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강우일 제주교구 주교
▶ 5년째 미국 방문, 4.3 진상 전하고 당시 미군정 책임 물어
“제주 4.3은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아픔의 시작
제대로 성찰해 한국 나아갈 방향 진단 계기 돼야“
강우일 주교는 한국 천주교회의 최고지도자 중 한 명이다. 제주교구장인 강 주교는 올해로 5년째 미국을 찾아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미국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제주 4.3은 미군정기인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강 주교가 미국을 찾는 이유는 “4.3의 궁극적 최고 책임이 당시 미군정에 있기 때문”. 행동은 한국인이 했지만 최고 명령권자는 미군이었다는 것. 그는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의 정치지도자에게서 제주4.3 학살에 대한 어떠한 책임감 있는 조치를 찾을 수 없었다”며 “미국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 정부 대표가 유감을 표명하고 희생자에게 사죄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4.3 희생자유족회를 중심으로 꾸려진 4.3방미단과 함께 그동안 미국의 대학교수와 한국사 전공 학자들과 학술교류를 하고 세미나 등을 열어 의견을 들었다. 또 연방 상·하원의원들을 만나 면담하고 한국정부에서 발간한 공식 진상조사보고서 영문판 책자를 전달했다.
방미 성과는 아직 뚜렷하지 않지만 호응하고 도와주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와이주립대법대의 에릭 야마모토 교수가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2차대전 중 재미일본인 집단수용에 관해 연구하고, 80년대와 90년대에 미국의 법적 책임을 묻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4.3방미단에게 경험상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조급하게 해서는 안 되고 여론 조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한 재미한인들이 주체적 의식을 갖고 미 정부와 국회에 여론을 조성해 압박하고, 움직이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4,3은 해방 후 미, 소의 냉전구도 재편에 따라 우리민족의 운명이 달라진 상황에서 발생한 희생양”이라며 “좌우가 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제주도민들이 냉전의 대리전쟁을 한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4.3은 제주도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제주도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가 방향을 잘못 잡고 혼돈 상태로 빠져드는 첫 관문”이라며 “4.3 이후 현대사의 아픈 매듭이 반복되고, 지금까지도 좌·우, 보수·진보가 서로 적대시하는 대결 구도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펼쳐지는데, 우리는 아직 낡은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이 계속된다”며 “한국 현대사 전체를 꿰뚫는 아픔의 시작인 4.3을 제대로 돌이켜보고 원인과 결과를 세밀히 들여다봐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진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일년에 한두 번의 미국 방문으로는 미약하다며, ‘4.3’에 대한 동포들의 성원을 당부했다.
1945년 서울서 출생한 강 주교는 경기고와 일본 상지대 및 동 대학원,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원을 졸업하고, 1974년 사제 서품했다. 1985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에 임명된데 이어 이듬해 한국 천주교회 사상 최연소로 주교 서품했다. 2001년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를 거쳐 2002년 제주교구장으로 임명됐다. 2008-2014년 한국 천주교회를 이끄는 주교회의 의장(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이사장)을 처음으로 연임했고,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을 맡아 생명운동 및 평화운동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강 주교에게 사회 참여에 열심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예수가 제자를 세상에 보냈을 때는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세상에 구현하라는 의미이기에 세상을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올바르게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당에서 조용히 기도나 하는 직업적인 종교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며 “세상 모든 나라의 백성이 인간답게 살도록 해야하며, 방해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바꾸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강 주교는 “미주동포들은 한국에서 오래 전 떠나온 분이 많은데, 여전히 몇십년 전의 한국을 생각한다”며 “한국의 구조와 의식이 많이 바뀌었으므로 한국의 뉴스가 답답하고 안타까울 수 있지만 좀 더 큰 눈으로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으로,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의 과거사는 온갖 고통스러운 일과 시련이 많았다”며 “한국사회가 이를 극복하면서 물질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숙, 발전한데 긍지를 가져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남북이 지금의 갈등구조를 뛰어넘어 한민족으로 일치하고 화해하는 날이 오기를 바깥에서도 바람 갖고 응원해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강 주교는 내일(4일, 토요일) 오후 6시 엘리콧시티의 성요한 성공회교회(9120 Frederick Rd. Ellicott City, MD 21042)에서 워싱턴민주평통(회장 윤흥노)과 워싱턴 4.3항쟁 희생자유가족협의회(대표 양영준)이 개최하는 평화공감포럼에서 ‘4.3 사건과 현대사의 아픔’을 주제로 강연한다. 연락처 양영준 (703)647-0524, 이태수 (443)977-7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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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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