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에티오피아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6.25 전쟁 때 한국을 도와주었던 참전국이었지만 오랜 왕정의 몰락과 공산혁명을 겪으면서 최빈국이 된 나라. 그렇지만 의욕 있는 젊은이들의 눈망울은 빛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한국인들이 세운 병원과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내과 집중 강의를 했다. 몇 해를 거듭하다보니 가르쳤던 학생들이 인턴 의사들이 되어 인사를 하는 것이나, 면학 분위기가 향상됨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그 곳은 많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당장의 원조금보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성실하게 자라난 인재들이 에티오피아를 변화시키는 날을 꿈꾸고 있다.
현재 가난하다고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로, 독립을 위해 투쟁한 역사를 자랑스러워한다. 7세기 경 이슬람으로 바뀐 주변국가와 달리 평범하지 않은 기독교 정교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역사는 5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기록은 기원전 천년의 것부터 남아있다. 시바 여왕이 예루살렘으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배우러 간 유명한 여행을 했을 때, 여왕이 솔로몬 왕의 아이를 임신하여 낳은 아들이 메넬리크 1세이다. 그가 세운 왕조는 1974년까지 이어져 왔다.
수천 년 동안 왕국은 숱한 외부의 침입을 받았으나 나라를 계속 지켜왔다. 1936년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의해 에티오피아가 잠시 점령당했으나 1941년 독립을 재획득한다. 그러나 20세기 중 왕정의 부패에 학생, 노동자, 농민들의 반대시위가 일어났고 1974년 군사정권과 공산주의가 들어온 후 에리트리아와의 분쟁으로 혼란이 가중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한국을 부러워하는 형편이 되었다.
에티오피아 전승에 따르면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의 사이에 난 메넬리크 1세(지혜로운 자의 아들이란 뜻)가 에티오피아에서 자라다가 20세 때 이스라엘로 가 아버지의 궁궐에 머물면서 지혜와 학문을 배운다. 총명한 메넬리크가 솔로몬의 총애를 받게 되자 그 땅의 장로들이 그를 에티오피아로 돌려보내라고 압력을 넣는 바람에, 왕자를 보내기로 하였다.
수행원들 중에 대 제사장의 아들 아사리우스도 있었는데 떠나기 전날 지성소가 열리고 언약궤를 가지고 갈수 있도록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바람에 성궤를 에티오피아로 가져 올수 있었다고 한다. 결코 훔쳐온 것이 아니란 뜻이다.
에티오피아 인들은 그 언약궤가 ‘성스러운 도시’ 악숨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른 교회에는 복제품 언약궤를 놓아두고 일 년에 한번 씩 열리는 예수의 세례식을 축하하는 ‘팀카트’ 축제 때 궤를 매고 교회에서 나와 열광적으로 춤을 추는 의식 때 사용한다.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 출애굽 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주셨던 만나를 담았던 항아리, 제사장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 것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구약시대 초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언약궤를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표적으로서, 하나님의 힘의 요새, 신성한 의지의 도구로 섬겼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모신 언약궤가 성전의 지성소에서 사라졌고, 솔로몬의 시대 후에는 성경에서도 언급이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스러운 물건을 찾아서 갖기를 원하고, 실제로 찾아 나섰지만 모두 찾지를 못했다고 한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병에서 회복될 수 있으며 적을 물리칠 수 있고, 필요한 것들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은 하나님의 상자. 그래서 인디애나 존스는 영화 ‘잃어버린 언약궤를 찾아서’에서 그렇게 열심히 성궤를 쫓아다녔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탐욕으로 물든 인간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 언약궤를 없애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불필요한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언약궤를 감춰버리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상의 감사와 노력이 요술 상자보다 얼마나 더 귀한가. 꾸준히 학문에 정진하는 에티오피아의 젊은 학생들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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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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