 측도, 그의 측근 대부분도 몰랐던 ‘깜짝 선물’이었다.
테크놀로지 투자사업으로 50억 거부가 된 스미스는 흑인노예 선조의 8대손이다. 둘 다 교육학 박사인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꿈이 컸고 꿈을 이룬 지금 흑인 역사와 문화 보존, 흑인 인재 양성 등의 프로젝트들에 통 큰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부자가 부러운 것은 이런 뉴스를 접할 때이다. 보통사람들은 자녀 한두명의 학자금 빚도 부담스러운데 근 400명을 빚으로부터 해방시켜 훨훨 날아오르게 해주었으니 ‘돈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학자금대출 총액은 1조5,000억 달러 규모. 대학 졸업자 3명 중 2명꼴로 4,500만 명이 부채의 덫에 걸려있다. 이들의 재정적 부담을 같이 느낄 가족들을 포함하면 적어도 1억 명이 학자금 빚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스미스의 ‘깜짝 선물’ 소식이 일파만파 미 전국을 감동시키고 부럽게 만드는 배경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돈 없어 공부 못한다는 말은 거의 없었다. 거주민으로서 주립대학에 들어가면 학비는 싸고 교육의 질은 세계적 수준이었다. 대학졸업장 없어도 취직이 쉬우니 ‘대학’은 각자의 선택, UC 같은 공립대학은 걸어서 들어가는 것으로 알던 시절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학교육 비용은 선진국 중 2위이다. 개인 부담, 정부 그랜트와 융자 등을 합친 경비가 학생 1인당 연간 3만 달러로 선진국 평균의 두 배이다. 학생당 지출 1위는 룩셈부르크. 하지만 무상교육이니 학생들에게는 부담이 없다. 사실 대부분 선진국에서 대학학비는 거의 무료이다. 1/3은 대학학비가 없고, 다른 1/3은 연간 2,400달러 미만이다. 미국에서도 오랜 기간 공립대학 학비는 그 비슷하게 쌌다.
무엇이 바뀐 걸까. 두 가지 주된 현상이 눈에 띈다. 첫째는 지난 30년간 주정부들의 고등교육 예산이 계속 줄었다는 것. 특히 2008년 불경기 이후 예산삭감 규모는 더욱 커졌다. 정부예산이 줄어들면서 학비부담은 학생들에게 떠넘겨졌다. 학비는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두 번째는 같은 기간 억만장자들이 엄청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포브스가 최고부자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한 1982년 미국에는 13명의 억만장자가 있었다. 30년 전인 89년에는 55명, 가장 최근 집계인 지난해 3월 이 숫자는 585명으로 10배 이상 뛰었다.
연간 수십만 달러 버는 전문직 종사자가 평생 안 쓰고 모아도 천만 단위이다. 누구도 노동으로 억 단위를 벌수는 없다. 직원들에게 돌아갈 몫을 가로채거나, 80년대 이후 확 낮아진 세율, 느슨하게 풀어진 독점금지법과 각종 규제, 강화된 지적재산권 등 기업과 부자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덕분이다.
결과는 미국경제라는 거대한 케익의 대부분을 극소수의 백만·천만·억만장자들이 꿀꺽꿀꺽 삼키고, 나머지 작은 조각을 놓고 99%가 넘는 사람들이 겨우 핥아먹는 형국이다. 극심한 부의 불평등이다. 지난 30년 중간소득은 인플레 감안하면 오히려 낮아진 수준. 서민들은 뼈 빠지게 일해도 생계가 어렵고, 사회안전망은 점점 줄어드니 아메리칸 드림은 날로 지평선 저 너머 무지개이다. 학자금 부채의 깊고 깊은 수렁 역시 이런 현실의 한 단면이다.
스미스 같은 억만장자의 선행은 아름답다. 많은 억만장자들이 기부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억만장자의 선심에 기대야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사회문제를 책임져야 할 우선적 주체는 마음씨 좋은 개인이 아니라 정부당국이다. 정부예산은 쪼그라들고 부자들만 날로 부유해지는 기현상의 근원은 경제적 불평등. 부가 고르게 배분되지 않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그 주된 방안이 수퍼리치에 대한 증세이다.
“부자가 빈자를 돕고 싶다면, 기분에 따라 베풀 게 아니라 기꺼이 세금을 내야한다”고 20세기 영국의 정치인인 클레멘트 아틀리 전 총리는 말했었다. 내년 대선, ‘부자증세’가 핵심쟁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회가 언제까지 억만장자들의 선심만 바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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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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