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악마의 굿판이 벌어졌다. 백인우월주의라는 악령이 또 다시 처참한 살육의 참극을 벌였다. 지난 15일 뉴질랜드의 작은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이슬람사원 두 곳이 백인우월주의 청년의 무차별총격 테러를 당했다. 예배드리던 신도 50명이 떼죽음을 당하고, 낯선 땅에서 사랑하는 배우자·혈육을 잃은 수백의 무슬림 가족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년 전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한 나라의 일이 한 나라의 일로 끝나지 않는 ‘지구촌’ 시대의 현실이다. 정치사회적 혼란에 휩싸인 나라마다 고향을 떠나는 이주민이 늘고, 이들이 죽기 살기로 다른 나라로 탈출하면서, 증가하는 난민행렬과 이민인구에 각국이 예민해졌다.
시리아 예멘 북부아프리카 출신들은 유럽으로 밀려들고, 중남미 출신들은 미국으로 몰려들며,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출신들은 호주와 뉴질랜드로 향한다. 유색인종 이민자들이 갑자기 너무 불어나자 독일 등 난민에 우호적이던 나라들까지 “더 이상은 감당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런 보편적 우려와 두려움의 정서를 비집고 튀어나온 것이 백인우월주의이다. 음지에 웅크리고 있던 악령들이 제 세상 만난 듯 대명천지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백인기독교인을 제외한 모두가 적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위스콘신의 시크교 사원, 퀘백의 이슬람 사원,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흑인 교회 그리고 불과 5개월 전 피츠버그의 유대교 회당이 테러를 당했다. 테러범들은 하나같이 백인우월주의자라며 당당해했다. ‘참사’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이다.
테러가 일상화한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 뉴질랜드가 그 답을 주고 있다. 답은 간단명료하다. 피해자 돌보기와 살상무기 근절이다. 희생자 가족들을 성심을 다해 위로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한편 사회적 분열을 막고, 테러에 동원되는 총기류를 없앰으로써 또 다른 테러가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진정성과 의지가 있으면 가능한 일, 뉴질랜드의 젊은 여성총리가 신선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뉴질랜드 참사를 계기로 가장 유명한 장면은 히잡을 쓴 저신다 아던 총리의 모습이다. 38살의 진보적 정치인 아던은 먼저 피해자들을 끌어안았다. 참사 다음날부터 히잡을 쓰고 무슬림 피해자들을 찾았다. 백인총리가 히잡을 쓴다는 것은 무슬림을 무슬림으로 존중한다는 상징. 이민자로서 공격을 당하고 슬픔과 두려움에 차있던 무슬림 커뮤니티는 안도하고 감동했다.
아던은 또 테러범에 단호했다. 테러범이 참극을 벌이면서, 스스로 대단한 존재나 된 듯 우쭐하며 얻으려는 것은 명성/악명. “나는 그의 이름을 절대로 언급하지 않겠다”고 아던은 선언했다. 범인이 즐기려던 것을 뿌리부터 잘라냈다.
아던은 또 대처에 신속했다. 참사 발생 단 6일 후인 21일 그는 공표했다. “3월 15일 우리의 역사는 영원히 바뀌었다. 이제 우리의 법도 바뀔 것이다.” 군사용 반자동소총 등 이번 범행에 사용된 총기류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이미 퍼져있는 총기들은 정부가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강력한 총기규제로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의지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답답하다. 테러가 밥 먹듯 일어나도 정치인들은 ‘총기규제’ 근처에도 못가고 있다. 2012년 샌디훅에서 예닐곱 살 초등학생 등 26명이 숨지고, 2016년 올란도 나이트클럽에서 49명이 숨지며, 2017년 라스베가스 콘서트에서 58명이 살해되고, 2018년 플로리다의 고등학교에서 17명이 숨졌지만, 미국은 여전히 총의 나라이다. 막강한 총기협회 앞에서 정치권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국가 지도자는 증오의 언사로 (불법)이민자, 무슬림을 대놓고 비하하니 나라는 분열되고 백인우월주의자들은 기세가 등등하다. 2017년 버지니아, 샬롯츠 빌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 시위와 지난해 10월말 피츠버그 유대교 회당 테러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유대인이 돈을 대서 중미 캐러밴을 몰고 온다, 유대인이 미국을 장악하려 한다는 음모론의 결실이다.
당시 테러로 11명이 숨진 ‘생명나무(Tree of Life)’ 회당은 이번 뉴질랜드 무슬림 희생자들을 위해 4만5,000달러의 기금을 모았다. 백인우월주의자에 의해 성전을 공격당하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회당의 제프리 마이어스 랍비는 말한다. 지난해 피츠버그의 무슬림 커뮤니티는 ‘생명나무’ 피해자들을 위해 24만 달러를 모금했었다.
마이어스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악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도록 우리가 역할을 해야 한다.” 고통당한 자들을 품어 안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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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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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인들도 함께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일때 그들 정치인들 백인들은 그래도 우리를 무시하지 안할 걸로안다. 하지만 우리가 흣어지고 서로 쌉박질하는모습을 보일때 우리는 물론 다음 세대까지도 입지가 점점 좁아져 여러가지로 불리한 대우를 받을건 자명한이치가 아닌가한다. 그렇다고 그백인우월주위와 맞대 싸울게아니라 각자 맏은바 일 에 충실할때 이웃은 직장에선 사회에선 우리를 보는눈이 좋을줄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