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치같이 시원한 발효 피클, 소금물과 오이 단 두 재료만 필요, 3~6일 발효, 오이백김치 느낌
▶ 달고 시고 입에 붙는 즉석 피클, 손이 좀 가지만 바로 먹을 수 있어, 피자·파스타의 곁들이로 친숙
설탕과 식초를 물에 넣고 끓여 만드는 즉석 피클은 담그자마자 먹을 수 있다. <이용재 제공>
오이 피클은 소금물과 오이, 단 두 가지 재료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채소로 오이를 꼽는다. 생으로 먹어도 좋고 무쳐도, 심지어 볶아도 좋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소박이를 위해 절여둔 오이이다. 오이를 세로로 3,4등분 해서 십자로 칼집을 넣되 맨 끝 1,2㎝는 남겨 둔다. 그래야 이름처럼 ‘소박이’를 해도 소가 빠져나가지 않고 칼집 사이에 자리를 잘 잡는다. 소박이도 김치이므로 일단 소금에 절여야 한다. 넓은 ‘다라이’에 담아 오이 위에 소금을 솔솔 뿌리고 칼금을 넣은 사이에도 조금씩 뿌린다. 생오이와 김치를 담그기 딱 좋은 상태의 정확하게 중간 상태일 때 집어 먹는 걸 언제나 좋아했다. 아삭함이 살아 있을 만큼만 절여진 짭짤한 오이 위로 드문드문 녹지 않은 굵은 바닷소금 알갱이가 흩어져 있다. 덕분에 씹으면 소금의 폭발적인 짠맛과 특유의 질감이 오이의 싱그러운 풋내와 함께 퍼진다.
◇오이소박이 대신 오이피클
그런 오이를 먹는 재미로라도 소박이를 열심히 담가 먹었는데, 손이 꽤 가는 김치이다 보니 고민을 하게 되었다. 바쁜 현실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을 오이소박이에 투자해야 할까? 게다가 다른 김치에 비해 최적의 맛을 내는 기간도 짧은 편이다. 신맛이 제법 날 만큼 잘 익히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익히더라도 곧 물크러지기 시작해 매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잦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 대안이 바로 피클이었다. ‘피클이라니, 그건 피자나 파스타 먹을 때 곁들이는 새콤달콤한 곁들이 음식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맞는 말이다. 단 촛물을 끓여 금방 담가 먹는다고 해서 ‘즉석 피클(quick pickle)’이라 부르고 피클 세계의 정확히 절반을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발효 피클이 차지한다. 뜯어 보면 김치와 정말 가깝다 못해 ‘김치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무엇보다 숙성과 젖산 발효를 통해 잘 익힌 김치에서 맛볼 수 있는 쨍하고도 상큼한 신맛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되려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질 수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김치란 대체로 고춧가루의 빨간색과 매운맛이 반드시 깃들어야 하며, 발효도 젓갈을 매개체 삼아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요리의 문법이지만 일종의 정서적 장벽으로 굳건히 뿌리를 내린 셈인데, 뒤집어 생각하면 어쨌거나 우리가 발효 채소의 맛에 익숙하다는 의미이므로 이 정도 피클을 위한 틈새는 낼 수 있다. 게다가 젓갈이 없이 소금물과 오이 단 두 가지 재료만으로 만들 수 있으므로 손이 거의 가지 않다시피 한다.
◇발효 피클 소금물 농도는 3.5%
만드는 법을 찬찬히 살펴 보자. 일단 물을 끓인다. 냄비에 물을 담아 화로에 올려도 좋지만 전기주전자가 훨씬 빠르고 편하다. 발효 피클 레시피의 장점을 꼽자면, 오이를 소금물에 담가 숙성시키지만 오이와 소금물의 양은 서로 크게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소금과 물, 즉 소금물의 농도가 피클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김치는 맛이 드는 기간 등의 감을 잡기가 어려워 담그기를 망설이게 되는데, 발효 피클은 비슷하면서도 상태 파악이 쉬워 필요에 따라 연습 과정으로 삼아도 좋다.
물이 끓는 사이 오이를 손질한다. 오이의 겉면에는 오톨도톨한 가시가 있으므로 굵은 소금에 문질러 손질하는 요령이 정석으로 알려져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오이의 양이 많아지면 번거로울뿐더러, 김치를 담가 먹지 않는다면 굵은 바닷소금도 갖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식칼의 날을 세워 오이 표면을 천천히 긁어 가시를 걷어내고 과채 세척제 등으로 씻는 수준에서 손질을 마친다. 이제 오이를 썰 차례인데 정석이 없어 먹고 싶은 사람 마음대로 모양을 내거나 등분해도 상관 없다. 다만 이리저리 만들어 보니 모든 조각에 껍질이 고르게 붙어 있어야 똑같은 정도로 물러 두고 먹기에도 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오이소박이 담글 때와 흡사하게 오이를 가로로 3,4등분한 뒤 각 조각을 4등분하는 게 가장 좋다. 손가락 길이로 등분하는 셈인데, 고르게 익을뿐더러 먹기에도 굉장히 편하다.
