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했다가 돌아오니 전화기에서 메시지를 알리는 빨간 불빛이 깜박거렸다. 수화기 속 목소리는 평온하면서도 진지했다. 평소 신문에 실리는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엊그제 신문에서 읽은 나의 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메시지에 상대방 전화번호는 들어있지 않았다. 우리 전화기는 옛날식이어서 발신인 번호가 뜨지 않으니 답신을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고서 바쁜 일이 연거푸 있었다. 그날도 일을 마치고 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전화기에 누군가 남긴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며칠 전 그 독자였다. 연락이 없어 기다렸다며 이번에는 전화를 꼭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설마 요즘에도 발신인이 뜨지 않는 구식 전화기를 쓰는 사람이 있으랴 싶었는지 그날도 전화번호는 남기지 않았다.
답신을 하는 게 예의인 줄 알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연락할 수 없는 내 사정을 설명할 수 없으니 난감했다. 두 번이나 메시지를 남겼는데 연락을 못 받아 본의 아니게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분간 다른 약속을 하지 않고 또 올지도 모를 전화를 기다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겼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내가 그 독자라면 어땠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았다. 전화를 ‘못 할 수밖에 없는’ 경우보다는 ‘안 했을’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가공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서운해 할 수도 있을 터였다. 일방적으로 오해가 생긴 것을 모르고 있다가, 가까이 지내던 관계가 소원해진 경우를 떠올리기도 했다. 사람이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으로도 오해를 할 수 있는지. 하지만 이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없어 보였다.
오해라는 단어 뒤에, 오래 전에 같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동료 교사의 얼굴이 보였다. 거친 남학생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겸비한 중견 교사였다. 인품과 실력을 고루 갖춘 오 선생에게서 숨은 매력을 하나 둘 발견할 무렵, 그녀가 돌연히 사직서를 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날부터 정말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거액의 돈을 사취하여 잠적했다는 게 마지막으로 들려온 소문이었다.
오래 알고 지낸 동료 교사들은 오 선생을 변호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가까이 지내던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사람 속은 모르는 일이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도 있고, 어떻게 교사가 그럴 수가 있느냐며 그녀를 둘러싼 소문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이도 있었다.
가깝던 친구가 등을 돌리면 비밀을 공유한 만큼 더 무서운 법. 주위를 놀라게 한 건 오 선생과 절친하게 지내던 교사의 냉소 어린 침묵이었다. 친구는 소문의 진위를 알고 있었을까. 오 선생은 그 친구에게마저 내밀한 가정 이야기를 비밀로 했던 게 아닐까. 진실은 가려진 채 추측만 무성했다.
진실은 때로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성공하거나 재능 있는 사람은 선망과 질투를 동시에 받는 게 세상인심이다. 문제는 가까운 사이에서 더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실력 있고 성격 좋은 오 선생도 인간관계로 인해 남모르는 갈등이 깊었던 건 아닐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어도 많은 교사가 친구라는 의미에 회의하며 한동안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 “불행은 진정한 친구가 아닌 자를 가려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오 선생도 그런 일을 겪으면서 진정한 친구를 선별하고 친구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었을지 모른다.
소문이 소문인 채로 기억에서 흐릿해질 때쯤, 멀리서 오 선생 소식이 날아왔다. 친정이 파산하면서 자신의 퇴직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주변에서 빚을 얻었다고 했다. 그 후 아무 연고도 없는 타국에 가서 육체노동을 하여 버는 돈으로 빚을 조금씩 갚고 있다는 거였다. 그녀를 신뢰하던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 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고, 깊은 생각 없이 잠시라도 오해한 것을 미안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했던 자신의 판단을 적당히 합리화하며 안면을 바꾸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우리는 살면서 때로 오해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이 자연스레 풀린다고 하지만, 오해가 오해를 불러 기존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어긋나기도 한다. 많은 경우는 자의적인 해석 때문에 오해가 생긴다. 사실을 확인하기에 앞서 판단을 먼저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삶에서, 사실인지 확인한 후에 ‘있는 그대로’ 보고 판단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판단이 앞설 때 실수도 하고 오해도 한다. 속수무책인 채로 이미 몇 달이 지나버린, 나의 독자와 나 사이에 생긴 오해는 어찌 거두어지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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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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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전화기의 신구형 여부를 떠나서 리턴콜을 부탁할 때에는 자기 전화번호를 남기는 것이 상식 아닐까요?
특히. 한인교회...
세상은 오해로 시작해서 오해로 돌아가는게 너무 많은것같습니다, 나 하고 한마디 말을 섞어 보지도 안한 이들이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이야기하는걸 듣기도 하면서요. 읽고 듣고 어떤때는 눈으로 보면서도 못 믿을게 너무 많은 요즘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조심스럽게 말할수있는 지혜가 자기를 이웃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수있지요.