썬 오이를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는다. 잡균이 발효를 망치지 못하도록 병을 살균하는 게 좋은데, 끓는 물이 특별한 도구도 필요하지 않아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넉넉한 크기의 냄비에 병을 담고 물을 냄비와 병 모두에 붓고 팔팔 끓인다. 아니면 식기세척기나 오븐을 쓸 수도 있다. 이제 끓인 물에 고운 바닷소금을 탄다. 비율은 물 1,000㎖당 소금 35g이다. 물은 계량컵에 다는 게 정석이지만 어차피 부피와 무게가 같으므로 저울에 달아 써도 상관 없다.
오이가 완전히 잠기도록 소금물을 붓는데, 만약 모자라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같은 농도(1,000:35, 즉 3.5%)로 만들어 더한다. 발효가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면포를 덮고 병 주둥이 둘레에 고무줄을 둘러 고정시키거나. 뚜껑을 느슨히 닫는다. 이때 오이가 떠오르지 않도록 랩을 씌운 종지 등을 위에 눌러 얹는다. 상온에 두면 이틀쯤 뒤부터 맑은 국물이 탁해지고 오이가 불투명해지기 시작한다. 발효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조짐이니 슬슬 뚜껑을 열어 맛을 본다. 시금털털하고 아직 맛이 덜 들었다 싶을 때 냉장고에 넣으면 조금 늦게 익고, 그보다 좀 더 두면 신맛이 제대로 난다. 3~6일까지 상온에서 발효시키는데 기간이 길어질 수록 피클의 신맛도 강해진다.
일단 발효의 감을 잡았다면 계속 담그면서 부재료를 더해 맛을 확장시킬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발효 피클의 부재료는 마늘이다. 어차피 한국은 마늘 강국이므로 양에 구애 받지 않고 오이 사이사이에 담아 양껏 함께 익힌다. 그리고 월계수잎, 통후추, 고수의 씨앗인 코리앤더, 북유럽의 허브 딜 등으로 향을 더하며 각자 좋아하는 조합을 찾는다. 신맛이 또렷한 표정을 낼 정도로 피클이 익으면 정말 김치처럼 먹을 수 있다. 피클이니까 샌드위치나 훈제 혹은 염장 연어 같은 서양 음식에나 곁들여야 할 것 같지만, 오이 백김치나 마찬가지이므로 한식 밥상에 올려도 잘 어울린다.
◇즉석 피클은 절인 오이를 끓는 촛물에 5분
두 번째 피클은 정말 ‘피클’이다. 배달 피자에 딸려오는, 혹은 파스타집에서 ‘저희는 피클을 내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써 붙일 때의 그 피클이다. 설탕의 단맛과 식초의 신맛이 강렬하며 첫 번째보다는 손이 좀 더 많이 가는 대신 담그자마자 먹을 수 있다. 오이 1㎏을 준비해 손질해 씻은 뒤 위아래 끝만 살짝 잘라 버리고 0.3~0.5㎝ 두께로 썬다. 양파도 한두 개 반 갈라 썰어 함께 체나 채반에 담고 소금 1큰술을 솔솔 뿌려 1시간 물기를 뺀다. 체나 채반에 담긴 그대로 흐르는 물에 한 번 소금기를 헹궈 내고 그대로 둔다.
넉넉한 크기의 냄비에 식초 500㎖, 물 40㎖, 설탕 400g을 담아 중불에 올린다. 단 촛물이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이고 절여 헹궈둔 오이와 양파를 더한다. 촛물에 완전히 담기도록 주걱으로 가볍게 눌러준 뒤 뚜껑을 덮고 오이의 색이 좀 진해지는 한편 불투명해질 때까지 5분가량 보글보글 끓인다. 이제 다 만들었다. 넉넉한 크기의 대접에 담아 실온으로 식힌 뒤 뚜껑을 덮어 냉장실에 둔다. 당장 먹어도 좋지만 두 시간 정도 두어 완전히 차가워지면 한결 더 맛있다. 병이나 밀폐 용기에 담아 2주 동안 냉장고에 두고 먹을 수 있다.
오늘 살펴본 두 피클은 밥이든 빵이든 곁들이 음식으로 유용할 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재료의 손질부터 칼질, 두 종류의 맛내기 요령을 함께 익힐 수 있는 예제로도 제 몫을 톡톡히 한다. 발효의 깊고 시원한 맛을 좋아한다면 첫 번째를, 단맛과 신맛 때문에 바로 착착 입에 붙는 맛을 좋아한다면 두 번째 피클을 권한다. 그런데 오이가 다루기 어렵지 않은 채소임을 감안한다면 둘을 한꺼번에 담가버리는 것도 좋다. 어차피 발효피클은 맛이 드는데 적어도 사나흘은 걸리니 익는 동안 즉석 피클을 먹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음식으로 어떤 끼니를 준비하든, 적어도 한두 주일은 웬만한 경우에 두루 들어 맞는 오이의 아삭함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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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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